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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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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가위에는 고군분투남과 소녀가 있다

올여름 한국 영화 대작 <외계+인>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헌트>… 서사 이끌어가는 남성 캐릭터들의 공통된 무의식
등록 2022-09-06 20:20 수정 2022-09-12 07:10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영화 <외계+인>의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한산: 용의 출현>의 이순신 장군(박해일), <비상선언>의 인호(송강호)와 재혁(이병헌), <헌트>의 박평호(왼쪽 이정재), 김정도(정우성).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영화 <외계+인>의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한산: 용의 출현>의 이순신 장군(박해일), <비상선언>의 인호(송강호)와 재혁(이병헌), <헌트>의 박평호(왼쪽 이정재), 김정도(정우성).

2022년 여름, 한국 영화 대작들에서 서사의 방향성에 가장 영향을 미친 요소는 남성 캐릭터의 면모인 듯하다. 과장을 보태면, 그 면모가 이 영화들의 세계관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다. 물론 남성 인물이 서사를 추동한다는 인상 자체가 딱히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이 영화들이 서사의 축으로 삼은 남성성을 각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도와 느슨하게나마 연관 지을 수는 있다. <외계+인>과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의 남자들에 대한 단상을 적어본다.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비상선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비상선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들 전부 의도하지 않은 재난에 휩쓸린 것뿐이니까요. 우린 나약하고 겁 많은 인간이잖아요. 이 결정은 우리가 처한 재난에 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떳떳하려고 하는 겁니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기장석에 앉은 재혁(이병헌)은 바이러스가 퍼진 비행기를 그 어디에도 착륙시키지 않겠다고 교신한다. 재혁은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과 국외로 이주하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장을 대신해서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은 상태다. 지금 그는 딸을 살려야 하는 아버지이자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기장이다.

<헌트> 쇼박스 제공

<헌트> 쇼박스 제공

다 같이 죽거나 제물로 바쳐지거나

그런 그가 착륙을 불허하는 여론과 정부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대신,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승객들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해도,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엄밀히 말해 기장인 그의 결정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했듯, 공멸의 결단을 숭고한 인류애로 미화하는 이 대목의 눈물은 그저 촌스러운 신파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끔찍하기 짝이 없는 도착적인 폭력이다. 그는 무엇을 구하고 지키려는 것일까. 무엇에 용서를 구하는 것일까. 자살폭탄 테러로 비행기를 산산조각 내려던 사이코패스 진석(임시완)의 망상과 집단의 흔적 없는 소멸을 무릅쓰려던 재혁의 감상주의는 얼마나 멀리 있을까.

<비상선언>의 또 다른 ‘아버지’는 아내가 테러범과 같은 항공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 인호(송강호)다. 그는 사건의 단서를 밝히고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진하고 공권력은 별반 힘쓰지 못한다. 결국 그는 바이러스 피해자들이 격리된 병동을 뚫고 들어가 자기 몸에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항바이러스제의 성패를 실험해보려 한다. 그의 행로는 마치 <살인의 추억> 속 형사에서 <괴물>의 아버지에 이르는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짐승처럼 울부짖던 이 남자는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인지력을 상실한 채, 마비된 육체적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 있다.

시스템과 싸울 의지가 없거나 시스템 앞에서 무기력한 가장, 온순한 소시민 ‘아버지’는 이제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모두 사라졌다는 듯, 다 함께 죽는 길을 택하거나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바친다. 이것은 행동력을 잃은 남자들이 펼쳐 보인 희생을 가장한 자기파괴적이고 무기력한 퇴보다.

이 영화의 관객이 두 남자의 시스템 순응적인 혹은 회피적인 ‘희생’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한한 행동력만 전시하는 남자 캐릭터들에 특별한 쾌감을 느낀 건 아닌 듯하다. <외계+인>의 중심축인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와 도사 무륵(류준열)은 한계 없이 변모하는 육체성으로 화면을 활보한다. 이들의 변신술과 기동성은 시간·역사·서사에 구애받지 않는 전능한 힘이지만, 적어도 1편에서 그 힘은 안타고니스트(적대자)를 조준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의 특별하고 우세한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놀이와 전쟁 사이에서 헤매는 소년들처럼 보인다.

<외계+인>의 이안(최유리)

<외계+인>의 이안(최유리)

<비상선언>의 수민(김보민)

<비상선언>의 수민(김보민)

도덕적 우월함을 고고하게 설파하며

힘의 설계가 중요하다. <한산>에서 한산대첩의 스펙터클만큼 공들여 묘사한 장면은 이순신(박해일)이 전술을 짜느라 골몰하는 대목이다. 그는 주변의 우려에도 바다 위에 성을 쌓듯 배들을 학의 날개 모양으로 정렬해서 적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축한다. 이 영화가 부각하는 지도자의 힘은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행동의 카리스마보다는 성찰하며 인내하는 지략의 내공에 있다. 그가 고심 끝에 백지 위에 대담하게 전술을 스케치하는 장면은 실제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보다 우아하게 그려진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적진으로 뛰어드는 과시적 수장이 아니라, 내면의 두려움과도 마주하는 선비의 형상이다. 어느 밤, 그는 벌판에 갑자기 우뚝 솟은 성벽에서 자신을 향해 화살이 쏟아지는 악몽에 화들짝 놀라 깬다.

<한산>에서 다른 한 축을 지탱하는 일본 장수 와키자카(변요한)는 그저 사악하고 야만적인 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가 “두려움은 전염병이다”라는 말로 겁에 질린 군사들을 죽이는 장면에는 그의 두려움도 새겨 있다. 그의 폭력성은 이순신과 달리 그 불안을 과도한 야욕으로 억누른 결과일 것이다. 그는 이순신의 평정심에 패배한다. 이 영화가 긍정하는 남성성은 즉각적인 행동력보다 관망의 판단력을 지향한다. 그것은 ‘견자’의 태도다. 물론 그 태도는 세계에 대한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반응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적진 속, 거북선의 활약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하는 장수들의 얼굴이 자주 등장한다. <한산>은 그 얼굴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가 몰두하는 건 ‘견자’의 내적 갈등이 아니다. 이순신은 이 전쟁을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닌 “의와 불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포로로 끌려온 일본인 군사 준사(김성규)는 이순신의 믿음에 무릎을 꿇는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이것이 “의를 향한 한마음”을 동력 삼아 전개되는 전투임을 내세운다. 조용한 장수가 선비의 자세로 설교하는 추상의 가치는 영토를 빼앗거나 지키겠다는 구체적 야심보다 모호하지만 맹목적이다. 자신을 망설임 없이 ‘의’의 편에 위치시키는 신념은 그 야심보다 어쩌면 더 섬뜩하다. <한산>은 그런 고결한 남성성을 욕망한다. 관객이 환대한 지도자의 초상은 손에 피 묻히며 적의 머리를 베지 않고도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고고하게 설파하는 지적인 설계자다.

<헌트>의 유정(고윤정)

<헌트>의 유정(고윤정)

폭력과 피의 역사로 얼룩진 육체

반면 <헌트>는 ‘고결한 남성성’의 욕망이 한갓진 환상에 불과하다고 외친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삼은 <헌트>는 앞서 언급한 세 작품과 비교하자면, 남자들의 부서진 육체를 전면화한다. 안기부 내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용이라고 해도 이 영화에는 고문 장면이 다소 과한 수위로, 자주 삽입된다. 서사상 그리 필수적이지 않은 장면도 종종 보인다. 일차적으로 시대의 폭력성을 시각화하려는 의도겠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남자들의 훼손된 나신은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강인하고 매끈한 외모에 감춰진 균열을 투영한다.

안기부 차장인 두 남자는 북한에 기밀을 넘겨주는 조직 내 스파이 ‘동림’의 배후로 서로를 의심한다. 영화 중후반의 반전에서야 이들의 분열된 정체성이 드러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대통령 암살 작전인 ‘베드로 사냥’을 목표했다는 사실을 대면한다. 박평호는 북한과 남한의 전면전을 막기 위해, 김정도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군부의 지도자를 살해하기 위해 대통령 제거를 도모한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박평호가 바로 ‘동림’이고, 김정도는 광주 진압 작전에 동원된 군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체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폭력과 피의 역사가 묻어 있다.

두 남자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남성 장르 영화에 밴 수컷의 연대감 같은 건 여기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정(고윤정)의 대학 동기인 운동권 남학생들은 철없이 몰려다니는 순수한 ‘아이들’처럼 재현되는데, 두 남자는 이데올로기적으로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이 ‘아이들’의 이미지로부터 가장 먼 곳에 존재한다. 둘의 육체는 의심과 배신과 트라우마로 닳고 닳아 이상을 잃고 피로만 남은 껍데기다. 영화의 결말부, ‘베드로’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너무나 튼튼한 방탄유리 안에서 끝내 죽지 않고 참극의 현장을 유유히 떠나지만, 박평호와 김정도의 육체는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피에 젖는다.

이 죽음은 완전한 실패와 체념을 지시하는가. 박평도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 유정에게 죽어가면서 말한다. “너는 다르게 살 수 있어.” 필사적으로 유정을 지키던 이 남자는 목숨을 바쳐 그에게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인가. 공교롭게도 이 글에서 다룬 작품들은 모두 성인 남자의 맞은편에 성인 여성이 아닌 어린 소녀를 둔다.

<한산>의 보름(김향기)

<한산>의 보름(김향기)

남자의 무해함을 호소하는 낭만적 유언

<외계+인> 속 가드가 고려 말에서 데려와 키운 인간의 아이 이안(최유리), <비상선언>에서 재혁이 국외 이주를 결심한 이유인 딸 수민(김보민), <한산> 속 준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는 첩자 보름(김향기), <헌트>에서 박평도의 도움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해온 유정. 이들은 육체적으로 연약하거나 언어를 갖지 못하거나 아직 자립하지 못한 상태다. 이들은 성인 남자들과 (유사) 부녀관계를 형성하며 세상의 폭력에서 보호된다. 그리고 남자들이 죽은 뒤에도 그들 덕에 살아남는다. 박평도가 유정에게 남긴 문장이야말로 올여름 한국 영화 속 남성성의 공통된 무의식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이 남자들의 궁극적 무해함을 호소하는 낭만적인 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남다은 영화평론가·<필로>(FIL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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