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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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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또 파는 ‘표적의 달인’

MB 정부 출범 직후부터 끊이지 않았던 한명숙 전 총리 주변 내사설…
여성계 인사·친분 기업인 등 ‘외곽’ 압박 소문도
등록 2010-03-18 10:10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거론된 주된 이유는 서울시장 선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현 시장에 맞서기 위해서는 야권 주자 가운데 정치적 상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던 한 전 총리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10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뒤쪽에서는 김홍일 중수부장이 피곤한 듯 눈 부위를 만지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해 10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뒤쪽에서는 김홍일 중수부장이 피곤한 듯 눈 부위를 만지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덕성여대 특별감사… 지은희 총장 겨냥설

한 전 총리가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겨냥한 ‘사정당국 내사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2008년 초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해찬 전 총리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등 거의 모든 참여정부 주요 인사를 겨냥한 정권 차원의 전방위 사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괴담’이 꼬리를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을 서거로 몰아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로비 의혹 수사 등 일부 괴담은 현실화되기도 했다. 괴담은 한 전 총리도 예외로 남겨두지 않았다.

‘한명숙 내사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이 총장으로 있는 덕성여대에 대한 특별감사였다. 지 총장은 2008년 12월 덕성여대 총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연임에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덕성여대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특별감사가 전격 실시됐다.

임시이사 체제였던 덕성여대의 일부 직원이 학교 돈을 횡령했으며, 대학의 학사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교과부의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교육계에서는 학교 정상화를 위해 교과부가 직접 임시이사를 파견해놓고 다시 스스로 특별감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학사 운영 감사 결과를 가지고 지은희 총장의 책임을 묻기 위한 의도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한 전 총리와 가까웠던 참여정부 관계자는 당시 “지은희 총장이 교과부의 외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꺼리고 있지만, 한 전 총리 주변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여성부 장관을 지낸 지은희 총장은 한 전 총리와는 여성단체 시절부터 두터운 인연을 쌓아온 ‘한명숙 인맥’으로 꼽힌다.

덕성여대에 대한 특별감사가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전 총리까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지은희 총장 역시 참여정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큼 교육계의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특별감사가 진행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명숙 전 총리 주변의 여성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표적 감사설’도 있다. 과거 한 전 총리가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인연을 맺었거나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시절 고액 정치후원금을 낸 여성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가 국세청 세무조사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의혹이다.

“후원금 낸 기업인 세무조사로 곤란” 의혹도

한 전 총리가 참여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기 환경산업 관련 신기술 개발로 환경부 장관 표창을 받은 ㄱ기업 김아무개 사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전 총리와 가까운 민주당 관계자는 “김 사장이 현 정권 출범 이후 감사원과 국세청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조사받은 사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ㄱ기업이 참여정부 시절 중소기업 관련 기금을 지원받은 적이 있는데, 이 돈이 다시 한 전 총리 후원금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내용의 조사였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한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인 2004년과 2005년 연이어 그에게 고액 정치후원금을 낸 바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후인 2009년 12월 김 사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부터 감사원 감사, 국세청 세무조사 등으로 회사가 너무나 큰 피해와 고통을 겪었다”며 “나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서 아직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 모든 내용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와 친분이 있는 여성 기업인에 대한 표적 감사는 다목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친노 그룹이 주축이 된 ‘시민주권’의 핵심 관계자는 “여성 기업인을 압박해 한 전 총리의 약점이 될 만한 내용을 파악하겠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것을 대비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한 전 총리를 재정적으로 후원할 만한 인사를 압박함으로써 실제적인 피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에서 비롯된 검찰 수사의 전개도 썩 매끄럽지 않았다. 한 전 총리 사건을 담당한 곳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였다. 특수2부는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연루된 국세청 그림 로비 의혹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수만달러를 건넸다는 의혹이 를 통해 보도되자마자 특수2부는 한상률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을 제쳐두고 한 전 총리 사건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한 전 총리 사건의 경우 재판 진행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됐지만,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곽영욱 전 사장의 부정확한 진술밖에 없었다. 한상률 전 청장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은 달랐다. 지난해 말 ‘한상률 전 청장이 유임 로비를 위해 상납을 요구했다’는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폭로가 추가로 언론에 보도됐다. 한 전 청장이 로비용으로 사용한 문제의 그림 을 직접 구매해 한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는 국세청 직원의 증언도 확보됐다. 특히 한 전 청장의 유임 로비 의혹과 관련해 로비 대상으로 현 정권의 최고 실세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구체적으로 지목됐다.

의혹 더 많은 한상률 놔둔 채 한명숙에 집중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한상률 그림 로비 의혹 쪽에 더 많이 쏠려 있었고, 정황증거도 이쪽이 훨씬 풍성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상득 의원, 한상률 전 청장 대신 한 전 총리를 주 타깃으로 삼았다.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는 ‘한명숙 죽이기’ 차원에서 진행된 표적 수사라고 주장했다.

박 의장은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상률 전 청장은 검찰이 (미국으로) 도피시킨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 전 청장 등이 연루된 대형 비리에는 봐주기 수사로 일관한 검찰 특수부가 몸도 건강하지 않은 70대 곽 전 사장에 대한 가혹 수사를 통해 얻어낸 진술로 한명숙 전 총리를 겨냥한 표적 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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