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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비트코인

차별 없는 화폐 될까, 탐욕의 상징 될까
등록 2017-06-29 14:13 수정 2020-05-03 04:28
하룻밤 새 가격이 100만원씩 올랐다 내리는 비트코인은 화폐에 대한 많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REUTERS

하룻밤 새 가격이 100만원씩 올랐다 내리는 비트코인은 화폐에 대한 많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REUTERS

금(金)의 원소기호 ‘Au’는 라틴어 아룸(Arum)에서 따왔다. 이 아름답고 대체 불가능한 금속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늘 권력과 함께 욕망의 정점에 위치했다. 금이 곧 권력이었고, 인간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완력은 금에서 왔다.

금의 권능은 본질적으로 희소성에서 나온다. 금은 왜 그렇게 귀할까? 아쉽게도 지구 안에선 답을 찾을 수 없다. 137억 년 전 빅뱅으로 수소와 헬륨 가스가 만들어지고, 이것들이 뭉쳐서 태양 같은 별을 만든다. 별 중심부에선 엄청난 압력과 온도로 수소와 헬륨 원소의 핵융합이 일어나고 이것이 반복돼 탄소, 네온, 산소, 규소, 철이 차례대로 만들어졌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 지구의 모든 것이 거기서 왔다. 철은 꽤나 안정적인 원소여서 이것보다 무거운 원소는 별 내부에선 만들어지지 않는다. 핵융합에 드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별이 자체 중력으로 붕괴해 터지는 초신성이나 별의 마지막 단계인 중성자 별끼리 충돌한 뒤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온도와 압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금도 그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탄생한 무거운 원소 중 하나다. 지구에 있는 금은 모두 우주 공간에서 가스나 부스러기 형태로 떠돌다가, 46억 년 전 지구가 만들어질 때 섞여 들어왔거나 운석을 타고 왔다.

인류가 지구에서 수천 년 동안 채굴한 금의 양은 얼마나 될까? 수치는 들쭉날쭉하지만 보통 16만~18만t으로 추정한다. 17만t을 모두 녹여서 한 덩어리로 만들면 어느 정도 크기일까? 미국 인포그래픽 업체 데모노크러시(http://demonocracy.info)가 계산해서 그려보니, 한 변이 고작 20.5m인 정육면체에 불과했다.

최근 인간이 만들어낸 디지털 금 ‘비트코인’ 때문에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컴퓨터 연산 기능을 이용해 주어진 암호를 풀면 비트코인 하나를 얻는 ‘온라인게임’ 같은 이 요물은, 하룻밤 새 가격이 100만원 올랐다 내리는 가상화폐 투전 시장을 만들어냈다. 빚낸 개인투자자의 줄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하루 거래량은 코스닥의 3분의 1 수준인 1조원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금융 당국은 이놈을 화폐로 볼지, 상품으로 볼지, 규제해야 할지, 규제한다면 어떻게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디지털 숫자에 불과하지만, ‘다단계 악성코드’ 정도로 취급할 만큼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우선 금의 희소성을 똑같이 지녔다. 비트코인은 2140년까지 2100만 개까지만 채굴되도록 제한돼 있다. 갑자기 채굴량이 늘어나 값이 떨어지는 사태를 막는 장치도 들어 있다. 컴퓨터 연산 능력이 좋아져 채굴량이 늘어나면 암호를 더 어렵게 만들어 채굴 속도를 자동 조절한다.

태생 목적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만들어진 비트코인은 인류의 삶을 중앙집권화된 화폐권력의 횡포에서 구하자는 목표를 내재하고 있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발권은행이나 금융기관 없이 이용자끼리 서로 연결돼 돈을 찍어내고 유통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화폐 시스템이다. 초고인플레이션 앞에 두 손 들고 만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 정부가 비트코인을 만지작거린다는 보도도 낯설지 않다.

비트코인이 비대한 돈의 권력을 해체하고 장벽과 차별 없는 전혀 새로운 돈으로 진화할지, 아니면 게걸스러운 인간 탐욕의 또 다른 표적이 돼 투기 상품으로 전전하다가 ‘파일 삭제’되는 처지가 될지 아직 모른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골치 아픈 보안 문제까지 푼 이 전례 없는 금융 생태계의 출현과 운명에 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다음 칼럼에서 비트코인에 사용된 디지털 기술의 핵심과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좀더 내밀하게 살펴보겠다.)

함석진 넥스트인스티튜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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