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으니 돈도 없고 집중력도 바닥나 간단한 동네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당근 앱을 켜니 집 근처 에어비앤비에서 매트리스 커버 교체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50분 일하면 1만원을 준다기에 갔다. 침대 커버 다섯 개를 교체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니 땀이 나면서 개운했다. 배우 최강희씨가 고깃집 설거지와 희극인 김숙씨네 가사도우미를 한다고 1년 전 방송에서 말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돈 받고 운동하는 느낌의 청소 알바는 생각보다 재밌었고, 생활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시간을 비워두기는 주저됐다. 시급이 더 센 일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나 말고도 대체할 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람이 구해졌다고, 그 사람에게 맡겨도 되겠느냐고 사장님은 물었다. 하루아침에 잘린 기분이 들어 황급히 단톡방을 나갔는데 같이 일하던 청소 아주머니에게서 따로 연락이 왔다.
“성은씨 그동안 수고했어요. 가끔 연락하고 지내도 되죠? 나는 명동역 델리만쥬에서 일해요. 아침엔 가정집 가사도우미 하고, 점심엔 에어비앤비 청소하고, (오후) 2시 반부터 10시 반까진 델리만쥬에서 일하니 명동 오면 놀러 와요.”
“아니,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는 거예요? 몸 괜찮으세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내가 벌어 맛있는 거 사먹을 수 있으니 좋죠. 불면증도 사라졌어요. 대신 시간이 빠듯해요. 가끔 청소 도와줄래요? 내가 페이 챙겨줄게요.”
그렇게 나는 비밀의 새끼 청소부가 됐으나 새로 온 알바생이 힘들다고 하루 만에 그만두면서 다시 매트리스 커버 가는 일에 투입됐다. 대신 청소 아주머니와 친해져 살아온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식당을 운영하다 우울증에 걸렸던 이야기, 은둔형 외톨이처럼 몇 년을 집에만 있다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하고 주인 할머니 임종까지 지키게 된 이야기,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기도했더니 진짜 건강하게만 자라 훤칠한 아들 자랑까지.
“우리 엄마도 파출부 했어요. 내가 엄마 인생 따라가는 걸까. 엄마도 점심때 잠깐 가서 4시간 청소하고 오고 그랬거든요. 그땐 창피하다 생각했지만 내가 해보니 이 일도 괜찮은 것 같아요. 시간 활용도 좋고. 요즘은 ‘미소’ 같은 가사도우미 앱도 잘돼 있어서,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집에 가서 할 수 있거든요.”
나이 오십에 청소 일을 시작한 그는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대학에 들어가 못 받은 졸업장을 받고 싶다고 했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했지만 시한부 엄마 병간호를 하느라, 엄마 돌아가시고 난 뒤엔 결혼·출산으로, 마지막 1년을 못 채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친구들한테 연락 못하는 이유 중엔 내가 이러고 사는 걸 밝히기 싫어서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어쩔 수 없지 뭐. 친구들이 무대에서 꿈을 펼친다면 나는 델리만쥬가 내 무대예요.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이런 맛있는 간식이 있다고 추천해주고, 바로 구워져 나오는 만쥬를 기다리는 손님들과 대화하고 웃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어요. 손님들도 자기 나라 말 한 단어라도 들려주면 좋아하거든요.”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1) 특종세상 - 그때 그 사람
https://www.youtube.com/@exclusiveworld_mbn
여러 사람의 인생 사는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즐겨 봐요.
(2) 원지의 하루
https://youtube.com/@im1g?feature=shared
항상 바쁘게 사느라 여행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대리 여행이라고 해야 하나, 재밌게 보고 있어요.
(3) 놀면 뭐하니? - 갓 구운 만쥬 미쳤쥬?
https://youtu.be/cmBSjozx4zA?feature=shared
델리만쥬가 유독 지하철에만 있는 이유는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인데요. 냄새에 비해 맛은 덜하다는 소문도 있죠. 하지만 저희 매장은 냉동 반죽이 아니라 매장에서 직접 반죽해서 맛있다고 누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려주셔서 화제가 됐나봐요. 유재석씨, 세븐틴 승관씨 등 ‘놀면 뭐하니?’ 팀원들이 저희 매장에 오셔서 촬영한 뒤로 이 프로를 자주 봅니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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