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제국’이 됐다. 지난 6월8일 국내 양대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지난해 12월에는 넥슨 일본법인이 일본 증권시장에 상장됐다. 현재 시가총액만 9조원에 달한다. 넥슨은 국내외 게임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며 커온 회사다. 업계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넥슨의 힘이 미치는 게임 개발업체가 3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게임업체의 한 임원은 “앞으로 몇 년간은 넥슨 천하다. 그런데도 넥슨은 대외적으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폐쇄적인 회사”라고 했다.
유례 찾기 힘든 병합, 주주 수 7명으로
등의 게임으로 알려진 게임 개발업체 엔도어즈도 넥슨코리아가 지분 97.29%를 가지고 있다. 넥슨은 2010년 5월 이 회사의 대표이사 등 대주주들로부터 지분 67%(경영권 프리미엄 포함해 주당 1만3294원)를 2천억원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비상장회사인 엔도어즈는 넥슨이 인수하기 1년 전인 2009년 5월, 5천원이던 주식 액면가를 500원으로 쪼개는 주식액면분할을 했다. 당연히 주식 수도 10배로 늘었다. 주식액면분할은 주로 소액 투자자들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다. 상장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넥슨이 최대주주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넥슨은 다른 주주들에게 액면가의 10배인 1주당 5천~5500원씩 쳐주겠다고 제안했다. 넥슨은 이렇게 주식을 사들여 2010년 11월에는 지분을 96.74%까지 끌어올렸다. 주주 수는 242명에서 98명으로 줄었지만 넥슨은 여전히 ‘많다’고 봤다. 같은 달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무려 ‘1만 대 1’의 비율로 주식을 액면병합해버렸다. 주식분할을 한 지 1년6개월여 만에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격한’ 비율로 다시 병합을 한 것이다. 기존에 1891만여 주였던 주식 수가 순식간에 1만분의 1인 1880주로 줄었다. 반면 주식 액면가는 500원에서 500만원으로 1만 배 커졌다. 의결권을 가진 주주 수는 7명으로 확 줄었다. 넥슨의 지분율은 0.54% 오른 97.29%가 됐다.
넥슨 쪽은 주주 관련 사무 효율화와 공시 관련 부담 해소를 주식병합 사유로 들었다. 주주들의 경영 참여율이 낮은 상황에서 주주총회 등이 사실상 불필요했고, 이 때문에 ‘주주 정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넥슨코리아 관계자는 “매출 규모 300억원대 안팎인 회사의 주식 수가 1890만 주에 달하는 것을 정상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엔도어즈의 연혁이 오래되다 보니 증자가 많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주주 수도 많아졌다. 주주와 주식 수가 많으면 회사 운영의 위험·관리 요소들이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분기별로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고 수시로 주요 사항 보고서를 내야 하는 부담을 더는 것도 주식병합의 이유였다고 했다. 관련 법은 주주 수가 25명 아래가 되면 공시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형식적 감자’인 주식액면병합을 하게 되면 회사 처지에서는 주식 수가 줄게 돼 주식 관리가 편해지지만, 주주 처지에서는 주식액면병합 비율에 밑도는 ‘단주’가 생기게 된다. 엔도어즈의 경우, 기존에 500원짜리 주식 9999주를 가지고 있던 주주라도 1만 주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500만원짜리 신주 1주를 취득하지 못하고 퇴출되는 셈이다. 상법은 이런 단주가 발생할 경우 회사가 적절한 가격 평가를 통해 사들이도록 하고 있다.
매매가에 못 미치는 단주가, 1·2심 “적당”
넥슨은 비상장 주식을 평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인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주식평가 방법을 적용해 단주를 주당 3840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주주 2명이 반발했다. 3840원은 앞서 1만여원에 거래된 주식 매매가격에 견줘 지나치게 헐값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넥슨의 지분 확보를 위한 소수주주 퇴출을 목적으로, 특별한 경영상 이유가 없는데도 비정상적 비율로 주식병합을 했다. 단주 대금도 불공정하다”며 자본감소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넥슨 쪽에서는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대리인으로 재산소송에 참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강용현 변호사가 나섰다.
1심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민사15부는 지난해 8월 넥슨 쪽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원고에게 패소 판결했다. 단주 가격에 대해서도 “회계법인에 의뢰해 산정된 가격으로, 넥슨이 기존 경영진에 지급한 1만3천여원의 매수가격에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 다른 요인이 반영됐다”며 3840원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같은 법원 민사21부는 넥슨 쪽이 주식병합 뒤인 2010년 11월 법원에 낸 ‘단주 임의매각허가신청’에 대해 3840원에 단주를 매각하도록 허가한 바 있다.
소수주주들은 넥슨 쪽이 법원에 3840원에 단주를 팔게 해달라고 신청하며 그전에 1만3천여원에 거래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법원을 의도적으로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회계법인이 산정했다는 3840원이라는 가격도 애초 단주 가격 평가가 아닌 엔도어즈 임직원들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관련 세무신고를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한 가격이 아니라고 했다. 소득세 때문에 낮게 평가되기 마련인 가격을 법원과 주주에게 제시한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6부 역시 지난 4월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지난 4월1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상법은 회사의 주주관리 비용을 줄이고, 기동성 있는 의사결정을 위해 소수주주를 강제로 퇴출시킬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다. 지분 95% 이상을 가진 지배주주는 경영상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 소수주주에게 주식을 팔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아직 시행에 들어가지 않았던 이 조항을 판결문에 인용하며 넥슨 쪽의 ‘주주관리 비용 절감, 경영 효율성 제고’ 주장을 인정했었다.
‘소수주주 강제퇴출제도’는 미국·독일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대신 미국은 ‘목적의 정당성’과 ‘지급 대가의 공정성’ 모두를 충족시킬 것을 요구한다. 독일은 현금보상의 적절성 등에 대해 법원이 선임한 전문검사인의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과 헌재가 합리적 기준 내놓을까
이 사건은 이제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단주 처리를 규정한 상법 조항이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소수주주들이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주 가격을 1차적으로 주주총회에서 결정하고 이를 법원이 허가하도록 한 상법 구조가 소수주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주주총회 안건을 통과시키는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소수주주들이 단주 가격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데, 대주주는 소수주주에게 보상을 적게 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단주 가격을 낮추려 한다는 것이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주주들은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적정한 단주 가격을 정하는 데 참여할 기회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소수주주 퇴출과 관련해 넥슨은 원래 ‘순혈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넥슨 쪽은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얘기다. 상장회사 인수 때와 달리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100% 인수를 하지 않느냐. 지분율이 낮은 회사도 여럿 있다”고 반문했다.
게임은 수조원이 오가는 거대 산업이 됐다. 이례적인 주식병합 비율, 소수주주 경영 배제의 합리적 기준, 그리고 소수주주 강제 퇴출시 공정한 가격 산정 방식에 대해 대법원과 헌재가 어떤 첫 판례를 내놓을까. 게임업계 관계자는 “넥슨은 일인 독주 회사다. 게임업계의 삼성같은 존재가 됐다”고 했다. 넥슨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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