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떡볶이 행보 뒤에 뻥튀기 정책

부자감세·4대강 사업으로 서민들만 세금 덤터기… 서민 종합대책은 재탕·삼탕 묶은 것
등록 2009-07-10 14:12 수정 2020-05-03 04:25

시작은 ‘떡볶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25일 서울 이문동 떡볶이집을 찾으면서 ‘서민 행보’를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전봇대’를 규제로 규정짓고, 규제를 완화하자며 전봇대 뽑기 소동을 벌였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2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연합 성연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2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연합 성연재

정부는 6월30일 서민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식 대책도 내놓았다.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 300곳 확대 △영·유아 가구 절반에 무상보육 실시 △학자금 대출이자 최대 1.5%포인트 추가 인하 △저소득층 지역보험료 1년간 50% 경감 △저소득층 국민임대주택 임대료 인하 △대기업 마트 진출 때 사전조정협의회 설치 등이다.

이 대통령의 서민 행보에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이 대통령은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출범시킨 뒤 여론 반발에도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 때문에 MB 정부는 서민·중산층에게 ‘부자 정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를 드러낸 이 대통령 국정운영 기조에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이제야 서민들을 보듬기 시작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야당 주장처럼 ‘정치적 이벤트나 쇼’일 뿐일까?

감세 유보 시사했다 바로 말 바꿔

하나씩 꼼꼼히 따져보자. 일단 그동안 MB 정부가 비판을 받아왔던 감세정책은 접었을까? 아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락가락했지만 정부는 감세 기조가 변함없음을 거듭 밝혔다.

윤 장관은 6월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이 “내년에 예정된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 시행을 유보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올해 하반기에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2단계 소득세·법인세 세율 인하를 추진 중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법인세율(최고구간)은 현행 25%에서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20%로, 소득세율은 구간별로 8~23%로 낮아지게 된다.

사실 소득세·법인세 인하는 이명박 정부가 ‘감세를 통한 경제 회복’을 위해 지난해 말 발표한 세제 개편 방향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윤 장관의 발언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세제 운용 방향이 감세에서 증세로 바뀌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섣부른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해프닝에 그쳤다. 기획재정부는 윤 장관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즉각 해명 자료를 내고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비과세·감면 축소를 포함한 중·장기적 측면에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윤 장관도 이날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강연에서 “부족한 세입을 보완하기 위해 모든 세제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말이 잘못 전달됐다. 감세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며 말을 바꿨다.

증세는 술·담배·유류·자동차 등 겨냥

부자들을 위한 감세는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정부는 세수 증대 차원에서 담뱃값과 술값 인상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 건강’이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영 듣기 거북한 일이다.

그동안 담뱃값 인상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이전에는 국민 건강권을 앞세운 보건복지가족부가 담뱃값 인상을 강하게 주장한 반면, 이번에는 세수 증대를 위해 기획재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불황일수록 중산층·서민들은 팍팍한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려 술과 담배를 찾게 된다. 건강에 신경쓰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술과 담배를 더 많이 찾는다는 통계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 상가에서 튀김집에 들러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 상가에서 튀김집에 들러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에너지 효율이 낮은 가전제품에 ‘에너지세’를 부과하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 역시 ‘에너지 절약’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국민들이 과연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조세기획관은 6월22일 국가재정운용계획 토론회에서 “경기 상황을 봐가며 외부불경제 품목이나 에너지 다소비 품목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세율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외부불경제 품목이란 사회에 불이익을 주는 품목으로,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비롯해 술, 유류, 자동차 등을 뜻한다. 서민에게 부담이 되는 전기·가스요금은 이미 올랐다.

중산층·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서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분야의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위기로 세수가 줄어드는데다 지난해 부자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다 보니, 올해 세수가 심각한 정도로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7%에 그쳤지만, 올해는 GDP의 5%(51조원)로 급증하게 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같은 기간 30.1%에서 35.6%로 증가하게 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추산한 자료를 보면, 종합부동산세 폐지, 소득세·법인세 인하, 다주택자 중과 폐지 등으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세금은 98조9천억원이나 덜 걷힐 전망이다.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4대강 정비사업 예산에는 물 퍼붓듯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의 공식 예산은 22조원이다. 앞으로 추가될 비용까지 합하면 30조원 이상이 들어갈 전망이다. 100% 국민 부담이다. 애초 이명박 정권이 4대강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예산은 14조원이었다.

4대강에 예산 30조 쏟아부을 판

결국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 등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중산층·서민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국면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서민 대책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2012년까지 부자 감세분 100조원, 4대강 사업 예산 30조원 등을 복지 예산으로 돌린다면 중산층·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그나마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서민종합대책 역시 눈에 띄는 새로운 대책 없이 기존에 밝힌 방안들을 재탕·삼탕해 묶어낸 것이어서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체 26개 세부 대책 가운데 보육 전자바우처 제도, 긴급복지대상 확대, 저소득층 노후주택 급수관 개량사업 등 18개 대책은 이미 발표된 사업이다. 보육비 추가 지원(8508억원)은 일반회계 예산으로 확정됐고, 서민들 대출지원 확대(5700억원), 긴급복지대상 확대(1018억원)를 위한 예산 역시 이미 추경예산에 반영됐다.

이런 이유로 야당들은 MB의 서민 행보를 가리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쇼’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정부는 이번 발표를 서민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유통기한이 지난 폐품 꾸러미와 다름없다”라면서 “포장지만 바꾼다고 해서 새 제품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연출된 이미지 정치와 몇 마디 말장난으로 서민을 우롱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서민정책을 강조한 지 이틀 만에 가스·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 현 정부 서민정책의 실체”라며 “IMF 때도 깎지 않은 최저임금을 22년 만에 깎자는 정권이 무슨 서민 정권이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 △일자리 격감 △서민물가 급상승 △투기 부르는 주택정책 △몰락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축소된 복지 △사교육비 급증을 정부의 ‘7대 반서민정책’으로 꼽았다.

“감세 정책 효과 없고 사회갈등만”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와 소득세 등을 내렸다. 하지만 감세정책이 지금 소비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줬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 투자를 늘려줄 것이라던 법인세율 인하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장기적으로 보면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감세 기조를 이어갈 경우 사회에 위화감이 팽배해지고 이 때문에 갈등 비용이 커져 잠재 경제성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 등을 고려해 미국의 빌 게이츠 회장 같은 부자 지식인들은 오히려 부시 정부의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도 ‘떡볶이’다. 떡볶이 뒤에 감춰진 이면을 한번 보자. YTN 은 이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 장면의 뒷얘기를 방송했다. 영상을 보면 상인들은 인근 대형마트로 인해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이 대통령은 갑자기 “뻥튀기를 사서 나눠줘야겠다”고 말을 돌렸다. 이 대통령은 “대형마트보다 여기가 물건값이 더 쌀 것 아니냐”는 엉뚱한 질문도 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옛날 재래시장에서 노점상 할 때는 (높은 사람을) 만나서 하소연할 길도 없었는데 지금은 (나를 만나) 이렇게 얘기할 데가 있다. 좋아졌잖아,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