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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장남’ 최태원의 이혼…SK와 노태우 가문의 얽힌 역사

등록 2022-12-08 01:46 수정 2022-12-08 11:21
2003년 9월22일 오후 보석으로 풀려난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부인 노소영씨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9월22일 오후 보석으로 풀려난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부인 노소영씨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62)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1)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에 대해 법원이 2022년 12월6일 이혼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 회장이 이혼 의사를 밝힌 지 7년여 만입니다.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국내 대표적 재벌인 선경그룹(현 SK그룹) 가문의 장남 최 회장과 ‘정치 권력’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 관장은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금권과 정권이 만난 재벌의 ‘정경유착’ 역사의 대표적 사례로도 꼽히는데요. ‘재벌집 장남’의 얽히고 설킨 역사를 다룬 <한겨레21> 제1094호 기사 ‘노태우-최태원의 얽히고설킨 27년’을 다시 전합니다 _편집자 주

“노태우 대통령이 사위를 맞았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장남 태원(29)군과 노 대통령의 딸 소영(28)양은 13일 상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양가의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현재 국무총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과 신부는 모두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데 결혼 후에도 미국에서 계속 수학할 예정이다. (중략) 신랑과 신부는 미 시카고대에서 유학 중 교제를 해오다 지난 2일 약혼을 했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벌 사돈을 좋아해

SK그룹(옛 선경그룹) 고 최종현 회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 가문이 사돈의 연을 맺은 1988년 9월13일 보도된 기사의 한 토막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만났다는 미국 시카고대학은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이 1959년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곳이기도 하다. 고 최종현 회장은 당시 몇 안 되는 한국인 유학생이었고( 수서원, 2001),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했다.

시카고대학에서 만난 인연이 진짜 운명적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정략결혼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필연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드라마처럼 시작된 만남은 2016년 막장 드라마처럼 끝날 위기에 놓였다. 최태원 회장은 2015년 12월29일치 <세계일보>에 보도된 편지를 통해, 노소영 관장과 이혼할 뜻을 밝히면서 6살짜리 혼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반면 노 관장은 이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오른쪽). 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오른쪽). 연합뉴스

이 한 편의 막장 드라마에서 진짜 궁금한 대목은 따로 있다. 최태원 회장의 러브스토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사다. 그러나 최태원·노소영 부부로 연결된 두 집안이 한국 정치·경제사에 남긴 발자취는 개인사를 넘어선다.

SK그룹은 1980~90년대 석유·이동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는 이유로 항상 ‘특혜’ 의혹에 휩싸였고, 최태원 회장은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다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특혜와 꼬리표의 실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대한민국 재벌의 역사는 정경유착의 역사다. 재벌들은 1970~90년대의 정권에 자금을 갖다 바치는 대가로 각종 특혜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정경유착이 꼭 돈일 필요는 없었다. 때론 자녀들의 결혼으로 얽혔다.

역대 대통령들만 봐도 그렇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동아원그룹, 그리고 포스코 고 박태준 명예회장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딸을 한국타이어 집안에 시집보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SK그룹뿐만 아니라 신동방그룹(당시 동방유량)과도 사돈의 인연을 맺었다. 노소영 관장의 동생인 재헌씨는 1990년 신동방그룹 신명수 전 회장의 외동딸과 결혼했다가 2013년 이혼했다.

이혼은 두 집안 사이의 ‘거래’와 애증관계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12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으로 맡긴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며 사돈이었던 신명수 전 회장을 상대로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1995년 대통령 비자금 수사 이후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맡긴 비자금 230억원을 국가에 반납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실은 비자금이 654억원에 이르렀다는 게 노 전 대통령 쪽 주장이었다.

사돈 간 소송으로 비자금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던 것처럼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이혼 공방에서도 또 다른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지게 될까?

SK그룹 석유·이동통신 사업 확장은 특혜?

SK그룹은 1953년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창업주 최종건 전 회장이 창립한 선경직물회사가 모태다. 섬유회사였던 SK그룹은 두 차례 결정적으로 비약했다.

첫 번째는 1980년 11월 당시 공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였다. 섬유회사가 정밀화학회사로, 정유회사가 에너지·화학회사로 거듭났다. SK그룹은 석유개발 사업으로도 발을 넓혔다. 유공 인수로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고 최종현 회장의 꿈과 계열사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

당시 유공의 매출액은 선경의 10배가 넘었다. 선경그룹이 유공 인수자로 결정됐을 때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 ‘개구리가 구렁이를 삼켰다’는 평이 쏟아져나온 까닭이다. 선경은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 순위 10위권 밖에 있었으나, 유공 인수 이후 재계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SK그룹은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매출액 기준 재계 순위 2위다.

그런데 유공 인수 과정에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연관됐다는 여러 증언이 존재한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를 전한 바 있다. 최태원·노소영 부부 결혼식을 보름여 앞둔 1988년 8월30일치 <한겨레신문> 2면에는 ‘선경에 유공 ‘인수 조건’ 변경 특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신군부 보안사령관이던 시절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은 2010년 3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유공이 원래 삼성 몫이었다가 막판에 선경그룹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8월 당시 전두환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 수경사령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자신이 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삼성이 유공을 가져가면 안 되지 싶습니다. 선경은 사우디에서, 삼성은 멕시코에서 기름을 받을 예정이랍니다. 최중현(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아버지)씨 얘기를 들어보니, 사우디는 우리한테 안정적으로 기름을 준다고 약속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전두환 상임위원장이 “안병호 말이 맞네. 장관 불러서 선경에 주라고 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인연. <한겨레21> 제1094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인연. <한겨레21> 제1094호

두 번째는 이동통신 사업이다.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선경그룹과 포항제철, 코오롱 등 3사의 치열한 수주전 끝에 선경그룹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사돈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거세게 일자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됐다. 대통령이 바뀌고 난 뒤인 1994년 SK그룹은 민영화된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인수하고 1999년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면서, 국내 제1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됐다. SK텔레콤은 지금도 시장점유율 50% 안팎의 1위 사업자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은 정말 사돈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누린 걸까? 선경그룹은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동전화 사업을 추진했고, 1990년 선경정보시스템(주)를 설립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인지는 몰라도,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결혼 이후의 일이다.

정부는 1990년 6월 이동통신 경쟁 체제 도입 방침을 확정했다. 현직 대통령의 사위였던 최태원 회장은 1991년 종합무역상사 (주)선경에 입사했지만, 정보통신 부문에서 업무를 배우며 1992~94년 이동통신 사업권 수주 경쟁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선경그룹은 숱한 구설에 올랐다. 심사를 맡은 체신부가 돌연 사업자 선정 기준을 변경하고 주관적 평가 배점에서 선경그룹에 높은 점수를 주는 등 여러 정황들이 특혜 의혹을 뒷받침했다. 차기 대권 후보로 결정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대선 뒤로 사업자 선정을 미루자고 주장할 정도였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이후에는 최태원 회장이 대한텔레콤 대표로 취임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SK쪽은 노태우 정부 이전부터 통신업을 준비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1984년 미주경영기획실 내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한 뒤 오랫동안 정보통신사업을 준비해온 것이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장인 비자금 얽혀 검찰 소환되기도

최태원 회장이 꼭 장인 덕만 봤던 건 아니다. 1993년 4월 <한겨레>는 미국에 거주 중인 최태원·노소영 부부가 20만달러를 미국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11개 은행에 분산 예치했다가 기소됐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선경그룹 쪽은 최태원 회장이 당시 일했던 회사에서 받은 급여와 미국 내 친인척으로부터 받은 결혼축의금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거짓말이었음이 탄로났다. 1995년 대통령 비자금 검찰 수사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스위스은행에 숨겨놨던 비자금을 딸 부부에게 건넸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앞서 1994년 최태원 회장은 외화 밀반출 혐의로 검찰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었다.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검은돈’을 받아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선경그룹한테 받은 돈은 딸이 결혼하기 전 30억원에 그쳤다는 점이다. 딸을 시집보낸 친정아버지라 저어했을까.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629억원의 추징금을 2013년 완납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2년 SK 확대경영회의’에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2년 SK 확대경영회의’에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SK 제공

1994년 운 좋게 처벌을 피한 최태원 회장은 그 뒤인 2003년과 2013년 두 차례 구속됐다. 1조원을 분식회계하고,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두 번째 구속되기 직전 최 회장이 법원에 내려고 작성했다는 이혼소장이 최근 공개됐는데, 이를 통해 부부는 물론 두 집안 사이에 뿌리 깊게 얽혀 있었을 감정의 앙금을 엿볼 수 있다.

“사업가 집안 출신인 나와 장군(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관장이 성장 배경, 성격, 문화, 종교 차이로 결혼 초부터 갈등을 많이 겪었다.”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둘째딸은 2014년 해군사관학교에 초급 장교로 임관했다. 사업가인 아버지가 아니라, 장군이었던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셈이다.

이 현대사 드라마 같기도, 막장 드라마 같기도 한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끝날까?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이혼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이혼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워낙 다른데다, 재산 분할과 위자료 지급 문제가 꼬여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막장 드라마 같기도, 현대사 드라마 같기도

앞서 살펴본 두 집안의 관계로 짐작하건대, 노소영 관장은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현재 노 관장이 보유한 지분은 많지 않다. SK그룹의 통합지주회사인 SK(주)의 지분 0.01% 등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32억원에 그친다. 반면 최태원 회장은 SK(주) 지분 23.4%를 포함해 4조1942억원어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다. (2015년 기준)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세 자녀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없다. 법원은 이혼할 때 배우자의 몫으로 혼인 기간 동안 형성한 재산의 절반까지 인정해준다.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배우자는 위자료도 줘야 한다. SK그룹 쪽은 1994년 민영화를 위해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인수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막상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두 집안 사이의 관계 또는 거래가 민낯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설사 합의이혼으로 재산 분할이 이뤄진다 해도,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이래저래 해피엔딩은 어려울 듯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2022년 12월7일 덧붙여진 내용> 
법원이 노소영 관장에게 인정한 재산분할액이 665억원에 그친 것은 선대 회장(최종현)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는 최태원 회장쪽 주장과, 대통령이었던 부친(노태우)의 도움과 자신의 내조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노 관장쪽 주장 중에 법원이 최 회장 손을 들어준 결과다. 
최 회장은 결혼생활 27년 만인 2015년 이혼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결렬됐고 이듬해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 의사를 밝히며 최 회장을 상대로 위자료 3억원 및 에스케이 주식에 대한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맞소송(반소)을 낸 바 있다. 노 관장 쪽이 항소할 경우 법적 혼인 관계는 당분간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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