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자의 경기도 용인 기흥공장(웨이퍼 가공 라인)에서 근무했던 고 황유미·이숙영씨에 대해 업무상 질환 가능성을 인정해 산업재해를 승인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황씨와 이씨를 포함해 삼성에 근무했던 5명이 3월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다.
반도체 공장 발암물질 문제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2007년 산재를 신청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결성돼 활동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등을 비롯한 반도체 사업장은 발병과 근무환경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지난 2월8일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삼성전자에 발암물질 대책 등과 관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백혈병 원인물질, 웨이퍼 라인에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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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흘렀다. 지난 2월6일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3년 동안 백혈병이 발병한 삼성전자·하이닉스·페어차일드코리아 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발암물질을 측정한 자료를 발표했다. 결국 정부 공공기관이 반도체 사업장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등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벤젠은 웨이퍼(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얇은 판)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체를 만들 때 벤젠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부 물질이 높은 온도에서 분해되면서 벤젠이 부산물로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검출 농도는 가공라인에서 최대 0.00038ppm, 조립라인에서 최대 0.00990ppm으로 둘 다 고용부가 정한 노출 기준(1ppm)보다는 낮았다.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도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름알데히드의 노출 기준은 0.5ppm인데, 가공라인에서는 최대 0.004ppm, 조립라인에서는 0.015ppm이 검출됐다. 전리방사선은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연간 최대 0.015밀리시버트(mSv)가 측정됐다.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연간 방사선 노출 한도는 50mSv다. 하지만 노출 기준이 어느 정도에서 무해한지는 국가마다 차이를 둘 정도로 그 기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노출 기준보다 많은 양이 검출된 발암물질도 있다. 폐암을 일으키는 비소는 웨이퍼 가공라인의 이온 주입 공정에서 노출 기준(0.01mg/㎥)보다 많은 양(0.001∼0.061mg/㎥)이 나왔다.
고용부는 3개 업체에 대해 환기장치 보완 등 시설 개선과 작업환경 측정 강화, 특수건강진단 추가 실시, 하청업체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 등을 마련하도록 시정 조처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작업 공정에서 다양한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 사업장의 산업재해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이미 법원에서도 노출 기준에 미달한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해도 장시간·지속적으로 노출됐을 경우 업무 관련성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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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인과성 없다”는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부산물의 양은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종업원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이니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미국의 산업안전 컨설팅 업체 인바이런사에 의뢰한 결과 반도체 사업장이 백혈병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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