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횡포를 제보하겠다는 김종혁 신우데이타시스템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2월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불공정거래행위신고’ 서류와 두툼한 관련 증빙자료들을 들고 나온 김 사장은 “객관적으로 들어보고 판단해달라”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울분은 깊어 보였다. 그는 LG전자와 자신의 회사 사이에 실제 물품이 오가지도 않았는데 장부상으로만 매입·매출 서류를 꾸며 탈세를 했다는 주장도 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일부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 대기업의 부도덕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홈플러스 매출서 삼성 제친 우수업체사흘 뒤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만난 LG전자의 한국지역본부 법무지원그룹 및 공정문화그룹 관계자들은 김 사장이 제기한 주장을 대부분 일축했다. 자사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적이 없다는 반박 자료를 제시하는 한편, “은행빚이 너무 많고, 함께 끌고 가기에는 사업 능력도 부족하다”고 김 사장을 폄하하기도 했다.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 가로놓인 감정의 골짜기는 아찔했고, 10여 년간 비즈니스 공생관계였던 과거의 기억은 아득했다.
LG전자와 LGIBM의 PC 판매 전문대리점을 운영해온 김 사장은 왜 LG전자에 돌을 던지는 것일까.
분쟁의 시발점은 합작법인이던 LGIBM이 분리되고, LG전자가 LGIBM의 PC 사업을 흡수합병한 2005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설립된 이래 삼성테스코(주) 홈플러스의 전국점 운영업체로 LGIBM의 PC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해온 신우데이타시스템의 거래처도 LG전자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LG전자가 신우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당시 홈플러스 33개점을 맡은 판매대리점 신우데이타시스템의 담당마케터였던 박아무개 전 LG전자 차장은 여신한도 이상의 물품거래를 하려면 추가 담보가 필요하다며 홈플러스 매출채권(신우가 홈플러스로부터 받을 돈)을 LG전자에 양도하라고 요청했다.
유통업체인 신우데이타가 홈플러스에서 판매를 하려면 먼저 LG전자로부터 제품을 사와야 한다. 이때 LG전자는 신우데이타의 공장 사옥 등을 담보로 잡고 일부는 그냥 빌려주는 방식으로 노트북컴퓨터와 PC 등을 공급한다. 2005년 1월 기준 LG전자의 신우데이타에 대한 총여신은 14억6천여만원(담보 7억7천여만원, 신용 6억8천여만원)이었다. 신우데이타는 과거 LGIBM과의 거래 경험대로 매출채권을 넘기면 이후 사업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 여신구매 한도는 증대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당시 신용여신(담보 없이 빌려준 금액) 규모가 너무 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채권 양도라는 방법을 취한 것일 뿐”이며 “신우와 홈플러스 사이에 상계대상 채권이 존재할 수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하면 채권 양도 계약은 담보와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또 다른 대목은 판매대금 결제 조건에 대해서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PC를 구매하고 치른 대금은 일단 홈플러스로 들어가고, 홈플러스는 일정 수수료를 뗀 뒤 신우에 지급하게 된다. 이후 신우데이타는 판매대금을 다시 LG전자에 입금한다. LG전자는 LGIBM의 분할합병으로 거래를 시작한 업체들과 결제조건을 협의하면서 과거 60여 일로 유지되던 판매대금 입금 일자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30일로 단축하되 월 2%까지의 할인 혜택을 받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홈플러스가 통상 판매대금을 90여 일 뒤 입금해주는 거래 상황에서 비상식적인 요구였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30일 결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LG전자 관계자들은 “유리한 조건을 줬음에도 신우데이타는 2005년 1~10월 동안 매월 3억원의 대금 입금이 밀린 상습 연체 업체였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신우데이타와 김 사장의 몰락이 LG전자와 거래를 튼 2005년께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2003~2004년 신우데이타를 담당했던 박아무개 전 LG전자 차장은 “LG 쪽 PC와 노트북컴퓨터의 점유율은 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신우데이타의 홈플러스 대리점들은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며 “LGIBM의 신우데이타에 대한 총여신도 30억~40억원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LG전자의 설명과 달리 “신우가 워낙 물건을 잘 팔다 보니 신용여신이 커졌을 뿐이고, 이후 LGIBM이 여신 규모를 줄여달라고 요청하자 김 사장이 은행 대출 등을 통해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충성심’을 보여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이 맞다면, “은행빚이 많아 리스크가 큰 신우데이타 같은 업체에 여신을 많이 줄 수 없다”는 LG전자 법무지원그룹의 설명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일 수 있다.
후려친 수수료 그나마 제때 안줘객관적인 지표들은 과거 신우데이타의 탁월한 영업능력을 보여준다. 신우데이타는 1998년부터 내리 4년간 우수 대리점 종합우승상을 받았고, ‘위너서클’ 업체로 선정돼 2003년과 2004년 LGIBM 대표이사와 함께 부부 동반 해외여행 특전도 누렸다. 홈플러스 매출현황 자료를 보면, 2004년 LG의 PC와 노트북컴퓨터 점유율은 30%로 삼성(28%), TG삼보(24%), HP(12%) 등을 제친 1위다. 2005년엔 점유율 26%로 HP(27%)에 이어 2위였다. 김 사장은 “올해 이마트에서 LG전자의 점유율이 6~7%에 불과하다는 점에 견줘보면, 성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신우데이타와 LG전자의 갈등은 여신 축소, 추가 담보, 입금 지연 등을 놓고 2005~2006년 내내 지속됐다. LG전자는 2007년 5~7월 석 달 동안엔 물품 공급 중단에 나섰다. 그리고 8월부터 신우데이타는 LG전자와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한다. 물품 매입과 매장 관리를 독립적으로 하던 대리점 지위에서 인력파견·관리 정도의 업무만 맡는 판매대행사로 떨어진 것이다. 김 사장은 “당시 홈플러스 매장 영업의 공백이 장기간 지속돼 한계 상황이었기 때문에, 판매대금의 6% 정도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수료를 받는 판매대행사로 전락하는 계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판매대행사로의 전환은 제쳐두더라도, 과연 이 정도의 수수료율은 합리적인 수준일까. TG삼보 등 LG전자의 경쟁업체들이 할인점 판매대행사에게 주는 기본 수수료는 TG삼보가 8~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TG삼보의 대리점인 (주)잇츠의 박재홍 사장은 “대리점에 매출채권 양도를 요구하는 것은 업계의 관행과 어긋나고, 판매대리점에 6% 수준의 수수료를 주는 것은 직원들의 임금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중소기업을 내모는 꼴”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내용 중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유일한 대목은 판매대행 수수료의 지급 연체다. LG전자는 판매대행 수수료를 매월 10일 지급하기로 약정하고도 이를 넘기기 일쑤여서, 신우데이타 직원들이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법무지원그룹의 유익조 부장은 “담당자를 물었더니, 계산하기 어려워서 그랬다고 하더라. PC는 월별로 수요의 차이가 큰 계절상품인데, LG에선 성수기의 판촉을 독려하거나 비수기의 경영안정을 위해 복잡한 인센티브제도를 운영한다. 그걸 일일이 계산하다보니 늦어지곤 했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다”라고 답했다.
신우데이타와 LG전자의 공방은 ‘탈세 의혹’으로까지 번진다. LGIBM이 LG전자로 흡수합병되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부 물건을 서로 직접 건네지 않고 신우데이타의 자회사인 이코리아를 거쳐간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는 것이다. LG전자의 유익조 부장은 “실제 LGIBM의 물건들이 우리 회사로 넘어왔으니 각각 매출과 매입을 잡으면 되지만, 실무자들이 회계상 고민을 하다 일종의 ‘가상거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코리아 매출을 끊고 LG에서 세금계산서 처리를 했으니 세금을 더 내면 더 냈지 탈세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어떤 기업이 실물을 갑이라는 업체에게 받고, 서류상으론 을이라는 업체에게 사들이는 것으로 꾸미는 ‘위장매입’을 했다면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해당기업은 매입 관련 서류를 근거로 줄인 부가가치세를 고스란히 내는 것은 물론 가산세까지 물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신우데이터도 똑같은 금액을 위장 매입해 위장 매출을 끊어줬기 때문에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김종혁 사장은 “당시 LG전자의 요구 때문이긴 했지만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은 것은 분명 내 잘못”이라며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대기업의 도덕적인 문제와 주먹구구식 관행을 알리기 위해 이런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장거래 탈세 의혹도신우데이타는 올해 LG전자와 판매대행 계약을 맺지 못했고, 지난달 말에는 LG전자로부터 홈플러스 매장에서 철수하라는 최고장까지 받았다. LG전자 퇴사 뒤 외국계 컴퓨터업체에서 일하는 박 아무개 전 LG전자 차장은 “신우데이타는 LGIBM과 함께 성장한 회사인데,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못 읽어 도태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LG전자와의 법적 분쟁은 99% 지게 될 텐데 도울 길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2005년께는 LG·삼성 등 대기업들이 대형마트라는 판매 채널을 대리점들에 맡기는 대신 직영 체제로 바꾸던 시점이었다고 박 전 차장은 설명했다. 한 LG전자 관계자는 “유통 환경이 바뀌면서 대리점 형태들이 도태될 때 신우데이타가 LG전자에 들어온 게 문제였다. LG전자 입장에서는 20~30년 회사를 위해 충성했으니 (판매대행사 운영 같은) 기회를 달라는 사람들도 넘치는데, 굳이 신우데이타처럼 능력 없는 업체를 계속 끌고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2월4일 밤, 김종혁 신우데이타 사장은 “공정위의 심의 결과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재기 불능 상태에 놓일지도 모르겠다”면서 “중소업체들이 같은 피해를 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볼 작정”이라고 밝혔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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