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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칼, 고삐쥔 손으로 향하나

최근 정권 핵심·주변 인사들 대거 구속한 검찰… 의도없다는 해명 뒤로 힘빠진 정권에 대한 늘어난 첩보의 결과 해석
등록 2011-07-01 11:41 수정 2020-05-03 04:26

“정치적 변환기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 세력 간의 정치 공방은 더욱 심해지고 이러한 시기에는 정당한 사정 활동도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수사 대상이 된 정치인이나 그 지지 세력은 검찰의 정당한 법 집행조차 편파·표적 수사라고 주장하며 마치 자신들이 정치적 의도 때문에 부당하게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그 반대의 정치 세력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비리 혐의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음에도,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는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검찰 수사와 결정에 대해 지속적인 정치적 의혹 등 논란이 제기되고, 이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검찰권 행사로 이익을 보는 정치권력은 겉으로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검찰을 경멸하며, 반대로 손해를 보는 쪽에서는 더욱 검찰을 증오하게 될 것이고, 결국 검찰권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함께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속으로 경멸, 대놓고 증오’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유리창에 검찰 직원들이 비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유리창에 검찰 직원들이 비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무리 욕을 얻어먹는 검찰이라도 알 것은 다 안다. ‘속으로 경멸하고, 대놓고 증오한다’는 사실을. 검찰이 괜한 욕먹지 말고 수사 잘해보자는 뜻에서 직접 만든 에 나오는 내용이다. 무려 859쪽에 이르는 실무전범에는 이 밖에도 검찰에 대한 유혹과 오해와 비판과 비난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빼곡하다.

정권 말이다. 3년 넘게 분에 넘치는 권력을 휘두른 이명박 대통령은 인정하지 않는 듯하지만, 돌아가는 청와대 시계, 그건 부정한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 이 대통령은 “나라가 썩었다”고 하면서도 그건 예전부터 그래왔다며 또 ‘남 탓’이다. 자기가 심어놓은 사람이 사고를 치고, 낙하산도 사고를 치고, 청와대에 몸담았던 인사들도 사고를 치는데도 자기 책임은 없다는 식이다.

검사들 중에는 앉은 자리에서 1~2년을 내다보는 사람이 많다. 남은 정치·선거·개각 일정, 지연·학연, 경제적 상황 등 온갖 변수를 대입해서 미래를 예측하는데, 듣고 있으면 그 예리함에, 시간이 지나면 그 정확함에 혀가 쭉 나온다. 특별수사나 공안수사를 하다 보면 이른바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앞날을 내다보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된 탓도 있다. 1년 단위로 피 말리는 인사철을 맞다 보니 자신과 경쟁하는 수십 명의 인사를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위험을 내다보고 양지를 찾아내는 ‘생존기술’로 이어진 탓도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검사들의 경우 여러 요직에 포진한 친구, 선후배가 찔러주는 정보도 고급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8월이면 임기 2년을 마치고 물러난다. 퇴임에 앞서 7월 중순께 차기 총장이 지명되고 인사청문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도 검찰총장이 퇴임하는 즈음에 함께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과 함께 8월에 물러날지, 아니면 10월께 퇴진할지를 두고 설이 갈린다. 대구·경북(TK) 출신인 권재진 민정수석이 호남 출신인 이귀남 장관에 이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고려해 차기 검찰총장의 출신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이명박 정권은 지역 안배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어쨌든 이번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민정수석 인사는 ‘정권 말기 관리형 인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검찰 말마나따 “검찰이 의리 있는 조직은 아니”라는 데 있다. 특히 ‘인사’를 무기로 검사들의 고삐를 죄던 정권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검찰의 칼날은 고삐를 잡은 손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검사는 센 놈, 큰 놈 잡고 싶어해”

최근 한 달 사이 정권 핵심·주변 인사들이 대거 검찰에 걸려들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구속 기소했다. 은 전 위원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의 법률지원단장을 지낸 대통령 측근이다. 중수부는 또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1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을 형사처벌할 태세다. 인천지검 특수부도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상임고문이던 방판칠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감사를 구속했다.

검찰은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 하다 보니 걸려들었을 뿐이라는 거다. 정권 말기가 되면 정권 초기에는 없던 현 정권 관련 범죄 첩보가 많이 들어온다. 정권의 힘이 빠진데다, 더는 빨아먹을 단물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는 당연히 전 정권 첩보가 많고, 정권 말기에는 현 정권 첩보가 많아진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정권을 가려가며 표적 수사를 한다는 비난은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정치 검찰’이라고 욕을 먹지만, 그래도 수사검사는 눈에 보이는 ‘대어’를 그냥 놓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검사는 센 놈, 큰 놈을 잡고 싶어한다. 그게 살아 있는 권력이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 모임을 운영했던 홍아무개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2007년 박 전 대표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불법 모금한 혐의다. 검찰은 홍씨 선에서 돈이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끝냈다. 사건의 성격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정권 초기와 비교하면 ‘수사 의지’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2008년 4월 당시 친박연대 인사들의 비례대표 공천헌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박근혜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지금 검찰의 수사는 ‘과잉 수사’ ‘표적 수사’ ‘야당 탄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반발했을 정도다.

MB, 내년엔 ‘퇴임 뒤’ 대비한 인사할 듯

아직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이맘때쯤 또 한 번 검찰 인사를 할 수 있다. ‘퇴임 뒤’를 대비한 검찰 인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권에서 주요 보직 인사가 결정되는 검찰 고위직들은 복잡한 셈법으로 내년 말 대선 정국까지 분석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정권 말, ‘센 놈’ 잡고 싶어하는 일선 수사검사들이라도 잘해야 할 텐데.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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