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천안함은 이미 종결된 사안이다. 하지만 천안함의 진실을 찾는 이들의 작업은 국방부가 9월10일 ‘천안함 피격사건-합동조사결과보고서’를 낸 이후 점점 날카로우면서 세밀해지고 있다. 합동조사결과보고서는 지난 5월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발표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야당과 시민사회, 일부 과학자 그룹의 숱한 문제제기에도 군은 오로지 ‘북한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한 방향만을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정부 발표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황의 비밀’은 무엇을 말하나한국기자협회와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참여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는 10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합조단이 어뢰 폭발의 결정적 증거라고 밝힌 흡착물질은 폭발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Al4(OH)10(SO4)4H2O)에 가깝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합조단으로부터 확보한 천안함 연돌(굴뚝), 어뢰 프로펠러 등의 흡착물 시료를 넘겨받아,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지질과학과 분석실장인 양판석 박사(지질학)에게 분석을 맡겨 이런 결론을 얻었다. 합조단은 그동안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부에 들러붙은 흰색 물질은 알루미늄 성분이 첨가된 수중폭약의 폭발 결과물인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Al2O3)이라고 설명해왔다. 선체에서는 주로 갑판 위의 흡착물질이 분석 대상이 됐는데, 합조단은 이것에 대해 폭발과 함께 일어난 버블제트 현상에 의해 거대한 물기둥이 발생했고 폭발물질을 포함한 물이 갑판 위를 뒤덮으면서 흡착물질이 남았다고 주장해왔다. 합조단 입장에서는 흡착물질이 폭발의 결과물인 동시에 어뢰 폭발과 함께 발생한 버블제트 현상, 아무도 목격한 이가 없는 물기둥 현상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결정적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 검증위의 의뢰를 받아 9월24일부터 10월7일까지 흡착물질을 직접 분석한 양 박사는 엑스선회절분석(XRD), 에너지분광분석(EDS), 적외선분광분석(FT-IR), 전자현미분석(EMP), 레이저라만 분광분석, 주사전자현미경(SEM) 관찰 등의 방법으로 흡착물질을 분석해 바스알루미나이트 화학식과 가장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흡착물질을 둘러싼 합조단과 일부 과학자들의 논쟁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지속돼왔는데, 의혹을 제기해온 과학자 그룹이 직접 흡착물질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양 박사와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 등은 합조단의 흡착물질 분석 결과와 그를 토대로 한 자체 추가 실험을 통해 흡착물질은 자연 상태에서 부식 등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수산화알루미늄(Al2(OH)3)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왔다.
복잡한 화학기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해 합조단의 주장은 흡착물질이 알루미늄(Al)이 포함된 폭발물의 폭약재라는 것이고, 이에 의혹을 제기해온 일부 과학자들은 흰색 흡착물질이 상온과 저온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성분이므로 폭발의 결과로 볼 수 없다는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스크루 손상의 ‘선행 문제’ 있었나동일한 흡착물질을 분석했는데 왜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까? 합조단은 이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정성분석을 했다. 양 박사는 정성분석에 더해 검출된 주요 성분의 배합 비율까지 분석하는 정량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화학식이 바스알루미나이트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합조단의 흡착물질 분석 그래프에도 그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황’(S)의 존재가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합조단은 알루미늄(Al)의 존재로 어뢰의 폭발재라고 주장하나, 그럴 경우 어뢰나 기뢰의 폭약에는 사용하지 않는 황이 어떻게 흡착물질의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로 포함됐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노종면 검증위원장은 “이 물질은 상온이나 저온에서 생성되는 수산화물로, 어뢰 폭발과 같은 고온 환경의 산물이 될 수 없다”며 “천안함 내부에 적재돼 있던 알루미늄 황산염같이 알루미늄과 황을 모두 포함한 화공약품이나 천안함 무기의 추진제에 있던 염소가 유출돼 알루미늄 합금 및 해수와 반응한 결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증위의 기자회견 직후 국방부는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합조단 전문가의 입회하에 제3의 기관이 개봉·분석하는 조건으로 흡착물질 시료를 제공했으나, 일방적으로 양판석 박사에게 분석을 의뢰했으므로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방부의 자체 분석 결과에서도 다량 검출된 황의 존재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없었다.
검증위는 국방부가 내놓은 ‘천안함 피격사건-합동조사결과보고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의 ‘더 이상 ‘버블제트’는 없다-천안함 종합보고서’를 통해, 합조단이 어뢰 피격 시점이라고 밝힌 시각에 앞서 천안함의 스크루가 손상을 입는 ‘선행 문제’가 발생했으며, 지진파와 공중음파가 발생한 시각에 폭발 또는 충돌로 추정되는 ‘약한 타격’을 입은 뒤 북서쪽으로 항해하다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검증위는 △국정조사 등 천안함 사건 전면 재조사 △부실조사 책임자 문책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상 천안함 항적정보 공개 △어뢰추진체 부식 실험 등을 촉구했다.
검증위의 기자회견에 앞서 미국 워싱턴에서는 합조단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해온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가 국내 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났다. 이들은 국방부의 합동조사결과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의 어뢰가 아닌, 우리 해군이 1970년대 후반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에 설치한 육상조종기뢰(MK-6) 폭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 지난 4월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과 같은 맥락의 결론이다.
검증위가 흡착물질 독자 분석을 통해 어뢰 폭발을 부정하는 과정을 거친 반면, 이 세 명의 학자는 합동조사결과보고서에서 ‘보물’을 건져냈다. 합조단이 천안함의 파손 상태와 가장 비슷한 형태의 폭발 유형을 찾기 위해 실시한 여러 조건의 가상실험(시뮬레이션)에서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유추해내는 방식이었다.
합조단 보고서에서 건진 보물
합동조사결과보고서는 “TNT 360kg이 수심 7m에서 폭발한 경우 천안함의 실제 손상 상태와 정성적으로 매우 유사한 손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근거리 어뢰 폭발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원거리(20m·30m·40m)에서 다양한 TNT양(100kg·200kg·300kg·400kg)이 폭발할 경우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도 가상실험을 했다. 그런데 서재정 교수 등은 천안함의 파손 상태를 분석해보면, 합동조사결과보고서가 결론으로 제시한 근거리 폭발(TNT 360kg·수심 7m)보다는 원거리 폭발(TNT 100kg·수심 20m)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천안함을 침몰시킨 주범은 어뢰가 아니라 기뢰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 합동조사결과보고서에는 “천안함은 호깅(배의 중앙이 선수·선미에 비해 들어올려지는 굽힘 변형)보다 새깅(배의 중앙이 선수·선미에 비해 처지는 굽힘 변형)에 취약하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다소 어렵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읽어보자. “TNT 폭약 100kg 이상이 천안함 중앙부 단면 중앙선 직하의 20m 거리 이내에서 폭발하면 천안함 일부 단면에서 최종 굽힘 모멘트보다 큰 휘핑(선체가 급격히 호깅·새깅하는 현상) 굽힘 모멘트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주선체 종강도에 기여하는 해당 단면의 길이 방향 부재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풀이를 하면, TNT 폭약 100kg 이상이 천안함 중앙 아래 20m 거리 이내에서 폭발할 경우 천안함이 들어올려졌다가 떨어질 때 천안함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충격으로 배의 앞뒤를 연결하는 부분에 손상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서 교수 등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TNT 130kg의 기뢰 폭약이 24m 깊이에서 폭발할 경우 높이 9.4m의 큰 파도 형태의 물기둥이 발생한다. 이날 파도의 높이가 2.4m였던 점을 감안하면 자연적 파도와 기뢰 폭발에 의한 파도가 중첩될 경우 파고가 11.8m에 달한다. 천안함은 최고 10.6m의 파도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12m에 가까운 파도에 의해 들어올려졌다가 떨어지는 순간 가스터빈실이 떨어져나가고 삼등분돼 침몰했다.’
이들의 가설은 합조단의 근거리 어뢰 폭발이 설명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의문을 해소한다. △‘근거리 어뢰 폭발’(수심 7m·TNT 360kg)이라면 가상실험 결과 82m 높이의 물기둥이 발생해야 하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점 △어뢰추진체가 30m 뒤쪽으로 밀려날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라면 앞으로 튀어나간 어뢰의 파편이나 부품들이 선체를 관통하거나 박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다는 점 △충격파와 버블제트 현상이 있었다면 폭발 원점과 가까운 가스터빈실도 파손되면서 선체가 두 동강이 날 가능성이 큰데 실제는 선체 내부가 온전한 형태로 ‘선수-가스터빈실-선미’ 등 세 동강이 났다는 점 등이다. 이와 함께 천안함 침몰의 주범이 ‘북한 어뢰’라고 가정할 경우 풀리지 않는 의문점 하나도 더불어 해소된다. 정부 보고서는 검출된 폭약 성분의 종류에 대해 “천안함은 HMX(28개소·527.91ng), RDX(6개소·70.59ng), TNT(2개소·11.7ng)가 혼합된 폭약이 들어 있는 수중무기에 피격되어 침몰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 등장하는 표 ‘주요 해상무기 폭약 성분’을 보면, 북이 보유하고 있다는 소련제 어뢰 폭약 성분에는 HMX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보유한 일부 어뢰와 유도탄에 들어 있다.
‘원거리 기뢰 폭발’ 가설 역시 취약한 부분은 있다. 기뢰의 발파장치가 제거된데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 폭발 가능성이 있는지, 또 어떤 원인에 의해 가상실험 결과를 충족하는 적당한 수심에서 폭발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박선원 연구원은 “바다 바닥에 있던 기뢰가 스크루에 얽힌 그물에 의해 끌어올려졌다가 물리적 충돌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 유럽 해안에서 2차 세계대전 때의 기뢰가 발견돼 폭파 처리를 했다. 우리 해군도 천안함 사고 부근인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의 기뢰를 2008년에 수거해 2009년 폭파 처리한 바 있어 폭발 가능성은 있다. 또 인양한 천안함의 스크루 부분에는 그물 등 어구가 어지럽게 감겨 있어 박 연구원이 제시한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연화리 기뢰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도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식의 기뢰 폭발 가능성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 가능성보다는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천안함 진실은 끝나지 않았다서 교수와 이 교수, 박 연구원은 자신들의 이름 영문 이니셜을 딴 ‘SLP 보고서’에 원거리 기뢰 폭발에 의한 천안함 침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합조단 전문가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란, 국민들에 드리는 고백’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정부의 합동조사결과보고서가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주어진 결론대로 마무리지었지만, 실제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장치’가 많이 숨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연구원은 이 장치를 “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의 양심의 조각들”이라고 말했다. 천안함의 진실 찾기는 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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