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유한킴벌리(이하 YK) 본사 주총장. 제2대 주주인 유한양행(이하 유한)을 대표한 최상후 이사(유한양행 사장)는 이사진 교체 등의 요구사항을 발표한 뒤 바로 퇴장했다. 맞은편에 앉아 이를 지켜보던 제1대 주주인 킴벌리클라크(이하 KC) 경영진들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지난 1970년 회사 설립 이후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합작기업 중 하나로 불려온 YK의 주총이 파행으로 끝나는 순간이다.
이런 결말은 그 전날 KC의 톰 포크 회장과 유한 쪽 최고경영진의 회동에서 이미 예고됐다. 유한은 지난해 자신이 선임한 3명의 YK 이사진 중 한 명인 최규복 사장의 교체 의사를 밝혔지만, KC의 반대에 부딪혔다. KC 역시 지난해 자신이 지명한 4명의 이사진 중 한 명을 KC 북아시아 총괄사장인 아찰로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유한이 반대했다. 지난 41년간 유한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과 두 주주사 간 호혜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책임경영과 뛰어난 경영성과를 모두 달성해, 한국의 대표적인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가받아온 YK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KC와 유한의 YK 지분 비율은 7 대 3이다. 하지만 합작을 시작한 뒤 표 대결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상호 존중과 호혜정신을 바탕으로 모범적인 합작경영을 해왔다. 전체 7명의 이사진 중에서 KC가 4명, 유한이 3명으로 돼 있는 이사 선임 비율이나, 대표이사를 유한의 이사 중에서 선임해온 전통은 주주사 간 호혜정신을 반영한다. 익명을 요청한 YK의 한 임원은 “주주사 간에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겪은 적이 거의 없고, 주주가 있는 회사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유-경영 분리가 잘된 회사로 지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7년 13년간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문국현 사장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한 뒤 상황은 급변했다. 유한 쪽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부터 KC의 ‘YK 이익 빼가기’가 본격화됐다. 그 근거로는 첫째 주주배당의 급증이 꼽힌다.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 중에서 얼마를 주주에게 배당했는지를 보여주는 배당성향을 보면 문국현 전 사장 시절인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77%, 66%였던 것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95%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사실상 이익의 대부분이 배당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유한도 배당금의 30%를 받는 입장이지만 줄곧 고배당 정책에 반대해왔다. 유한 관계자는 “YK의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 확보 차원에서 이익을 사내에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KC 요구가 관철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YK가 KC에 지급하는 로열티(기술사용료)의 급증이다. YK는 2004년까지는 매년 매출액의 2% 정도를 KC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금액으로는 2003년과 2004년의 경우 각각 140억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2005년 이후 계약 갱신 협상을 벌였으나, 문국현 사장이 KC의 인상 요구가 무리하다고 버텼다. 하지만 문 사장이 회사를 나간 뒤 로열티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난해에는 매출액의 2.45%인 296억원으로 급증했다. 익명을 요구한 YK의 한 관계자는 “KC의 로열티 인상 요구는 무리하고 부당하다”면서 “기술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YK로부터 KC가 오히려 배워가는 형편이고, 브랜드 이미지에서도 한국 소비자에게는 KC보다 유한의 평판이 더욱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3년간 KC가 가져간 돈 3200억원 넘어세 번째는 홍콩에 소재한 KC 북아시아 본부(한국·중국·대만·홍콩 지역 관장)의 운영비 분담 요구다. KC는 문국현 사장 시절 없앴던 북아시아 본부를 재가동하면서 2009년 YK에 20억원의 분담을 요구했다. YK는 처음에는 부당하다며 거부했다. 익명을 요청한 YK의 한 임원은 “북아시아 본부는 KC의 글로벌 경영을 위한 조직으로, YK가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운영비를 분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KC는 결국 YK에 압력을 가해 20억원의 운영비를 받아냈다. 유한은 “KC가 이사회 승인도 없이 수십억원을 빼간 것은 횡령·유용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KC는 할 수 없이 지난해 20억원을 반환했으나, 2011년에는 종전의 2배인 40억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C의 ‘이익 빼가기’로 인해 YK의 금고는 점차 비어갔다. 4천억원에 육박하던 사내 이익잉여금이 2009년에는 2600억원으로 줄었고, 2010년에는 이보다 더 감소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문국현 사장이 그만둔 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KC가 YK로부터 가져간 배당, 로열티, 분담금을 모두 합치면 3200억원이 넘는다. KC가 YK에 투자한 자본금 1400억원의 2.3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KC는 ‘이익 빼가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YK에 지속적으로 비용절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YK의 한 임원은 “KC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2009년에 대규모 감원 계획을 세웠고, YK에도 10% 수준의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했다”면서 “당시 YK 경영진은 다른 기업과 달리 경영실적이 좋기 때문에 감원할 이유가 없다고 버텼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감원 요구를 거부한 배경에는 YK가 지켜온 인간존중경영 원칙이 크게 작용했다. YK는 1994년 문국현 사장이 취임한 이후 인위적 감원을 하지 않는 전통을 지켜왔다.
KC는 YK의 사회공헌비 지출도 줄일 것을 요구했다. YK가 매년 매출액의 1% 이상을 사회공헌 사업에 지출해온 것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결국 YK의 2010년 사회공헌 지출은 116억원으로 전년보다 14.7% 감소했다. 매출액 대비 비율도 0.96%로 떨어졌다. 사회공헌 지출이 매출액의 1% 밑으로 떨어지기는 2003년 이후 처음이다. 2011년 사회공헌 예산은 96억원으로 축소돼, 그 비율이 더 낮아질 전망이다.
문국현 사장 이후에 선임된 YK의 경영진들은 KC의 무리한 요구에 반대했다. 특히 차기 사장으로 내정돼 경영을 총괄하던 최병선 부사장이 앞장서서 막았다. KC로서는 모두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KC는 2010년 3월 주총에서 사장 내정자인 최 부사장을 내치고, 대신 자신의 뜻을 따르는 최규복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 ‘궁정 쿠데타’를 감행했다. KC의 요구에 반대하던 이덕진 인사담당 부사장도 함께 물러났다. 이후 KC의 경영 방침에 협력하지 않은 고위 임원들이 대거 YK를 떠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과 사회공헌 업무를 맡은 이은욱 부사장과 생산 쪽의 김기덕 부사장이 지난해 말 이후 사임하는 등 YK의 임원 20여 명 중에서 지난 1년간 그만둔 사람만 7명에 달한다. 이번 주총 이후에도 두세 명이 추가로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임원은 “KC의 임원 축소는 인건비 절감과 반대파 정리라는 이중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KC, 이익 챙기기 통한 직접 경영 욕심최규복 신임 사장은 취임 뒤 KC에 협조적 태도를 견지했다. KC의 고배당 요구를 수용하고, 로열티 지급률도 높였다. 또 비용절감 요구를 받아들여 사회공헌 지출을 줄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임원은 “최 사장이 회의 때 ‘사회공헌에 왜 많은 돈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면서 “사회공헌 관련 부서의 위상도 약화됐다”고 말했다. 회사가 지난 2월 말 실시한 조기퇴직지원프로그램(ERP)도 인력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ERP는 원래 안양공장을 충주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생산직의 퇴사 희망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ERP 적용 희망퇴직자 25명 중에서 실제 안양공장 근무자는 절반도 안 되고, 나머지는 사무관리직 등 타 부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YK 관계자는 “최규복 사장이 회의를 하면서 ‘인간존중경영이라는 말을 자꾸 쓰면 나중에 사람을 정리해야 할 때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신임 사장의 사회공헌 지출 축소와 희망퇴직 실시는 사회책임과 인간존중경영 경영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취임 당시 약속에도 위배된다. 최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사에서 “오늘의 YK를 만들어온 주요 가치인 인간존중, 고객만족, 가치창조, 혁신주도, 사회공헌의 원칙을 존중하며 이를 그대로 계속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최 사장은 대신 성장 극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비전 2020’을 발표하고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특히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과 신규사업 발굴, 신시장 개척 등을 통해 현재 1조2천억원 수준인 매출을 5배인 5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익명을 요청한 한 YK 퇴직 임원은 “최규복 사장이 자신을 선임한 유한의 입장을 저버리고 KC의 편에 선 것은 일종의 변절로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유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KC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YK 안팎에서는 2008년 이후 금융위기로 인한 경영 악화 등 현실적 요인을 첫째로 꼽는다. KC가 위기 직후 경영난 타개를 위해 감원 계획을 세운 것처럼 YK를 통한 이익 챙기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둘째는 YK의 기업가치가 지난 10년간 급상승하면서 직접 경영에 대한 욕심이 커진 점이 꼽힌다. 익명을 요청한 YK의 한 임원은 “YK는 문국현 사장 시절 경영실적이 급속히 좋아지면서 KC 북아시아 지역에서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이 75%에 달하고 이익 비중은 90%로 더 높다”고 말했다. 문 사장 시절에는 높은 사회적 평판과 훌륭한 경영실적 때문에 직접 나설 명분이 없었으나, 문 사장이 회사를 나가자 YK의 자율경영 전통을 폐기하고 KC가 직접 관장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 셋째는 KC 경영진의 변화가 꼽힌다. 문 사장이 그만둔 뒤 KC의 해외담당 부회장에 YK에 우호적이던 인사 대신 로버트 블랙이 새로 취임했다. 또 문 사장이 겸임했던 KC 북아시아 촐괄사장에 인도인인 아찰이 부임했다. YK의 한 임원은 “KC의 해외담당 부회장과 북아시아 총괄사장이 YK 경영 간섭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유한은 이들에 의해 사실상 경영권을 뺏긴 것”이라고 말했다. KC는 사실상의 YK 경영권 접수를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YK의 한 임원은 “KC가 2010년 3월 주총을 앞두고 한국의 한 법무법인을 고용해 비밀 사무실을 열고 사장 내정자 제거와 우호적 인사의 사장 선임 계획을 준비했다”면서 “YK 경영진이나 유한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사회책임·인간존중경영 원칙 훼손 우려YK의 경영원칙이 훼손되고 고유한 가치를 상실할 경우 지속적인 발전이 어려울 것으로 많은 이들이 걱정한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사회책임의 국제표준인 ISO 26000이 확정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사회책임경영이 대세로 굳어가는 상황에서, YK가 사회책임 및 인간존중경영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우위 요소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지적이 많다. 회사 안팎에서는 이런 변질이 결국 사회적 지지 상실과 조직 내 불안으로 이어져 경영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걱정한다. YK의 한 직원은 “회사가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직원들도 주주사 간, 경영진 내 갈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YK의 2010년 경영실적이 예년보다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 KC의 이익 빼가기와 경영철학 훼손 논란과의 연관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YK의 지난해 매출은 1조2094억원으로 전년 대비 6.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증가율은 2004년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다. 또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도 각각 12.4%와 7.8%로 모두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YK 안팎에서는 회사의 미래 비전도 불확실해졌다는 걱정이 늘고 있다. YK는 문국현 사장 시절 KC 중국법인의 경영 정상화를 주도했다. 또 그 여세를 몰아 아예 중국법인의 지분을 직접 인수해서 중국을 포함한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한다는 야심찬 전략을 세웠다. 문 사장이 과도한 배당이나 로열티, 분담금 지급을 자제한 것도 이를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KC가 YK의 투자 재원을 배당이나 로열티로 빼가고, 그 재원을 가지고 중국 사업을 직접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YK의 한 임원은 “KC가 사실상 아시아 시장의 허브를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YK는 해외시장 진출보다는 한국시장만 고수하도록 할 공산이 커졌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는 YK는 물론 KC를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지적이 적잖다. YK의 사회책임과 인간중심 경영철학이 훼손되고 조직과 직원들의 로열티가 흔들리고 미래비젼이 불확실해질 경우 지금까지의 뛰어난 경영실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YK의 한 임원은 “YK의 성공에는 고 유일한 박사의 훌륭한 경영철학과 유한의 높은 평판이 든든한 자산이 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상실된 뒤에도 KC 혼자 한국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KC가 결국 세계적 생활용품 업체인 P&G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은 YK의 최규복 사장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기로에 서 있는 킴벌리클라크KC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연 KC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YK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것인가? 아니면 40여 년간 지켜온 합작 정신으로 돌아가 YK를 정상화할 것인가? 마침 3월11일에는 유한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서거 40기 추모식이 열렸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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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2011년 3월15일치) 줌인 ‘황금알 거위 YK의 배 누가 가르나’ 기사에 대해 유한킴벌리 쪽은 “지난 3월9일의 주주총회는 관계법과 정관이 요구하는 절차에 의해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므로 파행이 아니며, 주주배당 및 기술사용료 지급도 양 주주 간 협의와 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KC의 YK 이익 빼가기가 아니다. KC가 2011년 북아시아 본부 운영비로 40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없으며, 유한양행과 KC의 합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선임된 최규복 대표이사는 취임시 약속한 사원존중과 사회책임경영 약속을 일관되게 지켜오고 있고, YK 또한 경영권을 뺏기거나 자율경영 전통을 폐기한 바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사실을 확인한 결과, 주주총회장에서 퇴장한 사람은 유한양행 김윤섭 사장이며 유한킴벌리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940억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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