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배상’ ‘재심’ ‘유죄판결 일괄 무효’….
사법부의 ‘긴급조치 위헌 결정’ 전후로 피해 구제 논의도 구체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지난해 대선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보상법안을 선보였다. ‘국회의원 박근혜’가 이름을 올린 마지막 입법안도 ‘대한민국 헌법 제8호에 근거한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지난해 11월26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대표 발의)이었다. 그의 과거사 인식을 놓고 분출하던 부정적 여론을 다독이며 ‘대통령 박근혜’로 올라서기 위한 막판 카드란 분석이 적지 않았다. 2개월 앞서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은 ‘유신헌법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10월16일)을, 대선 닷새 뒤엔 같은 당 전해철 의원이 ‘유신헌법하 긴급조치 위반 유죄판결의 일괄 무효를 위한 법률안’(12월24일)을 대표 발의했다.
여야 법안의 차이는 크고 또 작다. 큰 차이는 명칭에서부터 확인된다. 민주당 의원들은 긴급조치의 근거를 ‘유신헌법’이라고 표기했다. 박 대통령이 참여한 법안은 ‘대한민국 헌법 제8호’란 명칭을 썼다. 피해자를 정의하는 범위도 다르다. ‘박근혜 법안’은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등 형사상 불이익과 징역형, 벌금형 등 형사상 처벌을 받은 자”로 한정했다. ‘정청래 안’은 “강제 몰수, 헌납 등 민사적 손해를 받은 자”까지 대상을 넓혔다. ‘전해철 안’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긴급조치 판결 일괄 무효화’란 근본 처방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보상법안’이란 점에서 박근혜 안과 정청래 안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심의·의결토록 한다는 부분도 같다. 위원회 세부 운영 방안으로 들어가면 문구까지 거의 동일하다. 새누리당이 한 달 이상 앞서 발의된 정 의원 안을 ‘의식적으로’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민주당은 보고 있다. 정 의원 쪽은 “그만큼 합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선 ‘보상’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불법에 따른 피해이므로 ‘적법한 법 처분’임을 전제한 보상 대신 ‘배상’이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보상이란 개념엔 과거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판단에서다. 3월21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국회에 접수된 보상법안들도 배상법안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긴급조치 처벌 근거 자체가 무너졌으므로 배상으로 가는 건 당연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전해철 안’은 긴급조치로 상실·정지된 자격을 회복하고 국가 배상 청구의 길을 열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상 너머 국가폭력 기억 장치 마련해야
배상 방식을 놓고도 방법론이 나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위헌 결정이 난 상태에서 보상을 전제로한 입법에 구걸할 이유가 없다. 재심과 무죄판결을 통해 형사배상을 받아내는 사법적 청산이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각개 보상’ 대신 ‘일괄 보상’이 효율적이란 점에서 입법적 접근론도 제기된다. 한인섭 교수는 “수많은 피해 사건을 개별 소송을 통해 해결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5·18특별법처럼 국회 입법을 통하면 한꺼번에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수 변호사는 금전적 보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국가폭력이 인간과 사회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환기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 보상은 국가 의지의 문제”란 뜻에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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