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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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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2)

등록 2026-06-18 19:04 수정 2026-06-23 14:12
1990년 2월9일 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왼쪽 셋째)이 박태준(왼쪽부터)·김영삼·김종필씨와 건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1990년 2월9일 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왼쪽 셋째)이 박태준(왼쪽부터)·김영삼·김종필씨와 건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람을 찾습니다(1)을 보시려면

 

장길산씨는 기자가 되는 꿈을 접고 한국예술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취직하기 싫어서인지, 취직을 못해서인지, 실연의 아픔 때문인지, 예술을 사랑해서인지, 예술을 혁명운동의 도구로 여겨서인지 불분명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원인이라면 원인이었겠죠. 이상한 행보는 아니었습니다. 혁명운동에 환멸을 느낀 사람 다수가 문화운동에 투신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늘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선우봉 감독도 바로 이 시절에 영화계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영화에 심심치 않게 반미 정서가 보이는 것도 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길을 간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선우봉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직 혁명가들이 개떼처럼 영화판으로 모여들었지만, 예술은 혁명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장길산씨는 이번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단편영화 두 편을 만들기는 했습니다. 반려동물을 사고로 잃은 중년 남성이 돌멩이를 반려로 삼게 되는 이야기였던가. 제법 알려진 영화제에 출품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영화제에서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장길산씨는 부모를 잘 만나 튼튼한 연줄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영화학과를 나와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었고,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로 주목받을 수 있는 고학력자도 아니었고, 사람을 웃기는 재간이 있는 예능인도 아니었고, 유명 영화제 아니 무명 영화제에서조차 입상을 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장편영화 입봉 기회 같은 것은 오지 않습니다.

그에게 아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충무로의 영화사 한 곳에서 상업성이 철철 넘치는 시나리오 한 편을 던져주며 “한번 만들어볼래?”라고 제안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길산씨는 그런 쓰레기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면 자신의 서늘하고 예리한 예술 감각이 무뎌질 수 있다며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일단 꺼져.” 그게 자기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입봉 기회였다는 것을 모른 채로 그는 그렇게 막말을 저질러버렸습니다. 그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장길산씨가 제작자에게 정신적 이단옆차기를 했다는 소식은 영화판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투자자들과 영화인들은 장길산씨를 더욱 멀리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장길산씨를 욕했죠. “미친 새끼 아냐?”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는 것이 장길산씨의 지론 아닙니까. 그러니 미친놈 취급 한다고 해서 기가 죽을 장길산씨는 아니었죠. 그러나 장길산씨의 커리어를 밝혀줄 가로등은 하나씩 차곡차곡 꺼져갔습니다. 고립된 장길산씨는 자본과 권력이 좌지우지하는 상업영화판을 저주했고, 그의 재능을 몰라주는 독립영화판을 경멸했고, 끝내 방향을 잃은 꼬마 기관차처럼 폭주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이 술, 저 술 가리지 않고 폭주했고, 취한 채로 대로를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은 스스로 폭주하지만, 자신을 따라 덩달아 폭주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폭주하는 사람은 이윤을 만들지 못하니까요. 장편영화를 만들 기회는 결국 그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

 

그러니 그가 결국 예술가로 살지 못하고, 논술학원에 취직한 것도 이해합니다. 체제 전복을 하고 싶어도 식후경 아니겠습니까. 예술을 하고 싶어도 식후경 아니겠습니까. 연애하고 싶어도 식후경 아니겠습니까. 일단 먹고살아야 혁명이든 예술이든 연애든 할 것 아닙니까. 저는 그래서 장길산씨의 취직을 이해합니다. 장길산씨가 영화판을 떠나 강남의 입시학원에서 논술 강사로 취직했다는 소식이 펴지자, 강퍅한 옛 동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길산씨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배신자 새끼! 변절자 새끼! 사기꾼 새끼! 만국의 배신자들끼리 단결하라고 해. 장길산씨가 예술을 하겠다고 할 때조차 간신히 참았던 욕이라서, 그 욕들은 한결 찰지고 매서웠습니다.

사실 좀 부당한 비난이었습니다. 장길산씨 정도 나이 먹고 취업에 실패한 전직 예술충이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욕하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선해주든가, 편의점 정도는 열 수 있는 사업자금을 대주든가. 여하튼 그 정도 비난쯤은 예상했다는 듯 장길산씨는 떳떳했습니다. 장길산씨는 기죽지 않고 대꾸했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한국 사회 모순이 응축된 입시학원판에 들어가서 그 세계를 내파해버리겠다! 이렇게 호언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죠.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던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그 유명한 삼당 합당을 했을 때 야당 지도자가 한 말이었죠.

사실 장길산씨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떼를 굶겨 죽이거나 미쳐버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왜냐고요? 장길산씨는 지상 최대의 조직 부적응자였기 때문이죠. 그가 들어가는 조직은 어김없이 와해되었습니다. 장길산씨는 조직에 들어가면 일단 남들이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말이야 옳은 말이니까, 다른 조직원들은 대꾸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장길산씨는 말발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주변 동료들을 끊임없이 비난합니다. 그렇게 비난하기에 열중한 결과, 조직의 결속력은 약해져갔습니다.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은 유리벽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죠. 그렇게 조직은 무너졌습니다. 조직이 무너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장길산씨 본인조차 그런 높은 도덕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음을. 그렇지만 때는 늦었죠. 조직은 이미 무너진 뒤였으니까.

 

*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장길산씨는 입시학원가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삼당 합당을 한 정치인이 승승장구했듯이 장길산씨도 승승장구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조직 내의 토론 과정에서 단련된 그의 말발이 드디어 제자리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장길산씨는 언제나 흥미로운 논술 주제를 던져주었고, 지루한 강의에 지쳐 있던 학생들은 장길산씨의 화려한 언변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올리브유에 식빵을 찍어 먹지 않고 연인의 머리 기름에 찍어 먹으면, 그는 식인종일까요?” 머리 기름도 인체의 일부이니 식인종이 맞다는 학생들과 머리 기름은 인체의 분비물에 불과하니 식인종이 아니라는 학생들이 맞서 격론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토론하다보면 학생들의 논술 실력은 저절로 향상됐습니다.

학원강사로서 큰 명성을 얻자 그는 자기 학원을 창업했습니다. 이름하여 ‘장길산 논술학원’. 장길산 논술학원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성공 비결은 언변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원을 마치 종교시설처럼 운용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듯, 그는 학생들을 불렀죠. “요한아, 이 문제를 풀어보렴.” “베드로야, 저 문제를 풀어보렴.” “유다야,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닭갈비가 먼저냐.” 마치 세상을 구원하는 가르침을 주는 메시아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외로웠던 학생들은 그러한 장길산씨에게서 심리적 의지처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고용한 학원강사들에게는 혁명가 별칭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트로츠키씨, 오늘 늦으셨네. 영원히 출근하시려고?” “체 게바라씨, 교안은 다 만들었나요. 외모만 믿고 너무 게으른 거 아니에요?” “박헌영씨, 나누어줄 것들은 다 출력했나요. 그러다가 숙청당해요.” “레닌씨, 요즘 머리숱이 줄어든 거 같아요. 그러다가 대머리 되면 어떡하죠.” 마치 논술학원을 통해 세상을 변혁할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어쩌면 이때가 장길산씨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논술 강의로 돈을 벌어 꼬마빌딩을 사기까지 했으니까요. 담배꽁초 버리는 일이 예사였던 장길산씨가 자기 건물이 생기자 솔선수범해서 담배꽁초를 줍는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장길산씨가 돈을 제법 벌었다는 소문이 나자, 옛 동지들이 돈을 달라고, 혹은 빌려달라고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럴 수야 있죠. 다들 얼마씩 기부하며 살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 시절 장길산씨와 사귀었던 옛 애인이 찾아왔습니다. 대학 시절 눈이 아프도록 아름다웠던 외모는 온데간데없고, 얼굴 곳곳에 세월이 거칠게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업에 거듭 실패하는 바람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그녀는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빌려달라고 옛 애인을 찾아왔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하는데 교회를 만들기 위해 자본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허, 누가 봐도 돌려받을 수 없을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못 받을 것이 뻔한 그 돈을 빌려준 것도 장길산씨였습니다.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야.” 그러고는 아주 큰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아니, 그냥 주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남편은 예상대로 그 돈마저 탕진했고, 그녀는 암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지키지 못한 임종을 장길산씨가 대신 지켰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옛 애인에게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면 나도 어딘가로 떠날 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네요. “귀여워….”

 

*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장길산씨는 정말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증발했습니다. 소문이 무성했죠. 옛 애인을 잊지 못해 진짜 미쳐버렸다, 아니 유럽 좌파에 대한 로망을 이기지 못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아리따운 조선족과 결혼해서 중국에서 입시학원을 열었다, 베트남에서 아주 어린 여자와 함께 디저트 가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가 돌아와서 진보정당의 숨은 브레인이 되어 온갖 정책적 조언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국외에서 앓다가 쓸쓸히 죽었다 등등. 이 무성한 소문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은 장길산씨가 유명한 주식투자자로 변신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식현황표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말로 유명한 자금운용회사 대표가 바로 장길산씨라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정말일까요. 옛날에는 마르크스·레닌의 저작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았던 그가 이제 주식현황표에서 미래를 본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금운용회사 홈페이지에 가도 대표의 사진을 찾을 수 없더군요. 그는 장길산씨가 아닐 것 같습니다.

장길산씨는 어디 있을까요. 꼭 한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말도 있고, 사과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옛날에 가졌던 혁명의 꿈, 그것은 진심이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게 진심이 아니었다면 왜 거짓말했냐고 따져 묻고 싶습니다. 그냥 주목받고 싶어서? 그냥 철이 없어서? 그냥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냥 여자를 꼬시려고? 그게 진심이었다면, 정녕 믿고서 한 말이었다면, 나중에 왜 전향의 변 같은 것은 없냐고 묻고 싶어요. 생각이 바뀌었으면 왜 어떤 근거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그 아름다운 말들이 그냥 묻힐 수 있어요? 전향의 변이든 사과의 말이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먼저 사과할게요. 당신이 혁명을 이야기할 때 잘난 척하지 말라고 한 건 사과하고 싶어요. 제가 너무 교만했어요. 당신이 영구 혁명을 이야기할 때 인간은 결국 죽는다고 대꾸한 것도 미안해요. 제가 너무 시니컬했어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꿈꾸는 당신에게 프티 부르주아지라고 욕한 거 미안해요. 제가 너무 싸가지가 없었어요. 얼굴에 뾰루지 났다고 쁘띠 뾰르주아지라고 놀린 거 미안해요. 제가 너무 짓궂었어요. 그러나 살아보니 제 말이 맞았잖아요. 당신을 비난하려고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안녕과 행복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장길산씨를 아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연락 바랍니다. 혹시라도 우연으로 당신 주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찾아주신 분께는 후사하겠습니다.

 

*

 

댓글1: 윤 어게인이다.

댓글2: 당신이 찾는 사람을 본 것 같습니다. 무전취식으로 송치된 적이 있어요.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의 주소는 일정치 않아요. 가족들도 포기했어요. 내일 돌아올 거야, 라고 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네요.

댓글3: 저희 가게 단골이었어요. 검정고시로 대학 간 사람 맞죠? 아랫배에 화무십일홍이라고 문신이 있었죠.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어리면서 자꾸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서 미친 새낀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쩐지 낭만이 있었죠. 저도 보고 싶어요. 찾으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댓글4: 바로 나다. 네가 찾는 사람이다. 너를 잊은 적이 한시도 없다. 항상 보고 싶었다. 연락 다오.

댓글5: 그 사람 몇 년 전부터 점집 해요. 신내림 받았거든요.

댓글6: 제 남편도 진리를 찾겠다고 집을 나갔어요.

댓글7: 우리 함께 진리를 찾으러 먼 길 떠나기로 했잖아요. 왜 밥값 계산하는 척하더니 사라졌어요?

댓글8: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댓글9: “때로는 상큼하지만 언제나 밝은 마음을 가진 돌싱입니다.^0^ 라인:mkz9609”

댓글10: 마포구에서 배회 중인 정보석씨(여, 76세)를 찾습니다. 158㎝, 45㎏, 검정 반코트, 검정 재킷, 검정 바지, 회색 운동화

댓글11: 한 달 전 상갓집에서 난동 부리던 사람하고 비슷해요.

댓글12: 알려주시면 후사하겠다니, 대체 뭘 해주겠다는 거야.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려고?

댓글13: 글쓴이 누나입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 동생은 공인회계사 시험에 떨어진 이후에 자신이 누군지 기억을 못해요. 그래서 자신을 찾는 공고를 이렇게 내놓고 다닙니다. 모두 자기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면 착한 아이예요. 공부를 너무 진지하게 하더니 저렇게 되었어요. 개벽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한류가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했어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두 달에 한 번씩 상상의 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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