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기획위)가 7월19일 두 달 동안의 공식 활동을 마쳤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청와대에서 ‘100대 국정과제 정책콘서트’를 열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선포했다. 이들이 제시한 5대 국정 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였다.
“월화수목금금금…, 80점은 주고 싶다”사상 초유의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5월17일 출범한 국정기획위는 2개월간 290여 차례의 정부부처 업무보고와 230여 차례의 분과 회의 등 총 520여 차례의 회의를 진행하고 국정운영 설계도인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완성했다. 총 178조원이 들어가는 5개년 계획에는 1호 국정 과제인 ‘철저하고 완전한 적폐 청산’을 필두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선거연령 18살 인하, 4대강 재자연화 등의 정책이 망라됐다. 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 당일인 7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만났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했다.지난 60일 동안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정부 출범 뒤 국정기획위가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시간을 끌면 새로 임명된 장관이 일할 때 정책상 혼선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위원회 사람들에게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달라고 주문했다. 최단시간 안에 일을 당겨 끝내야 한다고 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충실히 만들어졌다고 본다. 80점은 주고 싶다.
이전 인수위원회와 달랐던 점은 뭔가.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대선 공약 201개와 세부 계획 800여 개를 구체화해 로드맵을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완성도가 높았다. 상당히 오래 준비하고 많은 사람이 깊이 토론했다. 소요 예산 추계까지 다 들어 있었다.
또 하나, 역대 국정운영 계획은 대부분 공무원이 만들었다. 인수위원은 평가하는 데 그쳤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당이 중심이 돼 공약을 완성도 높게 만들었고, 국정운영 계획을 짜는 데도 주도적 구실을 했다. 자문위원 30명 중에서 현역 의원이 13명이었다. 당에서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정책조정위원장 5명이 모두 참여했다. 전직 의원 3명까지 합하면 절반이 넘는 16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공약 수립 작업부터 참여했다. 과거에는 구체적인 안을 공무원이 만들었기 때문에 무늬나 모자만 바꾸고 실제 정책 내용은 바꾸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국민이 정권 교체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새 정부는 촛불 민심으로 촉발된 보궐선거로 탄생했다. 국민의 염원이 “완전히 새로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인수위원들이 주도하지 않은 채 공무원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었다.
어려움은 없었나.문재인 대통령은 한 푼이라도 아껴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스스로 관저 식사비도 자비로 하겠다며 삭감하지 않았나. 우리도 그 정신을 따라야 했다.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으로 국정기획위를 운영하려 했다. 애초에 국정기획위 예산이 70억원 정도인데 문 대통령과 논의해 절반인 35억원 정도로 줄였다. 이 예산으로 비교적 돈이 많이 들었던 국민인수위원회 제안접수처(광화문1번가)까지 설치 운영했다. 실제 국정기획위 예산은 이전 인수위의 30% 정도인 셈이다. 나를 비롯한 부위원장 3명은 예산을 줄이려 500여 차례 열린 회의에서 별도 수당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했다.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완장 찬 국정기획위’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했다는데.처음 각 부처 공무원들의 업무보고를 받는데 이들이 지난 10년간 보수정권에 너무 길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득권 계층의 이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약간만 수정해서 보고하더라. 이래서는 안 된다고 크게 야단쳤다. “국민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 아니냐. 새 정부가 과거 보수정권처럼 대기업, 재벌 위주의 경제·사회 정책을 계속하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겠느냐. 새 정부의 최고 국정운영 철학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득과 소비, 투자를 늘리고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성장 정책이고 최상의 복지 정책이다. 먼저 성장한 뒤 나중에 복지 하자는 보수정권의 논리는 버려야 한다. 고용·성장·복지는 함께 가야 하고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틈날 때마다 강조했다.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고용·성장·복지가 함께하는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 전략’으로 신자유주의 경제를 대체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국정기획위가 공무원에게 완장 찬 점령군으로 인식되면 곤란했다.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실행 책임을 맡은 공무원이 동력이 되어야 한다. 점령군 행세하며 이들을 매도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 늦어질 뿐이다. 충분히 대화하고 소통하자고 자문위원, 전문위원들에게 당부했다.
국가비전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그 아래 5개 국정 목표를 정했다. 첫 번째가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촛불 민심을 구현하고 참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들의 국정 농단도 막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이전 정부에서 법무부·검찰·감사원·국가정보원, 네 권력 기관은 정의롭지 않게 운영됐다. 이 기관들은 권력자가 사익을 편취하는 수단이 됐고 재벌과 유착했다. 이게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얼마나 큰 해독을 끼쳤나. 1700만의 촛불이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의 나라가 아닌데 창피하다”며 들고일어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적폐 청산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된 인사 5대 원칙은 어떻게 정리됐나.병역 면탈, 탈세, 부동산 투기 등 고의성 있는 세 가지는 여전히 인사 배제 원칙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은 기준을 좀 완화하기로 했다. 위장전입은 모든 장관급 공직자로 인사청문회가 확대 적용돼 문제가 불거진 2005년 이후 발생한 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논문 표절 역시 2007년 교육부가 세계적인 논문 표절 기준을 도입한 이후부터 적용하는 것이 맞다.
야당 쪽에선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선정하는 데 협의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하는데.어느 정권도 취임하면서 야당과 협의해 국정운영 계획을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정부의 기본 성격에 반하는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국민에게 “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이렇게 바꾸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됐는데, 취임 뒤 다른 주장을 펴는 야당과 국정운영 과제를 선정하는 게 맞는가. 야당과 협의하는 것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인 이제부터의 일이다. 새 정부가 “우리는 이런 계획으로 해나갈 테니 서로 협의하고 수정할 부분을 찾자”고 하는 것이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기뻐하더라. “내 생각을 귀신같이 잘 알아서, 나보다 더 정확히 정리해줘 고맙다. 앞으로 애프터서비스도 철저히 해 계획대로 국민이 삶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힘을 합치자”고 했다.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추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가 120석밖에 안 된다. 기본적으로 야당과 협치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10년 동안 장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더 가면 위험하다. 민생 문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지 않은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이 빨리 되도록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입법이 400개가 넘는다. 우선 모든 후보가 함께한 공통 공약 관련 입법은 올해 안에 마칠 것이다. 이견 있는 법안도 국회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수정해서라도 빨리 통과시켰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가 계속 지지율 80%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실망한 국민이 “제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달라”고 하는 염원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문 대통령에게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만일 야당이 협조하지 않고 발목잡기를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 질책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남은 건 협치, 100대 과제에 필요 입법만 400개김 위원장은 내년 경기도지사 선거 후보로 거론되는데.지금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도지사 선거에 도전한 것은 개인 의지도 있었지만 어려운 선거 환경에서 나 말고 대안이 없다는 당의 요구도 컸다. 하지만 선거 지형이 많이 바뀌었고, 더불어민주당에 좋은 후보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게 옳지 않겠나. 내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상황을 좀더 지켜보자.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법원, KBS 박장범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대통령 술친구 이긴 ‘김건희 파우치’…낙하산 사장 선임은 무효”
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관저 유령건물 1년8개월 ‘감사 패싱’…“대통령실 감사방해죄 가능성”
꺼끌꺼끌 단단한 배 껍질…항산화력 최고 5배 증가 [건강한겨레]
다 ‘내가 했다’는 명태균, 이번엔 “창원지검장 나 때문에 왔는데…”
“회장 자녀 친구 ‘부정채용’…반대하다 인사조처” 체육회 인사부장 증언
‘1호 헌법연구관’ 이석연, 이재명 판결에 “부관참시…균형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