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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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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주세요

드라마 영향으로 화장품 ‘꽃을 든 남자’까지 매출 급증…
극중 재벌 배우를 진짜 재벌로 만드는 ‘꽃남의 경제학’
등록 2009-03-27 13:50 수정 2020-05-03 04:25

회사원 조사라(31)씨는 3월 들어 드라마 (꽃남) 때문에 4만2600원을 썼다.
조씨는 G마켓에서 꽃남 탁상용 달력을 샀다. F4인 구준표(이민호)·윤지후(김현중)·소이정(김범)·송우빈(김준)과 금잔디(구혜선) 등 주연 배우의 컬러 화보로 꾸민 달력이었다.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구성된 달력이었다. 가격은 4900원. 5천원 미만이면 택배비를 따로 내야 해서 추가로 2개를 더 샀다. 그중 하나는 회사 동료인 구아무개 팀장한테 선물로 줬다. 1만4700원.
조씨는 또 며칠 전 회사 동료와 함께 ‘본죽’이라는 죽집에 갔다. 1만원 이상 먹으면 브로마이드를 준다는 유혹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메뉴판에는 구준표가 좋아하는 게살치즈죽, 윤지후가 좋아하는 단호박죽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꽃보다 남자 세트’와 소이정이 좋아하는 꽃남치즈죽, 송우빈이 좋아하는 쇠고기버섯죽을 같이 먹을 수 있는 ‘F4 세트’가 적혀 있었다. 구준표를 조금 더 좋아하는 조씨는 ‘꽃보다 남자 세트’를 먹었다. 1만6천원.
조씨는 드라마에 쓰인 9곡의 노래가 수록돼 있는 CD도 샀다. 1만1900원.

한 어린이가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대형 브로마이드를 받고 있다. 던킨도너츠는 <꽃남> 특수로 올해 화이트데이 때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올랐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한 어린이가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대형 브로마이드를 받고 있다. 던킨도너츠는 <꽃남> 특수로 올해 화이트데이 때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올랐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마법의 세 음절 ‘꽃보다’

조씨는 구준표가 금잔디한테 선물한 ‘키싱 스타’(kissing star) 목걸이도 갖고 싶다. 백화점에 가서 보니 17만원이었다. 조씨가 지난 화이트데이 때 남편한테 사달라고 졸랐지만 “네가 구혜선이냐”며 핀잔만 받았다. 하지만 조씨는 그 목걸이를 선물로 받고 싶다.

은 상반기 안방극장의 최고 화제작이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이 드라마는 방송 10회 만에 30%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꽃남 신드롬’을 일으켰다. 불황 속에서도 TV 광고는 ‘완판’(광고 완전 판매)을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 이후 남성복 매출이 늘어나고, 드라마에 등장한 관광지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드라마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의 경제 효과는 얼마쯤 될까? 100억원을 넘어서 200억원도 가뿐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꽃보다 남자 주세요!”

요즘 소망화장품의 멀티숍 ‘뷰티크레딧’에선 매일같이 재미있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제목과 비슷한 ‘꽃을 든 남자’ 브랜드를 찾는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 뷰티크레딧의 한 점주는 “드라마 제목과 브랜드 네임이 비슷해서 ‘꽃보다 남자’를 찾는 고객분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꽃을 든 남자’는 문화방송이 자체 제작한 영화 의 제목을 브랜드화한 화장품이다.

소망화장품 양준석씨는 “불경기인데다 화장품 매출은 갑자기 늘지 않는데도 매출액이 10%가량 늘었다. 사실 소비재는 이미지 싸움인데 ‘꽃을 든 남자’는 특수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망화장품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프리미엄 광고 시간대에 구혜선이 광고 모델로 나오는 ‘다나한 효용고’ CF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던킨도너츠도 의 주인공 이민호를 새 모델로 영입한 뒤 재미를 보고 있다. 던킨도너츠는 지난 3월9일부터 시작한 ‘꽃남 이민호의 화이트데이 프로포즈’ 와 ‘이민호 브로마이드 이벤트’를 열었는데, ‘이민호 브로마이드’ 초판 물량 20만 장이 행사 시작 사흘 만에 동났다. 지난 화이트데이 때는 매출액이 지난해에 견줘 20% 이상 늘었다. 오승철 던킨도너츠 차장은 “브로마이드가 5개가 있다 보니 5개를 모두 모으기 위해 매장을 들르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한류 붐도 일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근처 던킨도너츠 매장에는 일본 관광객 20여 명이 브로마이드를 받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3개 붙던 광고, 6회 이후 28개 완판

불황을 겪는 기업들엔 은 희망이다. 어떻게든 과 연결지으려는 마케팅도 다양하다. 홈플러스는 ‘꽃보다 쿠폰’(할인쿠폰 내려받기 행사), 테크노마트는 ‘꽃보다IT’ 이벤트를 ‘꽃보다’라는 세 음절을 넣어 진행했다. 기업들은 ‘꽃보다 내 남자 피부’ ‘꽃보다 멋진 내 남친’ ‘꽃보다 동안’ 등의 이름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현대홈쇼핑은 지난 2월 뉴칼레도니아 4박6일 여행상품을 방송하기도 했다. 현대홈쇼핑의 오형주 대리는 “인터넷 쇼핑몰인 H몰 카페에 유입되는 고객을 분석해보니, 뉴칼레도니아 검색으로 들어온 고객들이 제일 많았다. 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는 드라마 속 ‘프레피룩’ 관련 의류와 신발을 선보이며 ‘ 특수’ 잡기에 나서고 있다. 프레피룩은 미국 동부 명문 사립고 학생들의 교복 차림에서 유래한 심플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말한다. 드라마에서 의상협찬을 하고 있는 제일모직의 빈폴에는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의상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빈폴은 전국 매장에 드라마 협찬 의상을 중심으로 ‘프레피룩 존’을 설치하고 매주 드라마 속 등장 상품으로 교체해 전시하고 있다. 또 매장 판매사원의 유니폼도 아이돌 스타 김현중이 입었던 셔츠와 보타이, 면바지로 구성해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중고 원작 만화책을 비롯해 소설·애니메이션 등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다. 옥션에서는 원작 만화의 물품 등록 건수가 현재 240여 건으로 드라마 시작 전에 비해 5배 급증했다. 원작 만화 36권 완결판 중고가 6만5천~7만원 정도로 권당 약 2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다른 중고 만화책이 권당 200~1천원 정도로 싸게 거래되는 것에 견줘 2~10배가량 비싼 가격이지만 등록되자마자 판매가 완료될 정도로 인기다.

새로운 표지와 업그레이드된 종이 재질로 재출판된 패키지 제품의 경우 11만4천원(1권당 6300원)에 판매되고 있다. 10만원대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역시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이 밖에 한국어 자막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51화 전편 박스(2~3만원대) 등 에니메이션 DVD도 드라마 특수를 등에 업고 인기를 얻고 있다.

<꽃남> 김현중이 삼성전자 ‘햅틱 POP’을 홍보하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노트, 달력, 목걸이 등 관련 상품이 나오고 있다(사진 삼성전자 제공). 노점에서 팔고 있는 F4의 얼굴과 이름을 새긴 양말(작은 사진).

<꽃남> 김현중이 삼성전자 ‘햅틱 POP’을 홍보하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노트, 달력, 목걸이 등 관련 상품이 나오고 있다(사진 삼성전자 제공). 노점에서 팔고 있는 F4의 얼굴과 이름을 새긴 양말(작은 사진).

으로 가장 짭짤한 곳은 역시 한국방송이다. 광고 수익 때문이다. 첫회 때는 방송 앞뒤로 붙는 광고가 고작 3개에 그쳤다. 하지만 6회 이후부터 28개 광고가 완판되고 있다. 광고 단가는 1015만원 선이다. 25부로 종영할 때까지 한국방송은 광고로만 약 57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다시보기 서비스로도 돈을 벌고 있다. 한국방송은 다시보기 서비스뿐만 아니라 미리보기도 유료화했다. 다시보기 서비스는 700원(스트리밍)과 2천원(다운로드)으로 금액이 나눠져 있다. 미리보기는 1MB당 500원을 받고 있다. 한국방송은 이미 드라마 스틸컷을 이용한 달력을 만들어 부가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케이블 채널에서도 은 인기다. 은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KBS N, tvN 등에서 방송되고 있다.

제작사도 큰돈을 만지게 됐다. 드라마 제작사인 그룹에이트는 을 일본·중국·대만·필리핀·싱가포르·인도네시아·타이·베트남 등 아시아 10개국에 선판매했다. 일본에서는 30억원, 아시아 9개국에선 20억원의 판권료를 받아 50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간접광고(PPL)로 얻은 협찬 수익도 상당하다. 제작 지원 업체가 10곳이 넘는다.

드라마 OST도 대박을 맞았다. 김현중의 SS501, 김준의 티맥스, 샤이니 등이 참여한 1집은 2월까지 10만 장 이상이 온·오프라인으로 팔리며 20억원을 벌었다. 지난 3월9일 공개된 2집의 매출도 1집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OST로만 4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종영 뒤 매출 더 확대될 것

배우들은 돈방석에 앉게 됐다. 드라마 출연진이 개별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모두 합치면 줄잡아 100억원 선이다. 광고업계에서는 요즘 이민호·김현중 정도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다. 두 사람은 드라마 한 편으로 드라마 속에서처럼 ‘재벌’이 됐다. 이민호는 회당 20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고 있지만 현재 1년 5억원의 모델료를 받는 스타가 됐다. 이민호는 이동통신·제과·청바지 등의 광고 모델로 나와 2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정장·맥주·식품 업체와의 계약도 성사 단계여서 드라마 종영 직후까지 5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김현중도 광고 출연료로 최소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김범과 김준도 수억원의 광고 계약을 앞두고 있다.

은 종영 뒤 DVD 판매와 화보집, 팬시 상품 등으로 매출을 확대할 전망이다. DVD 세트가 보통 10만원대로 책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수억원대의 이윤을 낼 수 있다. 제작사는 부가상품만으로도 충분히 1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드라마에 나오는 골프장과 관광지까지 상품화된다면 부가가치는 더욱 커진다.




방통심의위 간접광고 경고
꽃보다 PPL?


‘꽃보다 PPL?’
의 인기를 업고 무절제한 간접광고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 속의 꽃남들이 아예 특정 휴대전화 모델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현중과 김범, 김준은 이미 이 제품의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이다. 극중 배우들이 사용하는 모든 휴대전화는 삼성 애니콜이 협찬하는 ‘햅틱 POP’으로 개당 60만~70만원을 호가한다. ‘햅틱 POP’의 프로모션 장면이 극의 흐름에 중요한 장소로 등장했고, 신화그룹 후계자 구준표(이민호)는 이 제품의 책임자로 나온다.
금잔디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인 ‘봄죽’도 드라마 지원사 중 하나인 ‘본죽’을 연상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뒤 간판을 ‘씨네죽’으로 바꿨다가 다시 ‘봄씨네죽’으로 교체됐다. ‘봄씨네 죽’은 ‘봄’과 ‘죽’자만 도드라진 간판을 써서 간접 홍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3월9일 방송된 18회분에선 서민 체험을 시작한 이민호가 ‘라면 예찬론’을 펼친다. 라면을 맛본 이민호는 “야, 이거 진짜 맛있다”라며 감탄 어린 탄사를 내뱉는다. 마트에 가서 카트 가득 라면을 실어 나오는데, 유독 안성탕면만 나온다.
또 지나치게 드라마에 OST가 자주 등장해 생뚱맞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토리는 없고 OST만 흐른다’는 지적이다.
주인공들이 해외 촬영지인 뉴칼레도니아와 마카오 시내 여기저기를 관광하는 장면이 과도하게 등장해 현지 관광청의 홍보 영상물을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5년엔 SBS 가 1회 방영부터 드라마 협찬사의 비데 제품을 홍보해 ‘비데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년 SBS 도 방영 당시 과도한 간접광고로 ‘광고의 연인’이란 불명예와 함께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까지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3월18일 전체회의를 열고 에 대해 ‘경고’ 조처했다. 방통위는 “협찬주인 특정 섬과 특정 죽 전문점의 전경과 변경된 상호를 반복 노출한 것은 간접광고 조항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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