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인류 공동의 재부이며, 오늘날 우주의 평화적 리용은 세계적인 추세로 되고 있다. 공화국 정부의 우주 개발과 평화적 리용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인공 지구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한 연구·개발 사업이 줄기차게 진행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1998년 8월 첫 시험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올려 단번에 우주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과 같은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차근차근 발언의 수위를 높여온 북한이 ‘말’의 단계를 넘어 ‘행동’의 단계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지난 2월24일 북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문을 내어 이렇게 주장했다. 위원회는 이어 “현재 시험 통신위성 ‘광명성 2호’를 운반 로케트 ‘은하 2호’로 쏘아올리기 위한 준비사업이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변국에서 일제히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에도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기정사실화한 게다. 북한은 이어 2월27일 로켓 추진체 조립에 들어갔다.
언제쯤 쏘아올릴까?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3월 말~4월 초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998년 8월31일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 이에 앞서 같은 달 3일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했고, 발사 닷새 뒤인 그해 9월5일 “위성이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9월9일 공화국 건국기념일(9·9절)에 맞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년여 ‘유훈통치’ 시대를 마감하고 집권 1기를 출범시켰다. ‘광명성 1호’는 이를 알리는 일종의 ‘축포’였다.
5년을 주기로 한 김 위원장의 집권 3기는 애초 지난해 가을 시작돼야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해 9·9절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건강이상설’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었다. 3월8일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출이 예정돼 있다. 이어 한 달 뒤인 4월8일께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면서 집권 3기의 개막을 알릴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축포’가 그 사이에 쏘아올려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2월27일 통일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월 한 달 무려 15차례나 공개 활동을 했다. 집권 3기 출범을 앞두고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발사하겠다는 ‘비행체’의 정체는 뭘까? 탄도미사일이란 주장과 인공위성을 실은 우주발사체(SLV)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국방부가 지난 2004년 펴낸 에 잘 정리돼 있다. 탄도미사일은 탄두를 운반하는 군사 목적의 로켓 추진체다. 반면 우주발사체는 인공위성을 지구 상공 우주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추진체다. 쉽게 말해 탄도미사일이 머리에 폭탄을 이고 있다면, 우주발사체는 그 자리에 인공위성을 앉히고 있다. 일부 기술적 차이가 있지만, 둘 중 하나의 기술을 확보하면 다른 하나를 개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주변국의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8년 정부의 ‘대포동 1호’ 오판북한 은 2월16일 “최근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이 우리가 마치도 ‘장거리 미싸일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떠들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무엇이 날아올라갈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두고 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1998년 8월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을 때, 우리 정부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대포동 1호’ 발사 시험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쪽에선 판단이 달랐다. 그해 9월 제임스 루빈 당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아주 작은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리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발표했다. 한 군사·안보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위성은 북한 땅 상공에서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수직으로 발사하고, 비행체의 각도도 많이 꺾일 필요가 없다. 반면 탄도미사일은 일단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각도가 확 꺾여야 한다. 기술적으로 보면, 30° 각도일 때 가장 멀리까지 날아간다. 발사 이후 비행체의 궤적을 살펴보면 탄도미사일인지, 위성발사체인지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북한이 쏘아올릴 비행체가 우주비행체라면, 적어도 국제법적으론 큰 문제가 없다. 1967년 체결된 ‘우주의 평화적 목적을 위해 각 국가 간에 체결된 국제조약’은 우주 공간에서 군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선 군사적 목적일지라도 규제 방안이 없다. 하지만 탄도미사일로 판명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북한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6년 10월14일 내놓은 결의안 1718호가 ‘제재’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는 당시 “북한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미사일 발사 유예에 대한 기존의 약속을 재확인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한쪽에선 우주발사체라고, 다른 쪽에선 탄도미사일이라고 맞서고 있는 이유다.
이번엔 성공할까? 1998년에 비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미사일 기술을 개발해온 이란이 지난 2월2일 자체 개발한 우주발사체에 인공위성을 장착해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뭘 뜻할까? 주변국의 반발에도 북한이 발사를 강행한 의도와 맞물려 크게 세 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우선 ‘북한 내부용’이다. 위성 발사 성공은 김정일 위원장의 ‘집권 3기’를 화려하게 열어젖히는 ‘이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남한과의 ‘체제 경쟁용’이란 측면도 있다. 남과 북은 이란에 이어 ‘10번째 자력 위성발사국’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과학기술 위성 2호를 실은 위성발사체(KSLV-1)를 오는 6월 안에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할 계획이다. 북으로선 ‘체제 과시’를 위해 선수를 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주변국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는데…‘대미협상용’이란 분석도 빠질 수 없다. 그동안 북-미 협상은 핵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불능화 단계를 넘어 폐기 단계에 들어서면 ‘핵 카드’의 중요성은 현격히 떨어진다. 북으로선 ‘다른 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탄도미사일은 효과적인 협상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국제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의 미사일 위협을 줄이는 방법은 하나다. ‘돈’을 주고 사들이는 게다. ‘협상’의 여지는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방장관에게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북한) 위성을 미국이 발사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바 있다.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다. 주변국들도 발걸음을 재게 놀리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3월 초 성 김 북핵 특사와 함께 한·중·러·일 순방길에 나선다. 앞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6자회담 수석대표)은 최근 북한을 방문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 인공위성 발사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사일을 쏘면 요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일본 쪽에서도 물밑에선 ‘대북 특사 파견설’이 나돌고 있다. 정세가 긴박하게 요동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다시 외부의 힘에 내맡길 텐가? 뒷짐 지고 공연한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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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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