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결과 (천안함 선수·선미·연돌과 어뢰에서 채취한 흡착물질이) 어떠한 물질이든지 간에 구조 및 성분이 동일하다는 점이 어느 순간 4개 물체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로, 이는 어뢰에 의한 외부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되었음을 확실시하는 것입니다.”
흡착물질 논란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적인 답변이다. 836호가 언론 최초로 천안함 선체·어뢰 등의 흡착물질을 직접 실험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어 11월17일 한국방송 도 흡착물질 실험 등을 통해 각종 의혹을 보도했다. 공통분모는 흡착물질이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에서 나온 흡착물질이 폭발의 결과물인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 아니라 100℃ 이하에서 침전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것이다. 국방부의 답변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어떠한 물질이든지 간에’다.
“실험 신뢰하지만 결과에 동의 못해”
지난 9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는 윤덕용 전 민·군 합동조사단 단장(오른쪽).한겨레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방부가 결정적인 폭발의 증거라고 한 흡착물질이 실상 폭발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실험 결과가 나오자, 이제는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이든 상관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6월29일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를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흡착물질은 폭발의 결과물인 비결정질 알루미늄이 분명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사실을 잊은 게 분명하다. 태도가 달라진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재실험은 없었고, 새로운 근거가 제시되지도 않았다.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 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직후인 4월 결성된 합조단을 이끌며 국방부 보고서가 제시한 과학적 근거들을 검증하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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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윤 전 단장은 의 실험에 대해 “실험 과정에 오류는 없어 보인다”며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실험에 대해 국방부의 입회 아래 제3의 전문가가 실험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던 군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하지만 윤 전 단장은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 폭발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 대체로 폭발이 아닌 100℃ 이하의 자연상태에서 침전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역으로 이 물질이 폭발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기 때문에 폭발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다.
윤 전 단장은 결국 “해석의 차이”라고 말했다. “(흡착물질을 직접 실험한) 정기영 안동대 교수와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박사가 말하는 가능성은 합조단도 고려하고 있었다”며 “다만 비결정질 물질에서는 황의 화학조성이 물리적 결합인지 화학적 결합인지, 아니면 제3의 상태인지 확정지을 수 없어서 포괄적으로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로 표현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흡착물질에 황이 포함됐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합의하에 배제했고 포괄적으로 ‘알루미늄산화물’(AlxOy)이란 표현을 쓰기로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과학계의 상식과 다소 어긋난다. 한 대학교수는 “알루미늄이 x개, 산소가 y개 있다는 것으로 알루미늄산화물을 표현하고, 이것이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을 포괄해 통칭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그 말대로라면 황(S)의 개수도 z개 등으로 포함해 AlxOySz로 표현돼야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는 화학을 하는 학부생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지식인데, 결론의 오류에 대해 너무 궁색한 변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5월 흡착물질 분석을 맡은 국방과학연구소 내부에서 ‘황이 검출됐으니 폭발의 결과물로 보기 힘들다’는 이견이 있었던 사실이 이번 윤 전 단장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윤 전 단장은 “황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었다”며 “다만 황이 어떤 상태로 결합돼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여서 배제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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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설명에 대해서도 투과전자현미경(TEM) 분석 등을 통해 입자별로 분석했을 때 황이 균질하게 나왔다면 ‘화합물 상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게 학계의 일반적 상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대학의 연구자는 “황이 자연환경에서는 지표나 해수, 공기 등에서 음이온으로 존재하는데, 흡착물질 실험 결과를 보면 이게 양이온과 결합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황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알루미늄과 화합물 형태(AlxOySz)로 존재한다는 것을 입자분석으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특히 황이 무시하고 넘어갈 만한 적은 양도 아니기 때문에 학자들은 쉽게 흡착물질이 황화합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전 단장은 황의 화학조성이 물리적 결합인지 화학적 결합인지 확정지을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런 복잡한 분석을 거치지 않고 TEM으로 입자 분석만 해도 어떤 물질인지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는 의 자체 실험을 검토한 뒤 “알루미늄과 황의 비율이 4 대 1로 나온 값들이 입자별로 이 정도면 균질하다고 봐야 하고, 그렇다면 이를 황화합물로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재료공학 분야의 권위자인 윤 전 단장은 왜 과학계의 상식에서 멀어졌을까? 그의 해명을 더 들어보자. 윤 전 단장은 “과학적 실험을 동원하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며 “수조 폭발실험에서 선체와 어뢰부품의 흡착물질과 동일한 물질이 나왔으므로 결국 흡착물질도 폭발물질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흡착물질 분석을 통해 어뢰 폭발의 결정적 증거물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하다가, 의 실험으로 흡착물질이 폭발과 상관없는 침전물질임이 드러나자, 흡착물질과 수조 폭발실험의 결과물이 동일하므로 ‘논리적으로’ 폭발의 증거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윤 전 단장의 논리대로라면, 백령도 앞 바닷물에 알루미늄 분말을 뿌려 생긴 침전물이 천안함 선체 및 어뢰 부품의 흡착물질과 동일하다면 폭발이 없었다는 결정적 증거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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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윤 전 단장이 언급한 수조 폭발실험은 그 자체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선체의 흡착물질이 폭발재가 아닌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고 밝힌 과학자들은, 모의 폭발실험의 결과물이 이와 동일한 물질로 나온 데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흡착물질을 공개했듯이 모의 폭발실험으로 얻은 폭발재를 공개하거나 재실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수중실험에 결정적 오류가 있었거나, 아니면 성급한 결론을 위해 분석 결과를 ‘마사지’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터뷰 내내 윤 전 단장의 태도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지난 6월 그는 기자에게 당시 이승헌 교수의 실험이 가진 오류를 지적하며 흡착물질은 과학적으로 규명됐음을 강조했다. 이제 그는 흡착물질이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국방부의 최종 보고서에서 흡착물질 관련 내용을 본문이 아닌 부록에 실은 이유는 흡착물질이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수조 실험에서 폭발물이 형성됐더라도 선체나 어뢰에서는 다른 원인으로 그 물질이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흡착물질이 폭발에서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모의실험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이제 와서 흡착물질이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합조단에서는 처음부터 부수적이고 보충적인 의미가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뢰추진체가 공격무기였다는 것입니다. 공격무기였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폭발 원점 근처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재실험 요구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윤 전 단장은 “공개 실험을 해도 그것을 ‘그들’이 신뢰한다고 보장할 수 없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비용을 들여 해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윤 전 단장과 국방부의 입장대로라면 지난 5월20일 과학적 논거라고 내세웠던 흡착물질 분석은 사실상 폐기되는 것이다. 흡착물질을 폭발물질이라고 결론지었던 분석은 국방부의 유일한 과학적 증거였다. 국방부는 전가의 보도인 “중요한 건 1번 어뢰”라는 결론으로 도돌이표처럼 돌아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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