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지하가 1991년 5월5일치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쓴 칼럼.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 홍길동입니다. 1988~1989년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나와 함께 혁명을 꿈꾸었던 장길산씨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이름을 쓸 수도 있겠네요. 요즘 유행한다는 외국 이름을 새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장, 피터 장, 마이클 장. 아니 로물루스 장, 아킬레스 장, 옥타비아누스 장일 수도 있습니다. 장길산씨는 대학 시절에 이미 40대로 보이는 노안이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젊은 시절에 노안이었던 사람은 그냥 그 모습으로 멈춰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사소한 정보라도 좋으니, 알려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저는 단지 장길산씨의 안녕과 행복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함께 혁명을 추구했습니다. 아, 대놓고 그랬다는 건 아니고요. 우리 둘 다 혁명을 꿈꾸는 지하 서클 멤버였습니다. 저는 ‘영어를 발음하기 두려워하는 자들’ 조직원이었습니다. 이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 독해 실력은 출중하지만 발음은 형편없어야 했습니다. 독해도 못하고 발음도 못하면 실격. 독해를 못하면서 발음만 좋아도 실격. 독해와 발음이 모두 좋아도 실격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영어로 된 사회주의 금서를 찾아 읽느라 영어 독해 실력이 늘어난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조직원들의 자부심은, 영어를 꽤 잘하지만 발음만큼은 형편없다는 사실에 있었죠.
조직원들은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면 화를 냈지만, 동시에 자신의 후진 발음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가입 절차 중에 영어 발음을 해보는 게 있었어요. 혹시 발음에서 “빠다” 냄새가 나면 가입이 어려웠습니다. 유난히 R 발음을 강하게 하거나, 혀를 지나치게 굴리거나, 토마토를 토매이토라고 발음하거나 하면 탈락이었습니다. 차라리 일본식으로 영어를 발음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당시에 ‘Something Special’이라는 이름의 양주가 있었는데, “썸씽 스페셜”이 아니라 “사무싱구 스페샤루”라고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조직원 중 한 명은 술에 취한 나머지 요구르트를 요거트라고 발음했다고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제국주의자의 발음이라나, 뭐라나. 쫓겨난 그 친구는 너무 분한 나머지 한민족의 요구르트인 막걸리를 퍼마셨죠.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요? 커피를 미 제국주의의 똥물이라고 멀리하던 시절이니, 이해해주시죠.
장길산씨는 “일본어를 발음하기 두려워하는 자들” 조직원이었습니다. 그 조직원들은 일본사람 이름을 결코 원음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豊臣秀吉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풍신수길로 읽었죠. 伊藤博文을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이등박문이라고 읽었죠. 반드시 그래야만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뭐라 불러야 할지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해방 전 이름인 高木正雄이라고 해야 할지, 박정희라고 불러야 할지. 장길산씨는 高木正雄을 다카키 마사오가 아니라 고목정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일본어 발음을 일일이 외우기 싫어서 저런다는 쑥덕거림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장길산씨는 일본제국이 한국을 통치했던 시절을 식민지 시대라고도 부르지 않고, 일제강점기라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왜정” 때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일본인을 “왜인”이라고 불렀고, 일본풍 문화를 “왜색 문화”라고 불렀으며, 일본음식을 일식이 아니고 화식도 아니고 와식도 아닌, “왜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장길산씨는 1989년 소비에트연방의 몰락 소식을 듣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오래 잠수를 타도 저하고는 연락을 가끔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그때만큼은 달랐습니다. “소련의 몰락에는 깊은 뜻이 있어”라고 그가 말했을 때, 제가 “별로 안 깊은데…”라고 대꾸한 게 실수였을까요. 느닷없이 제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소리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습니다. 김지하씨가 그 제목으로 신문 칼럼을 쓰면서 한때 유행했던 말이죠. 말끝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소리치던 날들이었습니다. 제삿날에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교회에 가서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절에 가서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횟집에 가서 모둠회가 나와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그러다가 정말 바람처럼 사라졌어요. 사라지기 직전에만 해도 그는 장발이었습니다. 원형탈모 때문에 머리를 기르는 거다, 아니다, 카리스마를 키우기 위해 기르는 거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를 박박 민 장길산씨를 먼발치에서 본 사람도 있다고 하니, 현재 모습이 어떨지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탈모 때문에 항상 모자를 썼으니 지금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년쯤 뒤에 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새로운 혁명 이론으로 재무장돼 있었습니다. 사회혁명은 동시에 정신혁명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당시로서는 참신한 주장이었어요. 겉모습도 달라졌습니다. 개량한복을 입고 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흰 고무신 코에 나이키 로고를 사인펜으로 그려넣었습니다. “Just Do It”이라고도 썼냐고요? 그럴 리가요. 그는 외국어 남용을 싫어했습니다. 한국어로 “일단 저질러”라고 써놓았습니다.
돌아온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요가를 했습니다. 캠퍼스 안 라일락 그늘 아래서 요가를 했고, 지하철 좌석에서도 요가를 했고, 길을 가다가도 마음이 불안해지면 대로변에서 가부좌를 틀기도 했습니다. 요가뿐 아니라 명상도 했습니다. 연설 중에 명상하기도 했고, 밥을 먹다가 명상하기도 했고, 배설 중에 명상하기도 했고, 걸으면서 명상하기도 했고, 자다가 명상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섹스 중에 명상을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정신혁명이라는 말만큼이나 영구혁명이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영구혁명. 혁명은 결국 시간 속에서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계속 혁명 중이어야 한다. 혁명에 성공한 사람들조차 곧 기득권자가 된다, 혁명은 늘 새로워야 한다…. 이렇게 말하며 중요한 것은 운동이나 제도가 아니라 체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혁명적인 순간조차도 그는 혁명이라고 하기보다는 “혁명적 체험”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모든 혁명적 체험은 신비체험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동학농민운동조차 그에게는 일종의 신비체험이었습니다. 먹을 때조차 신비체험 타령을 했습니다. “난 짜장면 먹을 때도 신비체험을 해. 정말 맛이 죽여주거든.” 아, 그때 제가 참았어야 하는데, 부지불식간에 그만 “그런 말 할 정신 있거든 좀 씻고 다녀요”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제가 점심 자주 샀잖아요.
뭐니 뭐니 해도, 새로운 혁명 이론의 핵심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정신을 유지하다보면 이 자본주의사회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정상성의 신화를 깰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제정신으로는 큰일을 못한다고 주장했죠. 제정신인 사람을 보면 화를 냈어요. 누군가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죠. “제정신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애써. 그거 다 헛일이야.” 자신의 광기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광기가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고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미친놈아, 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리면 “네, 저 말씀입니까”라며 손을 들었죠. 광인에 대한 공격을 자기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고 했죠.
이랬던 그가 취직에 실패한 것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도 먹고살아야 했으니 취직 준비를 하기는 했습니다.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에는 뭔가 좀 꺼려졌는지, 언론사 취업을 노렸습니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언론사 취직이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면접까지는 몇 번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죠. 면접관들이 그의 얼굴에서 광기를 읽었던 걸까요. 특종은 미친놈만이 해낼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요. 그는 번번이 떨어졌고, 떨어져도 거듭 응시했습니다. 꿋꿋했습니다. 자신이 계속 떨어진다는 행위 자체가 이 사회의 정상성과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포기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의 여자친구는 정말 기적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녀처럼 아름답고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필 장길산씨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종교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으려니, 하고 막연히 추측해봅니다. 장길산씨의 어떤 점에 반했는지 모르지만, 언론고시 준비를 하는 그를 하루하루 극진하게 보살폈습니다. 시험공부하는 그의 영양 상태를 섬세하게 고려한 도시락을 매일 싸왔습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깨가 굳는다며, 강아지 산책시키듯이 그를 산책시켰죠. 그가 아무 데나 들어가서 무전취식을 하면 조용히 와서 식비를 계산해줬습니다. 그가 술에 취해 개가 되어 담벼락에 주먹질을 해대면, 피가 흐르는 주먹을 맑은 물로 씻고 소독약을 칠하고, 붕대를 감아줬어요. 그처럼 그녀는 지극정성으로 장길산씨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그를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 있었다면, 그녀가 장길산씨를 사랑했다는 사실이지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이별편지를 보며 울부짖던 장길산씨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울부짖으며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일단 저질러!” 그녀가 떠난 후, 장길산씨는 변했습니다. 소련이 망해도 완전히 변하지 않던 그가 변해도 크게 변했습니다. ‘다음 글로 이어짐’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두 달에 한 번씩 상상의 여행을 떠납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고유가 지원금, 오늘은 출생연도 끝자리 1·6번 오세요~ [포토] 고유가 지원금, 오늘은 출생연도 끝자리 1·6번 오세요~ [포토]](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27/53_17772532452798_20260427500948.jpg)
고유가 지원금, 오늘은 출생연도 끝자리 1·6번 오세요~ [포토]

하정우 AI수석, 사의 표명…부산 북갑 출마선언 ‘초읽기’

네타냐후 물리친 전 총리들 또 뭉쳤다…정권교체 가능할까

부산 다녀온 배현진 ‘한동훈 위해 무공천 어때?’…“장동혁은 감사받아야”

조갑제 “추경호·윤갑근…국힘 공천 전체가 ‘윤어게인’ 공천”

변우석이 입은 철릭, 한복 아니다? 경복궁 무료입장 기준 논란

개혁신당 조응천, 경기지사 출마…“정말 찍고 싶은 사람 저밖에”

트럼프 “더는 이러지 않겠다” 선언…“이란, 대화 원하면 전화해라”

다리 부어서 입원한 40대 숨져…지난해 26명 사망한 이 질병

오늘부터 최대 60만원 ‘고유가 지원금’...주민등록 등·초본 수수료 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