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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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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께 一心으로 충성”

MB에게 불법사찰 내용 보고했다는 정황 담긴 문건들… 지원관실 간판 걸고 은밀하게
‘VIP 보위기구’로서 ‘충성’한 영포라인
등록 2012-05-24 15:31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 문건’ 내용은 적나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 문건’ 내용은 적나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난다.

“VIP께 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 지휘”.

일심, 특명, 절대 충성, 친위조직, 비선.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봉건적이거나 독재의 냄새가 물씬 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가까이는 현재의 북한에서, 조금 멀리는 유신 시절의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VIP에 대한 조폭 같은 한마음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 문건’이 작성된 것은 2008년 8월28일, 문건을 작성한 이는 나랏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VIP는 이명박 대통령을 칭한다.

불법사찰,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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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에게 ‘비선’으로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소한 불법사찰이 이뤄지던 시점의 청와대 대통령실장들은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구속 기소)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4용지 4쪽짜리 문건(‘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에는, 지원관실이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은밀하게 ‘대통령 보위기구’로서 ‘충성’을 다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문건은 ‘BH(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원관실을 지휘할 경우 “야당의 정치 공세에 전면 노출, VIP 국정 수행에 부담 가중, 표적사정·정치사찰 논란”이 있다며 지원관실을 한발 떨어진 국무총리실 아래에 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운영의 묘를 살려,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인 비선에서 총괄 지휘”할 것을 상신한다.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하명·특명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보안을 생각한 조처로 보인다. 이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비선’은 청와대부터 지원관실 말단 현장요원에 이르기까지 이 대통령 고향인 경북 포항과 영일 지역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 영포라인으로 채워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직과 기능이 폐지됐던 지원관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은 뒤 갑자기 부활했다. “저 많은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느냐”는 대통령의 ‘의심’이 계기가 됐단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지원관실이 다시 만들어진 직후였다. 이 문건은 민간인·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사찰이 일개 공무원의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진경락 전 과장이 여동생 집에 숨겨두었다가 최근 압수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는 이 대통령을 비판한 여야 의원들의 동향 등을 파악한 사찰보고서 수백 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정부 산하기관장·고위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옷 벗겨야” “따라붙어서 잘라라” “확실히 정리” “날릴 수 있도록” 등의 표현을 써가며 표적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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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그런 ‘구상’은 했을지 몰라도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이 드러난 지 2년이 됐지만 청와대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인정한 예는 거의 없다.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에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충성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날은 마침 5월16일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가 들통나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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