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축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야구는 9회말 2아웃 5점 차이 이상이어도 역전 가능성이 있지만 축구는 후반 44분 2골 이상 차이라면 역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물론 추가시간에 2~3골 몰아칠 때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카타르월드컵처럼 추가시간을 8~10분까지 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국제축구연맹(FIFA) 통계를 보면 추가시간 골은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때보다 오히려 줄었다. 어쩌면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월드컵 축구를 지켜보면서 야구 경기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두 스포츠는 닮은 점이 꽤 있다. ‘공은 둥글다’는 대원칙 아래 진행되는 스포츠니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주 주관적인 입장에서 축구와 야구의 공통점을 뽑아본다.
축구나 야구나 아무리 득점 기회가 많아도 이를 살리지 못하면 결국 팀이 벼랑 끝에 선다. 월드컵 초반 최대 이변이던 사우디아라비아-아르헨티나 경기만 봐도 그렇다.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전반 내내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전반전에만 오프사이드 함정에 일곱 차례 빠지면서 기세가 꺾였고,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점유율은 31%(축구 통계 매체 ‘소파스코어’ 기준). 슈팅 수도 3개밖에 안 됐는데 이 중 유효슈팅 2개가 모두 골로 연결됐다.
야구로 치면, 아르헨티나는 강력한 선발을 내세워 경기 주도권을 틀어잡고 득점 기회 또한 많았는데 상대의 ‘결정적 한 방’에 패한 꼴이다. 야구 역시 잘 맞은 타구가 상대의 호수비에 여러 차례 걸리면 의욕을 잃는다. 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주자는 골로 연결되지 못한 슛과 같다. 16강 진출에 탈락한 ‘전차군단’ 독일의 경우 조별리그 3경기 동안 67차례 슛을 쐈는데 이 중 6개만 골망을 흔들었다. 평균적으로 11.17번 슛당 1개꼴로 골이 나왔다. 잔루만 많았다고 할까. 반면 16강에 진출한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는 35차례 슛해서 8골을 성공시켰다.
단기전에서 내일이 있는 경기를 하면 위기에 몰린다는 점도 비슷하다. 조별리그 1차전 때 독일을 잡은 일본은 2차전 때 코스타리카에 덜미(0-1 패배)를 잡혔다. 1차전 때 뛴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려 독일전과는 다른 선발라인업을 짠 게 큰 패배 원인이 됐다. 선발 11명 중 5명이 새로운 얼굴이었다. 다분히 코스타리카를 얕봤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도 이를 인정한다.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직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월드컵 목표인 8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력이 두터워야 한다. 선수들의 피로도를 고려해서 선발라인업을 달리해서 싸웠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했다. 조별리그 통과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16강, 8강을 생각한 것이 팀 운명을 뒤흔들었다.
모리야스 감독의 패착은 2022년 플레이오프 때 류지현 전 엘지(LG) 트윈스 감독의 선수 기용을 떠오르게 한다. 류 전 감독은 키움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부상 뒤 첫 등판이던 선발 애덤 플럿코를 길게 끌고 갔다가 낭패를 봤다. 그는 경기 뒤 “시리즈 4~5차전이었다면 일찍 판단했을 텐데 남은 경기도 고려해 운영했다”고 말했다. 단기전의 교훈은 하나다. 이길 수 있을 때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카타르월드컵의 볼거리 중 하나는 축구 경기에 접목된 과학이었다. FIFA는 카타르월드컵부터 반자동 오프사이드 시스템을 도입해 ‘매의 눈’으로 미세한 차이도 잡아냈다. 골라인판독기술(GLT), 비디오판독(VAR) 등이 점점 더 정교해진다. 공인구 ‘알릴라’(Al Rihla)에는 센서까지 탑재돼 공이 선수 몸에 닿았는지까지 정확히 잡아낸다.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동료 선수가 찬 공에 자기 머리가 닿아 제 골이라고 우겼으나 과학은 ‘아니다’라고 증명해냈다. 과학의 힘을 빌려 스포츠가 조금 더 공정해지는 느낌은 있다.
야구에서도 비디오판독 시스템은 이제 일반화됐다. 경기마다 한정돼 있지만 억울한 상황을 만회해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볼/스트라이크 판정의 경우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는 ‘로봇 심판’을 쓰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로봇 심판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월드컵에서 축구공에 칩을 심는 것을 보니 야구공에 칩을 심어 볼/스트라이크 등을 판정하는 시대도 머지않아 올 것 같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점점 화석화될 것이다.
이 밖에 축구·야구 모두 자기 팀의 운명을 다른 팀이 결정할 수도 있다. 2022년 프로야구만 해도 LG가 케이티(KT) 위즈를 마지막 날 꺾어주면서 키움이 정규리그 3위를 할 수 있었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도 포르투갈전 승리와 함께 같은 조의 가나가 월드컵 악연이 있던 우루과이와 악착같이 싸워서 0-2로‘만’ 져준 덕이 컸다. 가나가 0-3으로 패했다면 한국은 16강에 오를 수 없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은인이 됐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가나전에서 패한 뒤 “축구라는 스포츠는 인생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90분 경기 속에 녹아 있는 치열한 싸움을 결과 하나만 놓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16강 브라질전 패배만으로 4년을 준비해온 한국 대표팀의 노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경기 내용이 좋더라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는 게 축구이고, 야구이다. 인생이 그러하듯.
아마도 축구와 야구의 제일 큰 공통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것이다. FIFA 순위 차이가 커도, 전력 차이가 크게 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좁은 문틈에 숨어 있던 ‘희망’이라는 놈이 기적 같은 일을 선사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덧붙이기. 야구와 축구는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아마추어 선수 몰이를 해왔다. 스포츠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2002 한·일 월드컵 직후에는 축구로 몰렸고, 2008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야구로 몰렸다. 황희찬·조규성 등이 ‘한·일 월드컵 키즈’라면 안우진·강백호 등은 ‘베이징 키즈’다. 이제 ‘카타르 키즈’가 나올 듯하다. 10년 뒤 프로야구 아마추어 인재풀이 좁아질지 모르겠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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