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은 ‘성접대의 달’이었다. 그달 7일 탤런트 장자연씨가 스스로 목을 맸다. “술접대를 셀 수 없이…” “잠자리 요구를…” “욕설·구타를 당했다”는 마지막 말이 언론을 떠돌았다. 그달 27일 청와대 행정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간부가 업무 관련성이 큰 케이블방송 업체 직원에게 룸살롱 접대를 받았고, 행정관은 성매매했다.
2011년 3월, 장자연씨가 되살아났다. 그녀의 편지로 추정되는 문건이 공개되고, 성착취 내용과 “악마”들이 좀더 구체화되면서다. 하지만 문건의 진위는 물론, 그 내용도 새삼 중요할 게 없어 보인다. 시인에게 사건이 다시 불거진 까닭을 묻는다면 ‘여인의 망혼이 구천을 헤맨 탓’이라 읊을 것이다. 당시 41명의 수사진이 투입됐으나, 소속사 사장과 매니저 2명만 처벌을 받았다. 알선한 자도, 즐긴 자도 고인에게 사과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권력은 욕망을 자극하고, 욕망은 권력을 이용한다. 무람없다.
장자연씨 사건이 시라면, 이달 이어 터진 ‘상하이 스캔들’은 소설이다.
외교관들의 집단 치정은 얽히고설켜 권력과 욕망의 경계조차 분간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뒤틀린 성문화가 쉬지 않고 폭로된다. 상하이 치정극을 알리며 여성 덩아무개씨의 얼굴만 까발리는 언론의 태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세계 여성의 날’이 100돌이 된다는 2011년 3월이다.
지난 3월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여성 심리치료사였다. 연락처, 신상정보 등을 남기도록 돼 있는 정식 접수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한 번 더 “비밀이 보장되느냐”고 묻는다.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여성 A가 ‘의사한테 당했다’고 말한다. A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거래관계에 있는 의사가 술 한잔 하자 해 나갔고, 떠밀리듯 취하고 노래방을 지나 마지막 당도한 곳이 모텔. 만취 상태에서 A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죄의식이나 가졌을까”
심리치료 중이라는 정황이 A의 고통 한 줌을 겨우 비출 뿐이다. 더 자세한 내막을 드러낼 순 없다. 2차 피해를 부르곤 한다. 하지만 당초 비밀이랄 것도 없다. 한국 사회 “갑과 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곳에서 여성은 을이 마련하는 진상품”(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 교수)이 된다는 사실을 장자연씨의 죽음보다 강하게 웅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대형 미용실에서 남성 대표 미용사에게 성적 피해를 보는 여성 미용사들의 진정도 있다”고 말한다. ‘악마’와 ‘장자연’은 저마다의 위계에서 흔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장자연씨 자살 이후 여성 연기자 110명, 여성 연기 지망생 24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2009년 12월)는 복기할 만하다. 연기자의 60.2%가 성접대 제의를, 45.3%가 술시중 요구를, 21.5%가 성관계 요구를 방송 관계자·사회 유력 인사 등으로부터 받았다고 답했다. 지망생도 10명에 3명꼴(29.8%)로 “성접대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단독 보도한,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 연기자 18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19.1%(35명)가 “본인이나 동료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 34.4%(63명)가 “접대를 강요받았다”고 답했다(768호 표지이야기 ‘우리는 성상납 강요받았다’ 참조).
하지만 뭇사람들은 결과의 상당 책임을 피해자에게도 묻는다.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행은 불가능하다’ ‘어떤 여자들은 성폭행당하는 것을 즐긴다’ 식의 이른바 강간 통념이다.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 얻을 게 있기 때문 아닌가’라는 시선들이다.
일부에서 장자연씨 사건을 두고 ‘성접대’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이영아 연구원은 “기획사가 권력자들을 접대하는 데 장자연씨는 사람이 아닌 성(상품)으로만 사용된 것”이라며 “성접대라는 표현이 스폰서 따위를 얻기 위한 반자발적 행위로 오해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 연구원은 “사후 사건을 되짚는 과정에서조차 장자연은 배제돼 있다”며 “성접대가 아닌 성폭행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장자연씨는 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정혜신 정신분석전문의는 “(고인이) ‘악마’라고 불렀던 당시 남자들이 죄의식이나 가졌을까? 그럴 거라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있는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그런 접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은 “유명 배우도 아닌 때라, 그 특권층이 이 여자를 ‘가졌다’는 특별한 심리라도 있었을까” 조심스레 묻는다.
“장자연씨는 그냥 소모품이었다”고 아프게 확인할 수밖에 없다.
실제 잃을 것밖에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성접대 제의를 받아본 연기자의 절반(48.4%)이 “성접대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 등 연예 활동상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58.3%는 “술시중과 성상납을 거부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심리치료사를 찾았던 제약회사 영업사원 A는 결국 “여기서 (의사한테) 밉보이고서 더 일할 순 없다”며 “제약업계를 떠난다는 전제로” 해당 의사를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위로받을까, 가해자는 처벌받을까? 장자연씨는 자살했고, 직장 내 상사의 성희롱을 문제 삼았던 삼성전기의 이은의씨는 결국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뒀다.
설문조사 보고서를 책임진 이수연 당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 연예인 인권침해 사태는) 한국 사회의 왜곡된 성의식 및 문화와 연예산업 구조 문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한국 사회 비리의 농축판”이라고 말했다. 한국 남성만의 성문화 특징이 깊이 개입해 있다는 얘기다.
이영아 연구원은 “장자연씨는 강간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중에게, 불가항력적 착취를 당했고 그로 인한 완전한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시켜 준 이”라며 “죽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강고한 성착취 구조를 맨 먼저 관통하는 말일 것이다. 여성 피해자의 고발부터 지극히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권위는 장자연씨 자살을 계기로 2009년 9월 ‘여성 연예인 인권침해 특별 인권상담 및 제보 접수’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권위에 접수된 상담·진정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미국에서도 ‘캐스팅 카우치’(감독·제작자 등과의 성관계를 대가로 배역이 정해지는 것)가 때로 논란이 된다. 귀네스 팰트로, 샤를리즈 테론처럼 폭로하는 이가 많다는 차이가 있다. 심영섭 교수는 “서구 사회에는 연애 감정을 중시해 유혹을 하거나 어느 정도의 자발성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공짜 섹스’라는 인식이 핵심”이라며 “여성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기에 더 착취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대학교수 사회에서도 여성 접대가 식사 대접처럼 이뤄진다. 그러면서도 막상 문제가 불거지면 “스캔들의 비난과 혐의를 피해자가 나누고, 지금처럼 (사실이) 규명되지도 않고, 밝혀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결국 (피해자가) 자살하는 한국적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욕정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인가?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단서가 있을 뿐이다.
일단 성폭력 범죄(성폭행·강제추행·혼인빙자간음 포함) 비율이 주요 선진국과 달리 꾸준히 늘고 있다. 2000년 10만 명당 21.7건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2006년 31.4건, 2007년 31.8건, 2008년 33.4건을 기록했다. 이웃국가 일본의 경우, 성폭행(강간)만 따로 집계된 통계치를 보면, 범죄율은 2000년 1.8건, 2006년 1.5건, 2007년 1.4건, 2008년 1.2건에 불과하다. 독일도 성폭행 범죄율만 확인되는데, 2000년 9.1건, 2006년 9.8건, 2007년 9.1건, 2008년 8.9건으로 감소세에 있었다.
한국인은 학원과 룸살롱을 남긴다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차별 진정 건수는 2005년 118건에서 2008년 207건, 2009년 270건, 2010년 336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해온다. 위계에 의한 희롱과 차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자료에 근거해 “성폭력 피해자의 96.4%가 여성”이라거나 “20살 이상의 여성 피해가 2006년 62.3%, 2007년 62.9%, 2008년 63.1%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 연구논문도 있다.
미국의 성폭력 범죄율도 줄긴 한다. 10만 명당 2000년 32건, 2006년 30.9건, 2007년 30건, 2008년 29.3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치 자체가 높다. 그 미국도 한국을 “성적 착취를 위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을 공급하는 국가”로 규정한다. 미 국무성이 해마다 의회에 제출하는 국가별 인신매매 보고서다. 다시 묻게 된다. 한국 남성들의 욕정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정혜신 정신분석전문의는 “(상위층의 경우)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개인적 욕망과 욕구를 유보·통제하고 자기희생 하면서, 정서적으로 미분화되고 성공 뒤 자기결핍이 퇴행적 방식으로 분출하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를 자기통제의 대가로 간주하기에 죄의식도 적다”고 본다.
‘성적-성공’의 단순 가치가 성장기를 지배하면서, 개인적 욕망을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데 익숙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게다 집단 일탈의 경향성이 짙다. “이너서클에 대한 권력 기반을 다지고, 끼리끼리의 문화를 만들어간다.”(심영섭 교수)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학원과 룸살롱 두 가지를 세운다는 자조는 정혜신 정신분석전문의의 분석틀에 틈 없이 맞춤하다. “성공을 위한 욕구의 과도한 일상화가 학원으로, 그에 반한 극단적 일탈이 룸살롱으로 상징될 수 있다.”
‘상하이 스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영섭 교수는 “앞만 보고 달려온 사회 엘리트가 어느 시점에 소년의 연애 감정으로 몰입하는 경우를 린다 김, 신정아씨 사건 때도 보았다”며 “억제해왔던 제 감정에 더 취하고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구도”라고 말한다. 상하이 영사 김아무개씨는 덩씨의 사랑을 사기 위해 “팔”을 썼다 지우고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한국 남성의 과잉 지배욕
사회 고위층은 ‘장자연’을 부르고, 대기업 간부는 ‘텐프로’를 찾고, 생산직 노동자는 3만원짜리 노래방 도우미를 부른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자연산 미인’이 될 것을 주문하고,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현재 무소속)은 여대생들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느냐”고 가르친다.
윤가현 전남대 교수(심리학)는 “우리 문화권의 성범죄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의 남녀 간 지배욕이나 성욕의 수위차가 크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여성들의 결핍이 아닌, 남성의 과잉을 지적한다.
해법이 있을까? 배정원 소장은 “한국 사회에선 성이 ‘관계’라기보다 ‘과시’가 되어 드러나는 문제가 많다”며 “원만한 소통과 관계의 방식을 가르치는 교육과 문화가 청소년기부터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혜신 정신분석전문의는 “‘특별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일상적 가치들을 지나치게 파괴해왔다”며 “개별적 가치들에 집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막연할 수밖에 없는 대안 앞에 강력한 현실이 선다. 기사를 작성하는 중 도착한 휴대전화 문자 하나다. “쉬작, 10층 최대 규모 상위 10% 수질 (란제리 풀코스) 호텔 포함 현33(만원) - 김사장- 010-5787-0098”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