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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뿌리, 다른 선택

한나라당 대표 출마한 어제의 소장개혁파 동지 원희룡·남경필… 친이계 vs 소장파로 전력차 뚜렷하지만 최후 승자 몰라
등록 2011-06-29 18:16 수정 2020-05-03 04:26
같은 뿌리에서 나와 확연한 갈림길에 선 남경필 의원(오른쪽)과 원희룡 의원. 오는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는 원 의원이 앞서가겠지만, 훗날 누가 웃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겨레 탁기형, 연합

같은 뿌리에서 나와 확연한 갈림길에 선 남경필 의원(오른쪽)과 원희룡 의원. 오는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는 원 의원이 앞서가겠지만, 훗날 누가 웃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겨레 탁기형, 연합

“이 세계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암흑가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지만, 선의의 경쟁을 넘어 대척점에 서는 경우가 빈번하다. 7월4일 열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입후보한 원희룡·남경필 의원을 봐도 그렇다. 2000년 안팎 비슷한 시기에 정치를 시작해 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선두주자였던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변화’와 ‘40대 대표론’을 주장하며 뛰고 있으나, 딛고 있는 땅이나 처해 있는 상황은 극과 극이다. 원 의원은 구주류 친이명박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어 비교적 여유가 있는 반면, 남 의원은 세력이 약한 소장파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 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 친박근혜계의 나머지 한 표가 간절한 처지다.

10년 동안 한 곳 바라보다 갈라서

한나라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한 안상수 대표 체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치러진다. 내년 7월까지 전임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지도부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책임지고 12월 대선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내 여러 계파의 각축이 치열하다. 남·원 의원을 포함해 권영세·나경원·박진·유승민·홍준표 의원 등 모두 7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대의원 21만여 명의 1인2표 투표에 여론조사 결과(30%)를 더해 최다 득표자는 대표 최고위원이 되고 차순위자 4명이 최고위원이 된다. 그런데 여성 1명은 득표에 관계없이 최고위원이 되므로 남성 후보 하위 득표자 2명을 제외한 5명으로 새 지도부가 꾸려지게 된다.

남 의원과 원 의원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한곳을 바라봐왔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갈라섰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원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당시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개혁 진영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어디에 줄을 서겠나. 줄을 서면 녹아 없어지고 스토리가 끊어진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당시 개혁 진영인 ‘수요모임’ 소속 의원은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캠프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남경필 의원은 원 후보의 곁을 지켰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박근혜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던 2004년 7월 전당대회의 또 다른 주인공은 2등을 차지한 원희룡 의원이었다. 그는 전당대회에 나서며 “원희룡 개인은 없다”고 말했다. 개혁그룹의 대표주자로 나섰고 당선되면 개혁그룹의 도구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당시 원 의원의 출마를 강권한 이는 다름 아닌 남경필 의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밖에서 ‘호랑이를 잡아라’ 하고 소리만 질렀다. 이제는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정치 결사체를 지향하는 수요모임의 대표 선수를 출마시키기로 결정했고 자연스럽게 원 의원으로 뜻이 모아졌다.” 당시 남 의원의 말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다. 남 의원은 미국 유학 중에 부친 남평우 전 의원의 사망으로 인한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비교적 순탄하게 정치에 입문했고, 원 의원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법조계를 거쳐 2000년 총선에서 당선돼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선수는 남 의원이 앞섰지만 화려한 경력과 대중적 인지도 덕분에 조명은 원 의원에게 집중됐다. 출신 성분과 성장 배경은 확연히 달랐지만 두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정치 개혁과 정당 개혁을 표방하며 소장개혁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10여 년간 역할을 분담하면서 같은 자리에서 한곳을 바라봐왔는데 이제는 확연하게 갈라선 셈이다. 한 사람은 세력이 예전만 못한 구주류 친이계의 대표주자로 나섰고, 또 한 사람은 원내대표 경선 이후 신주류로 불리기도 하는 비주류에 몸담고 있다.

“개혁주자 아닌 개인 원희룡일 뿐”

사실 원 의원의 변신은 2008년 총선 즈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정두언·남경필 등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며 불출마를 요구하고 나설 때 원 의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후 원 의원은 친이계, 특히 이상득 의원 쪽과 급속히 가까워졌다. 2009년 5월 당 쇄신특위 위원장에 임명되더니 2010년 안상수 전 대표 체제에서는 사무총장을 맡았다.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었다. 한때의 ‘동지’들 사이에서는 “주류에 줄을 섰다”거나 “더 이상 개혁 진영의 대표주자가 아닌 개인 원희룡일 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비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랜 비주류 생활에 지쳤을 것이라거나 한때 엇비슷한 무게감을 지녔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반면 원 의원은 나경원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도 밀리면서 현실적인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안상수 전 대표와 동반 사퇴한 정두언 전 최고위원은 원 의원을 겨냥해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대표가 물러났는데 실무 총괄책임자인 사무총장이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일은 우리 정당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원 의원은 “특정 계파에 속한 적이 없어 계파 화합의 적임자이며, 4·27 재보선 때는 실무 역할을 했을 뿐 분당 공천 등 핵심적인 당의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최고위원들”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전당대회 선거인단 규모가 21만여 명에 달해 조직 동원이 쉽지 않고 쇄신의 기운이 높은 가운데 치러진다는 점에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으나, 구주류 친이계의 지원을 받는 원 의원과 신주류 소장파 외에는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남 의원의 전력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관전 포인트는 두 사람의 우열이 아니라, 원 의원의 대표 당선 여부, 그리고 남 의원의 의미 있는 득표를 통한 상위권 진입 여부다.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당시 한때 원희룡 대권, 남경필 당권으로 미래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발 딛고 선 곳이 달라지자 두 사람의 꿈은 같아졌다. 둘 다 차차기 대권의 꿈을 숨기지 않는다. 국회의원 한두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도 한다. 실제 원 의원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원희룡과 남경필, 미래를 두고 대척점에서 경쟁하는 이번 전대에서는 뚜렷한 전력 차이 때문에 승부가 쉽게 갈릴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거나 가까운 한국 정치사를 보더라도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원 의원과 남 의원의 정치 입문 과정부터 최근까지의 행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한나라당 출신 한 원로 정치인의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남경필, 진지하게 많이 성장한 듯”

“원희룡은 참 좋은 재원인데 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를 편하게 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남경필은 한때 ‘오렌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편하게 정치를 시작했는데 공부를 꾸준히 하고 진지하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나중에 누가 웃을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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