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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와도 통역이 되나요?

스웨덴 AI 데이터 분석업체 ‘가바가이’

“2021년까지 돌고래 언어 해독하겠다”
등록 2017-06-07 16:16 수정 2020-05-03 04:28
돌고래는 호루라기와 손동작을 구별하고, 신호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이해한다. 돌고래 언어 데이터만 확보되면 인공지능이 이를 해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양수산부 제공

돌고래는 호루라기와 손동작을 구별하고, 신호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이해한다. 돌고래 언어 데이터만 확보되면 인공지능이 이를 해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양수산부 제공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에는 개미언어 번역 기계가 등장한다. 기계는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개미가 내뿜는 페로몬 성분을 해독한다. 이를 전자 코드로 바꿔 인간의 언어로 출력하는 방식이다. 기계는 사람의 말을 받아 의미에 맞는 페로몬 성분을 합성한다. 이 페로몬을 개미에게 분사하면 “넌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페로몬 농도를 못 맞추자 개미가 한 말은 “당신이 내뿜는 페로몬이 너무 짙어요. 개미 살려!”였다.

개미언어의 암호를 풀면 우리가 개미에게 말을 안 걸 이유야 없겠지만, 개미 말고 당장 말을 걸어보고 싶은 지구 생명은 많다. 돌고래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5500만 년 전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로 들어가 진화한 이 우아한 생명체는 이야기를 몰고 다닌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업어서 살리기도 하고, 인간과 오랫동안 정을 나누다가 수족관에 갇히자 숨을 참는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사는 청백돌고래는 뾰족한 산호를 뒤지기 전 푹신한 수초를 뜯어 입 주위를 가리고 사냥한다. 미국 에모리대학 로리 마리노 교수는 2001년 발표한 ‘큰돌고래의 자의식에 관하여’란 논문에서 돌고래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살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사실까지 인지하는 메타인식도 있음을 제시했다.

이쯤 되면 돌고래와 인간은 정말 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스웨덴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업체 ‘가바가이’(Gavagai)는 스웨덴 왕립공과대학 연구진과 함께 2021년까지 돌고래 언어를 완전 해독하겠다고 발표했다. 업체가 주목한 점은 돌고래의 탁월한 언어능력이다. 돌고래는 호루라기와 손동작의 의미 차이를 구별하고, 신호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이해한다. 사물과 행동을 지칭하는 단어(신호)와 그것을 연결해 구조화된 구문(조합된 신호)을 만드는 돌고래의 조어 방식은 인간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업체는 충분한 돌고래 언어 데이터만 확보되면 세계 40개 언어를 분석하면서 축적한 자사의 인공신경망 기계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경험을 바로 적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공신경망 번역 방식은 ‘생각하는 번역’이다. 단어 단위가 아니라 문장 또는 글 전체를 파악한 뒤, 가장 정확한 문장을 뽑아낸다. 그러기 위해 미리 많은 문서를 학습해 단어의 쓰임, 순서, 의미, 문맥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많은 경우의 수(단어나 문장의 용례)를 공부했다면 “사과 농장 주인에게 사과를 받았다”는 문장을 보고 덜컥 사과를 과일로만 번역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진보해도 인간 사유 체계의 발현인 언어 영토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있지만, 사실 그래줬으면 하는 바람에 가깝다. 를 쓴 레이 커즈와일의 말대로 등차가 아닌 등비수열, 즉 수확가속의 법칙을 따르는 인공지능의 진보 속도를 감안하면 문장의 뉘앙스나 문체까지 섭렵한 인공지능이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놓고 고민할 시점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동물과의 언어 장벽이 사라질까? 그 소통이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해 온전히 쓰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돌고래 언어를 번역하는 데 돈이 들어가고 업체는 투자설명회에서 기술이 얼마나 돈이 될지 설명해야 한다. 실제 해당 업체는 “돌고래 언어를 정복하면 해안 수송이나 해난 구조, 해군의 어뢰 탐지 등에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고래와 말을 트게 된 날, “수족관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니? 바다로 가고 싶은지 말해줄래?”가 인류가 건네는 첫 질문이 될 수 있을까? 광폭으로 질주하는 인공지능과 자본 시대에 문장은 무력해 보인다.

함석진 넥스트인스티튜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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