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9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한 마트에서는 설을 앞두고 과일·채소 등부터 공산품까지 다양한 물품이 대목을 맞아 판매되고 있었다. 이 마트의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시가 40억원에 달한다. 마트는 1층과 건물 앞 도로변을 차지하면서 100평이 넘는 규모다. 영하 10℃까지 내려간 혹한의 평일 낮, 마트에는 10여 명의 손님이 보인다. 마트를 찾은 한 40대 주부는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믿고 찾는다”며 “가격도 다른 마트보다 오히려 더 저렴하다”고 말한다.
6억원 벌고 1억2천만원 보조금 받고
새마을농축특산물 직판장, 주변에서는 ‘새마을 마트’라고 부르는 이 대형 판매장이 들어선 곳은 군포시새마을회가 운영하는 새마을회관이다. 이 건물은 시 소유지만 사단법인 군포시새마을회가 무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트의 주인도 새마을회다. 마트는 청과·제과 등 파트별로 업자들이 들어와 판매를 하고 새마을회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새마을’이라는 이름과 달리 주변의 인심은 사납다. 2002년 문을 연 뒤 저가 전략으로 주변 주민들의 이용은 늘었지만, 인근 아파트 단지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동네에 대기업 마트가 두 개나 들어서 가뜩이나 가게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새마을 마트까지 들어서면서 경쟁을 하는 탓에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반경 300m 이내에 삼성홈플러스와 이마트가 있다.
특히 주변 상인들은 군포시새마을회가 시로부터 건물을 무상 임대받아 수익을 내는 것은 특혜라며 원성이 높다. 결국 마트 특혜에 대한 민원이 제기돼 군포시는 감사를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동네 상권을 죽인다는 원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총체적 부실과 비리가 드러났다. 은 지난 1월20일 군포시새마을회에 대한 군포시의 감사보고서를 입수해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감사 대상 시기는 2009~2010년이고, 감사는 2010년 12월8일부터 14일까지 5일 동안 진행됐다. ‘(사)군포시새마을회 특혜 의혹 관련-보조사업 및 단체운영 특별조사 결과보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는 2002년 새마을회관을 건립했다. 운영은 군포시새마을회가 맡았고, 매년 1억원 이상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2009~2010년에는 1억2천여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문제는 새마을회가 감사 대상 기간에 6억여원의 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막대한 수익을 내는 곳에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다. 시가 새마을회의 수익 등 재정상황에 대해 최소 1년에 한 번씩 들여다보도록 돼 있는 점에 비춰보면, 형식적 심의를 통해 무분별하게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군포시새마을회는 이미 1억원이 넘는 여유자금까지 챙기고 있었다. 감사보고서는 뒤늦게 드러난 1억원에 대해 ‘여유자금’ ‘원목적에 맞지 않는 자금’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공익에 써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새마을회 소유의 회관을 확보하기 위한 자금으로 비축했던 것으로 안다”며 “보조금 집행 및 정산이 부적절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금이 불법적인 용도로 쓰이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더 조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쪽에서는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이 아닌지 더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트 수익의 38%만 공익사업 투자보조금 회계도 불투명했다. 보조금은 군포시새마을회가 제출한 사업별 예산을 시에서 1년 전에 미리 심사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새마을회가 벌이기로 한 사업에 대해 시의 보조금 교부 결정이 난 뒤 실제 사업 예산이 감소됐는데도 나머지 금액을 반환하지 않은 사실이 이번 감사 결과 드러났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500여만원 규모였다. 정산금이 반환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정산을 증빙할 자료(영수증 등)가 누락된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됐다.
군포시새마을회 임원의 보조금 유용을 의심할 만한 증거도 다수 발견됐다. 2009년의 경우 인건비 등 필수 경비를 제외한 보조금 8500만원의 약 34%인 2800여만원을 급식비 등 접대성 경비로 편성해 집행했다. 새마을회에서 운행하는 관용차량은 운행 기록이 아예 없고, 새마을회 물품 구매 기록은 있지만 견적서 등이 누락된 액수만 3600여만원에 이른다. 군포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누락된 금액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감사가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군포시새마을회는 정작 했어야 할 공익사업에는 인색했다. 마트의 수익만 2010년 2억4천여만원에 달했지만 공익사업에 투자된 금액은 38%에 불과했다.
보조금 운영과 수익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는 감사 결과에도 군포 지역 시민단체 쪽에서는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마트의 특별회계 장부가 손익조차 불분명하게 기록돼 있다. 복식회계로 돼 있지 않은 장부를 시 감사에서는 지적조차 하지 않았다”며 “2억원의 수익과 거기에 더해 받은 1억원 이상의 보조금 용처 등에 대한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포시 관계자는 “계좌 추적 등 수사가 필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봤다”며 “새마을회 내에 감사도 있었고, 불법을 저지를 만한 정황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시 관계자의 말대로 군포시새마을회에도 감사가 있다. 하지만 감사 ㅅ씨는 이사를 겸하고 있다. 정관 21조 3항에는 ‘감사와 이사는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 군포시새마을회 관계자는 “2008년부터 ㅅ이사가 감사를 맡았는데, 이사 사임 뒤 등기를 고치지 않아 겸임으로 돼있는 것 같다”며 “바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더구나 이번 시의 특별조사에서는 ‘자체 감사인에 대한 거마비 과다 지원(2건 40만원)’ 등도 지적되고 있다. 이사·감사 겸직을 제보한 한 새마을회 지도자는 “감사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며 “겸임과 관련해서도 짜고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등 진상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군포시새마을회의 최근 10년 역사를 보면 심상치 않은 구석이 또 있다. 2002년 회관 건립과 동시에 새마을회 이사 5명이 해임됐다. 2010년 8월에도 5명이 해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사 해임에는 재적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2002년 당시나 현재의 이사회 인원은 정원 20명의 과반에 이르지 않은 9명에 불과하다.
새마을회로 흘러 들어간 4대강 홍보비군포시 담당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이번 감사에서도 이 사안은 다루지 않았다. 군포시새마을회 관계자는 “해임된 것이 아니라 실은 미출석이나 이사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임한 것”이라며 “사임은 본인 인감증명 제출 등 절차가 복잡해 관행상 해임으로 처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사 수가 적은 것에 대해서는 “이사회에서 곧바로 충원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군포새마을회의 한 새마을 지도자는 “관행이라는 말로 넘어가서는 안된다”며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일부 임원들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다시 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고로 임원의 해임은 정관 위반이나 새마을회의 업무방해·명예훼손, 기타 사회적 물의 야기 등 중대 사유가 발생해야 가능하다.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새마을회 정관 24조를 보면, 회장은 연 1천만원 이상, 부회장은 연 300만원 이상, 이사 및 감사는 연 30만원 이상, 동 회장은 연 20만원 이상의 회비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취지와 임원의 고액 회비는 어울리지 않는다. 새마을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새마을 지도자는 “고액의 회비를 내야 임원이 될 수 있는 규정을 고쳐서 진짜 일꾼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 감사로 집행부가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자금 관리, 공익사업 부재 등이 군포시새마을회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서울 지역의 한 구청 공무원은 “새마을회가 자체적으로 기능하지 못한 지는 오래됐다”며 “기능을 잃어버린 단체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회의를 할 때에도 회의 자료 준비나 회비 결산, 추진성과 보고 등을 할 역량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구청 직원들이 직접 회의 연락과 자료 준비, 회계 등을 도맡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정부가 새마을회를 관리하는 이유는 뭘까? 새마을 지도자만 200만 명에 달하는 규모 때문이다. 새마을회가 나서서 정부 사업을 지지하면 여론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원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 새마을중앙회(지역 지회 제외)는 국내 단체 가운데 최대인 30억원의 보조금을 수령했다. 또 정부가 지난해 새마을중앙회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관련 사업 명목으로 지급한 국고보조금이 30억여 원에 이른다. 서울시에서도 지난해 G20 캠페인 한 항목으로만 2400만원을 지원했다. 4대강 홍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충남 공주시는 공주시새마을회가 주관한 4대강 찬성 집회 비용 600만원을 보조금 형태로 지급해 물의를 빚었다. 지급된 보조금이 직접 불법적인 선거자금으로 이용된 경우도 있었다. 충남 청양군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4월 새마을회 지회장, 사무국장, 군협의회장 등 주요 새마을회 임원들이 시의 보조금으로 금품을 살포했다가 뒤늦게 덜미가 잡혀 지난해 11월 구속되기도 했다.
특혜 쪼개 시민의 품으로
김현 풀뿌리연구소 이음 연구위원은 “새마을회에 대한 특혜는 이제 시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며 “시가 건물을 무상 임대하는 경우에는 유기농센터, 저소득층 자녀 공부방 등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관리 주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협성대 교수(도시지역학부)는 “새마을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은 새마을운동지원법에 따르고 있다. 관련법을 정비해 예산 편성과 집행에 투명성을 기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좌우를 막론한 지역의 모든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공정하게 보조금을 집행하는 시민사회지원운용기금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군포=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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