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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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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와 배척자, ‘빠’의 두 종류

아이폰 사용기 ④ 마지막회
역시 너무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단순 사용자’가 ‘아이폰빠’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록 2010-02-11 16:22 수정 2020-05-03 04:26

“네 기사 트위터에 올려놨는데 반응 장난 아니네.”
“다들 뭐라고 하냐.”
“오나전 캐ㅂㅅ이라는데.”
그때는 웃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경쟁지(라 주장하는 매체) 기자 앞에서 흥분한 모습이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것이다. “(피식 웃은 뒤) 시간 되면 구경하러 가볼게.”
중요한 대목은 ‘피식’이다. 흥분하거나 패닉 증세를 보여도 지는 거지만, 쓸데없이 박장대소하거나 “어허허” 하며 부자연스럽게 웃어도 지는 거다. 피식 웃음으로써 금강불괴의 마음을 연기했으니 일단 성공. 하지만 이미 씹고 있던 닭다리의 탱탱한 식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감을 끝낸 여느 금요일 오후의 닭다리는 천국의 맛이었지만 그때만은 달랐다. ‘오나전’이란 ‘완전’이란 뜻의 인터넷 용어다. 지면에 소개하기 적절치 않아 일부만 옮긴 ‘캐ㅂㅅ’은 ‘상바보’를 비하할 때 쓰는 요즘 표현이다.

선구자와 배척자, ‘빠’의 두 종류

선구자와 배척자, ‘빠’의 두 종류

집에 도착한 뒤 전속력으로 ‘아이폰 사용기 1편’을 클릭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오른 내 기사에 많은 비판 댓글이 붙었다. 대체로 이런 식. “우주 최악의 얼간이 기자.” 이 문장을 읽을 땐 차라리 ‘우주 최악의 월간지 기자’이길 바랐다. 그러면 최악은 내가 아니라 ‘월간지’를 가리키는 수식어일 수도 있다. 아,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욕을 먹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 얼간이.(자꾸 발음하면 어감은 좋다.)

충격적인 댓글 ‘오나전 캐ㅂㅅ’

머릿속이 일시적으로 하얗게 변하는 ‘급성 화이트아웃’ 상태에서 깨어난 뒤 다시 읽었다. 비난이나 욕설이 많았는데, 가끔 경멸과 비웃음도 있었다. 형식과 주제는 자유로웠으나 내용은 일정한 흐름을 보였다. 전자우편으로 도착한 독자의 반응까지 함께 정리하면 ‘이렇게 쉬운 걸 못 따라 하는 당신이 바보’라거나 ‘아이폰 탓하려면 국산 제품이나 써라’ ‘가 삼성 광고 받으려고 아이폰을 깎아내린다’ 등이다.

뭐, 아이폰을 제대로 못 다뤄 바보 취급 받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써온 휴대전화와 전혀 다른 차원의 아이폰을 받아든 뒤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를 소개하며 어려운 걸 어렵다고 말한 건데,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가 어렵냐. 찌질아ㅋㅋㅋ”라고 의견 보내주신 독자에게 “네, 너무 어렵습니다. -찌질이 드림”이라고 답해드렸다. “반사” 이렇게 보내면 독자가 즐거워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폰 비판하려면 국산 제품이나 쓰라는 권유는 현실적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계약 당시 이미 3년간 이용하기로 약정한 터라 다시 국산 제품을 쓰려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아이폰을 좀더 쓰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폰 때문에 겪는 어려움보다 아이폰으로 얻을 즐거움과 편익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은 게임 ‘불리’와 ‘헬로키티 낙하산 천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삼성 광고 받으려고 아이폰 비판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논리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어 뭐라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사실을 고백하면, 아이폰 사용기 연재를 시작하며 ‘아이폰 광고 받으려고 사용기 쓴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을 가장 경계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삼성 광고를 둘러싼 의혹이 튀어나왔다. 초등학교 때 “너 암산을 잘하는 걸 보니, 커닝을 했구나”라며 노려보던 담임 선생님이 무서워 산수를 포기했는데, 그때만큼 억울했다.

아이폰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가 역풍을 맞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문화방송은 애플의 애프터서비스 정책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그때도 “문화방송이 아이폰 때리기에 나선 것은 삼성 때문이다”라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문화방송이 내보내는 삼성 애니콜 광고마저 ‘삼성 음모설’의 근거가 됐다.

나중에 알았다. 아이폰 마니아 집단의 존재 말이다.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가 이 물건이 그냥 휴대전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디자인이 훌륭하고 기능이 다양하며 심지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신기한 물건인 동시에 아이폰 사용자를 중심으로 ‘마니아 집단’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각 부문 히트 상품이 끊임없이 쏟아지지만 아이폰처럼 마니아 집단을 통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제품은 흔치 않다.

아이폰 마니아 집단은 둘로 나뉜다. 먼저 아이폰이 가져올 모바일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일찌감치 눈뜬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내에 아이폰을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아이폰 도입을 가로막고 있던 국내 이동통신사의 폐쇄적 무선인터넷 시장을 개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가히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 그룹은 아이폰의 매력에 지나치게 열광한 나머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부류다. 이른바 ‘아이폰빠’다. 아이폰빠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흔히 아이폰이나 애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아이폰을 추종하는 이들을 가리킬 때 ‘아이폰빠’라는 용어를 쓴다.

한 달째 아이폰을 쓰고 있는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단순 사용자’다. 아이폰이 무선인터넷 시장 개방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아이폰의 가능성은 과장된 것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아이폰의 강점인 앱스토어는 오락성이 아닌 유용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먹을 것 없이 화려한 밥상’이라고 결론 내렸고, 아이폰이 제공하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능은 아직 ‘타자 속도’가 느려 본격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아이폰의 조그만 자판에 언젠가는 익숙해진다 해도 트위터에 그렇게 매달릴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는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소통’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도 맞닿아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를 ‘스마트 피플’이라 부르며 이들이 사회개혁 세력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던데, 아직까지는 지나친 호들갑으로 들린다. 아무래도 스마트 피플은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다.

나는 ‘삼성빠’가 아니다

‘아이폰빠’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아이폰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월 기본료 등을 고려하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권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아,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아이폰 사용기 밑에 ‘오나전 캐ㅂㅅ’이라는 독후감을 남긴 독자에게 ‘아이폰빠’라는 딱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아이폰빠’가 아닌 것처럼 ‘삼성빠’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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