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체 “중국산 짝퉁만 판칠 것”, 정부 “안전한 제품을 순정품보다 싸게”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자동차를 제작·조립·수입하는 자는 자동차 구조와 장치가 안전운행에 필요한 성능과 기준(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스스로 인증하고, 자동차의 제작·시험·검사시설 등을 건설교통부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완성차 자기인증제’이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안전기준이나 인증제도가 전혀 없다.
9월 국회 재상정될 예정
건교부는 2004년부터 국회 국정감사에서 부품에 대해서도 안전기준을 만들라는 질의가 제기되자, 이른바 ‘부품 자기인증제’를 뼈대로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마련해 올 4월과 6월 두 차례 국회에 제출했다. 부품 자기인증제는 부품 생산·수입 업체가 자동차에 사용되는 주요 16개 부품(타이어·림·브레이크 파이프·등화장치·브레이크액·창유리·안전벨트·유아용 보호장구 등)에 대해 정부가 정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고 자기 인증마크를 붙이는 제도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반대로 일단 처리가 무산됐고, 9월 국회에 재상정될 예정이다. 부품업계 단체인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대한타이어공업협회 등을 포함해 220여 개 중견 부품업체는 지난 6월 자동차부품 자기인증제 도입을 공식 반대하는 서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부품 자기인증제 도입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공방은 현대·기아차·현대모비스·국내 주요 부품업체 등이 한 축을 이루고, 정부·소비자단체·손해보험협회 등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흥미로운 건 양쪽 모두 “안전과 소비자 보호” “중국산 저질 짝퉁 부품으로부터 소비자와 국내 업계 보호”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찬반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교통부는 “지금까지 자동차 주요 부품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어 소비자 피해와 교통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 저질 부품의 제작·판매를 방지하고 리콜과 보상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부품 자기인증제가 시행되면 완성차 업체는 인증마크가 부착된 부품만 장착할 수 있고, 인증마크가 붙은 부품만 애프터서비스 시장(A/S 정비업체)에 유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부가 지정한 시험기관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인증마크가 붙은 부품을 수시로 수거해 테스트한 뒤 안전기준에 못 미치면 제작·판매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또 안전기준 미달 부품의 경우 완성차에 적용된 부품은 완성차가, 시중 유통 부품은 부품 생산업체가 리콜을 책임져야 하며, 결함 사실이 공개된 날부터 소급해 3년 이내에 자동차 소유자가 자기 부담으로 그 결함을 시정했다면 부품 제작자가 그 비용을 보상해야 한다.
우선, 부품 자기인증제는 순정품(완성차에 장착된 부품 또는 완성차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부품업체가 지정 정비업체에 납품한 부품)의 비싼 가격을 둘러싼 논란과 직접 맞물려 있다. 건교부 자동차팀 쪽은 “부품 인증제를 실시하면 꼭 순정품을 쓰지 않더라도 일정한 안전기준에 부합한 부품을 순정품보다 더 싼 가격에 소비자들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품 인증제 도입으로 자기 인증마크(자체 브랜드)를 붙여 팔면 부품을 50원에 판매할 수 있는데도 현대모비스 순정품이라는 홀로그램을 붙이면 가격이 150원으로 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품 안전기준을 마련해주면, 값비싼 순정품과 품질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비정품 부품 사용이 활성화돼 과도한 자동차 수리비가 절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손해보험협회가 부품 인증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건교부 쪽은 “자동차 부품의 ‘최대’ 안전기준이 100%라고 할 때, 부품 인증제가 도입되면 안전기준 60% 미만인 부품은 시장에 못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부품 인증제는 부품 유통시장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66년부터 타이어 등 16개 부품에 대한 자기인증제(인증마크 DOT)를, 유럽은 1958년부터 등화 등 22개 부품에 대해 사전형식승인과 강제인증제(인증마크 ⓔ)를, 중국도 2005년부터 등화 등 16개 부품에 대해 사전승인 및 강제인증제(인증마크 CCC)를 실시하고 있다. 건교부는 “국내 부품업계의 품질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우리도 선진국형 부품 자기인증제를 도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이제 소비자들이 과도하게 비싼 순정품과, 안전기준에 따라 자기 인증마크를 부착한 저렴한 부품 중에서 선택해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최문석 팀장은 “지금도 소비자들은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순정품과 값싼 비순정품 중에서 스스로 판단해 구입, 사용하고 있다. 부품 인증제는 정부가 정한 ‘최저’ 안전기준에 불과하고, 현재 완성차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부품업체는 완성차 쪽의 요구에 따라 정부 기준보다 훨씬 더 높은 안전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최저 안전기준만 간신히 통과한, 완성차와 협력관계를 맺지 않은 제3의 독자 부품업체가 만든 안전도 낮은 부품을 정부가 양성화해준 꼴이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고문수 전무는 “완성차 공장에 부품을 납품할 때는 생산라인 앞에 대량으로 갖다주면 되지만 똑같은 부품이라도 A/S 시장에 유통될 때는 물류비용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순정품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최근 카포스(카센터 독자 브랜드·한국자동차부분정비사업조합)가 비순정부품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굳이 부품 인증제를 도입할 필요 없이 소비자들이 순정품과 카포스 마크가 붙은 것을 선택해 쓰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규제로 부담만 가중한다”
완성차 및 부품업계에 따르면, 현재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와 부품 설계 때부터 협력업체로 공동 참여하고, 차량과 부품의 설계가 변경되면 정보를 공유해 부품의 안전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완성차 자기인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문석 팀장은 “대부분의 부품업체는 완성차 업체의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충족하는 부품만을 생산·공급하고 있다”며 “자동차 부품 검증은 현행처럼 완성차에 실제로 부품이 장착된 상태에서 검사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동차는 2만 가지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돼 부품 상호의 조화·연관관계가 중요한데, 독자적인 부품 생산업체가 만든 부품은 비록 정부의 최소 안전기준을 통과해 자기 인증마크를 붙였더라도 자동차 설계·구조에 따라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품을 차에 장착한 조건에서 수십 차례 충돌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검증받고 있는 현행 ‘완성차 자기인증제’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품업계는 또 “건교부가 도입하려는 부품 자기인증제는 산업자원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과 중복되는 이중 규제”라며 “품공법이 자동차 부품을 포함해 47개 품목에 대한 엄격한 안전관리(안전인증·자율안전확인)를 하고 있는 반면, 부품 인증제는 부품 재원을 단순히 신고만 하고 스스로 인증마크를 붙여 유통하다가 결함이 발생했을 때 사후에 리콜 조처를 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안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완성차 업체가 이미 장착 부품에 대해 충분히 검증을 하고 있으므로 개별 부품에 대해 별도의 자기인증제를 도입하는 건 이중 규제로서 업계의 부담만 가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품업계는 아울러 “완성차는 차량등록증 기록을 추적해 리콜이 가능하지만, 부품은 정비업체에서 부품을 교체할 때 부품 이름과 교체 날짜뿐 아니라 부품의 제작사·제작연도 등 부품의 로트(LOT)번호까지 철저하게 이력관리가 돼야 한다”며 “부품은 유통구조가 워낙 복잡해 생산업체-중간도매상-정비업체-소비자까지 연결하는 전 과정에 대한 3년치 이력관리 통합망 구축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따라서 부품 인증제 도입에 의한 리콜 조처는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완성차 업체에 꼼짝없이 따르고 있다”
부품 인증제는 특히 중국 및 동남아산 저가·불량부품 공세를 차단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건교부는 “부품 인증제는 중국 등에서 짝퉁 저가 부품이 공식 인증 절차 없이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증제가 실시되면 수입 저가 부품은 퇴출되고, 인증 기준에 맞는 품질을 갖추기 위해 중국산 가격이 올라가서 국내 부품업계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국내 부품업체들이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하면서 이미 인증 수준보다 더 높은 품질을 확보하고 있다면, 부품 인증제 도입을 환영할 법도 한데 왜 부품업체들은 결사반대하며 반발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건교부 쪽은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에 납품도 하고 해당 부품을 A/S 시장에 유통하기도 한다”며 “국내 대다수 부품업체는 메이저 모듈 부품업체와 지배·종속 관계에 있는데, 찬성 목소리를 내면 완성차 업체와 메이저 모듈 부품업체한테서 납품 계약을 해지당할까봐 말을 못한 채 꼼짝없이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건교부 쪽은 또 중국산 부품이라고 다 저질인 것은 아니며, 국내 시장에서 대우받을 만한 품질을 갖춘 것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품업계는, 부품 인증제는 국내 부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외국산 부품을 믿고 써도 좋다고 정부가 인정해주는 셈이 될 뿐이고, 오히려 저질 부품이 ‘정부의 인증’을 근거로 대량 수입·유통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문석 팀장은 “최저 안전기준만 적용해 자기인증을 거친 중국산 부품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버젓이 국내 시장에서 활개치게 돼 국내 부품산업 피해가 우려된다”며 “최근에는 제조사 홀로그램까지 정교하게 위조한 중국산 짝퉁이 적발되고 있는데, 인증마크까지 위조한 중국산 짝퉁 부품이 시장에 넘쳐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품질과 안전기준이 떨어지는데도 자기 인증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산 부품의 합법적인 유통을 정부가 용인해주고 결국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모비스 쪽은 “현재 ‘HMC’(현대모비스) 마크를 위조 부착한 중국산 짝퉁 부품에 대해 현대모비스 상표 위조를 근거로 단속하고 있는데, 부품 자기인증제가 실시되면 HMC 마크도 안 달고 위조 인증마크만 붙인 짝퉁이 유통될 수 있고, 그러면 현대모비스가 짝퉁을 단속할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외양만 봐서는 중국산 짝퉁과 순정품을 구분하기 힘들다. 또 중국산 짝퉁 부품은 대부분 자주 갈아줘야 하는 소모성 부품들이라서 국내 수요도 꽤 많은 편이다. 부품업계는 “국내 중소 수입업체가 중국산 제품을 대량 수입해 인증마크를 부착한 뒤 유통했다고 치자. 나중에 결함이 발생했을 경우 수입업체는 리콜할 금전적인 여력이 없다고 배짱을 부리고, 중국 부품 생산업체 역시 제품의 품질을 확신한다고 배짱을 부린다면 부품 인증제의 리콜 조처는 실효성이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짝퉁 부품은 부품 인증제보다는 원산지 표시 강화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송영기 대한타이어공업협회 이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 ‘부품 인증제 실시로 중국산이 한국 정부로부터 인증받아 현대차 등에 장착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국산 자동차의 신뢰도와 이미지가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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