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영국노동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이 1906년이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만들겠다고 한국에서 사람들이 모인 건 1999년 8월29일이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모인 사람들은 돈도 명망도 없었다. 대신 열정이 있었다. 한국전쟁 뒤 한국에서 노동자의 정치는 사라졌다. ‘박멸됐다’는 서술어가 적당해 보인다. 1995년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민승리21’이라는 이름으로 1997년 대선에 출마했다. 선거에서 30만6026표를 얻었다. 성적표는 초라했지만,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1998년 5월20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국민승리21을 확대·개편하여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적극 지원, 연대한다”고 결정했다. 1999년 8월29일 여의도에서 2천여 명이 모여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훗날 민주노동당 기관지가 된 는 이날 기사에 ‘역사를 만들어낸 10시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집위, 39명 중 27명 철회안 찬성
13년 뒤 8월13일 밤에도 역사가 만들어졌다. 노동정치와 관련된 역사다. 다만, 내용은 13년 전과 정확히 반대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밤늦게까지 중앙집행위원회를 연 뒤,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노동중심성 확보와 1차 중앙위원회 결의 혁신안이 조합원과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지지를 철회한다”고 결정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민주노총 중앙임원과 부설기관장, 산별연맹조직 대표자 등 모두 57명으로 구성된 의결기구로 월 1회 열린다. 최고의결기구는 대의원대회지만, 일상적인 결정은 이 회의에서 논의·결정된다. 격론이 벌어졌다.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킨 표결권자 39명 중 27명이 지지 철회안에 찬성했다.
예상된 결과다.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 5월 ‘조건부 지지’ 결정을 내렸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중앙위의 폭력 사태를 볼 때 지지 철회가 옳지만, 강기갑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혁신하는지 지켜본 뒤 최종 결정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7월26일 통합진보당 의원총회에서 부결됐다. 민주노총의 지지 철회 결정은 이런 사태 뒤 이뤄진 것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8월16일 YTN 라디오에서 “최소한의 혁신 조치들이 진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통합진보당과의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생각에 철회하게 됐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의 불편함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지지 철회를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 8월14일, 이정희 전 대표는 한 출판기념회에서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은 이 당으로는 안 된다며 곳곳에서 자해 행위를 벌이고 있다. 당의 지도부와 유력 정치인, 노동계 상층까지 나선 이 끝없는 내부의 공격”이라고 발언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은 잘못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노동계 상층’이라는 표현이 입길에 올랐다. 민주노총은 8월16일 논평을 내어 “이 전 대표가 말한 ‘노동계 상층’이란 지난 8월13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노총의 중요 의결기구의 결정을 파괴적인 내부 공격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민주노총이 만들고 배타적 지지를 받았던 민주노동당 대표 출신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사고와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오병윤·이상규 의원의 발언도 비판했다. 감정의 골이 깊다.
‘야권 연대 맹목적 추진’ 비판도 나와
민주노총은 지지 철회를 밝히면서도 진보정당과 앞으로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위원장은 YTN 라디오에서 “왜 이런 사태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도 하고, 과연 어떻게 가는 것이 이 땅에 진보정치를 되살리는 길인가의 차원에서 내부 토론을 하고 있는데, 최소한 내년까지 내부 인사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최대 주주였다. 돈과 인력의 젖줄이었다. 선거 때는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을 찍도록 ‘배타적 지지’를 천명했다. 대신 민주노동당은 당 간부 가운데 일부 인원을 민주노총에 할당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 출신 활동가를 당직에 할당하지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당원 가입, 당비 납부 등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최대 주주 역할을 해왔다. 당원 7만여 명 가운데 3만5천여 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추정된다. 그 줄이 8월13일 끊어졌다.
13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 민주노총이 떨어져나가도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에는 분기마다 나라에서 받는 수억원의 국고보조금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8월14일 올해 3분기 국고보조금 90억1300여만원을 4개 정당에 지급했다. 통합진보당은 7억51만8천원을 받았다. 국고보조금과 일부 당비를 합치면 최소한의 물리적 조직 운영은 가능하다. 문제는 진보정치의 전망과 국민 지지율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8월6~7일 조사를 보면,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2.8%였다.
노동정치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당장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노총 특별위원회’의 회의가 지난 8월14일 열렸다.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자유롭게 의견과 고충을 토로했다. “노동, 재벌 개혁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되는 대선이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정당 대선 후보의 입지는 민중 대표성이나 야권 연대 양 측면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되었다”(조상수 공공운수연맹 수석부위원장)는 고민이 나왔다. 야권 연대 자체에 대한 회의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위기에 처한 주요 평가 쟁점 중 하나가 ‘야권 연대 전술의 맹목적 추진’인 만큼 민주노총의 중심적인 전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임.”(인천지역 활동가) 노동계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여야 대선 캠프가 최대한 진보적 노동정책을 수용하도록 설득하고 제안하는 것 정도다.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일정한 지지를 조건으로 정책을 수용하도록 제안할 수도 있다.
잿더미 위에서 불씨 살릴까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쪽은 정파마다 온도차가 있다. 국민참여당계의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8월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모임’ 2차 회의에서 개인적인 판단임을 전제로 “통합진보당은 국민들에게 해로운 당이 되었다”며 “이 당에 더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에 좀더 무게가 쏠려 있다. 심상정 전 공동대표는 “새로운 노동정치와 만나는 과정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의 모습은 더 뚜렷이 그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탈당 계열은 탈당이 주는 정치적 손해와 갈등을 이미 경험한 바 있어 조심스럽다. 13년 만에, 노동정치는 다시 잿더미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찾아야 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참고 문헌 (조현연 지음·후마니타스 펴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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