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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위한 정치’ 묻는, 이런 좀비를 봤나

호러 사극에서 정치 스릴러로 진화한 넷플릭스 <킹덤> 시즌2
등록 2020-03-24 19:00 수정 2020-05-03 04:29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즌2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덤’이 돌아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즌2(김은희 작가, 김성훈·박인제 감독)가 3월13일 금요일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2019년 1월25일 시즌1을 선보인 지 14개월 만이다. 시즌1은 공개 이후 ‘K-좀비’와 ‘갓’ 등의 신조어를 낳으며 전세계에 한국형 좀비(K-좀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미국 일간지 는 “은 한국 사극의 관습을 파괴한 작품”이라며 ‘2019 최고의 인터내셔널 TV쇼’ 톱10에 선정했다.

시즌2는 시즌1의 인기와 더불어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현실과도 닮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미국 경제지 는 3월12일(현지시각) “글로벌 팬데믹(감염병 세계 대유행)이 걱정된다면 넷플릭스 을 봐야 한다”며 시즌2의 캐릭터, 서사 구조를 집중 분석했다. 감염병 공포가 전세계에 퍼져가는 이때, 더욱 공포스러운 좀비극 시즌2의 면면을 3개의 열쇳말로 살펴봤다.

생사역과 핏줄, ‘피’에 대한 이야기

은 역병이 퍼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그린 한국판 좀비물이다.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 이창(주지훈)과 역병의 원인을 좇는 의녀 서비(배두나) 그리고 반대편에 서 있는, 권력을 탐하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와 그의 딸 중전 계비 조씨(김혜준)가 대립하는 구도를 이룬다.

시즌2에선 3년 전 상주에서 있었던 전란을 토대로 역병의 발생 원인을 좇는다. 당시 조학주와 안현대감(허준호)이 병든 자들을 죽여 좀비로 만들어 전란에서 승리하게 된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권력 쟁탈 게임은 교묘하고 치밀해진다. 조학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좀비가 된 왕과 세자를 ‘죽음의 링’ 위에 올린다. 유산한 중전은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을 얻기 위해 임신부들을 모으며 음모를 짠다. “그 하찮았던 계집아이가 이제 모든 것을 가질 것”이라고 욕망을 불태운다. 자신의 음모가 탄로 날 경우 모두 좀비로 만들기 위해 궁 안에 좀비를 가둔다. 그는 권력욕만 좇는 좀비가 된 것이다.

시즌1이 굶주림을 소재로 배고픔에 내몰린 백성과 역병의 실체, 채워지지 않는 권력의 허기 끝에 탐욕스러워진 권력자들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면, 시즌2에선 한발 더 나아가 피를 둘러싼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 그 때문에 벌어지는 피의 사투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1이 좀비물을 표방한 호러 사극이었다면, 시즌2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3월5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 김은희 작가는 “시즌2는 ‘피’에 대한 이야기다. 붉은 피 외에 핏줄, 혈통 같은 이야기도 포함된다. 피를 탐하는 생사역(좀비)과 핏줄과 혈통을 탐하는 인간들의 두 가지 상반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역병의 정치학

시리즈는 좀비 바이러스 역병보다 더 두려운 인간의 탐욕을 말한다.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죽은 왕을 살려 좀비로 만든 조학주,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좀비를 양성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아버지 조학주까지 죽이는 중전 계비 조씨. 그들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한 나라가 재난 상황에 처한다. 인재(人災)다. 수많은 무고한 백성이 서로를 물고 뜯는 좀비가 된다.

그들과 대비되는 인물이 왕세자 이창이다. 그가 진정한 왕, 백성을 위한 왕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모르던 그는 이제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좀비떼가 몰려오는 최전선에서 “이곳이 뚫리면 모두 죽는다”라고 외치며 용감하게 싸운다. 항상 그의 옷은 피칠갑이 된다. 역병이라는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그를 통해 말하는 듯하다. 이렇듯 ‘백성을 위한 정치’를 묻는 좀비물을 봤나.

김은희 작가는 (제1245호 3월10일치) 인터뷰에서 “을 쓰면서 정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세자 창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창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용상에 앉은 자가 당연히 해야 했던 일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왕은 그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마땅히 지켜야 할 권력자의 자세, 정치의 올바름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결국 왕위와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역병의 뿌리를 뽑기 위해 나서는 이창은 위기에 맞서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리라. 한편으로 코로나19 비상사태에서도 제 밥그릇 챙기고자 정치적 표만 계산하는 현실 정치인들의 모습이 스친다.

<킹덤> 시즌2를 이끄는 중심인물들. 왼쪽부터 왕세자 이창(주지훈),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의녀 서비(배두나), 어영대장 민치록(박병은), 중전 계비 조씨(김혜준). 넷플릭스 제공

<킹덤> 시즌2를 이끄는 중심인물들. 왼쪽부터 왕세자 이창(주지훈),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의녀 서비(배두나), 어영대장 민치록(박병은), 중전 계비 조씨(김혜준). 넷플릭스 제공

떡밥, 그리고 새 떡밥

“햇빛이 아니었어. 온도였어.” 시즌1 마지막에서 의녀 서비는 결정적인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해가 뜨면 죽은 듯 지내던 좀비들이 해가 떴는데도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한 말이다. 왜 그들은 밤낮없이 날뛰게 되었을까. 시즌2에서 좀비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시사철 얼음이 어는 곳에서 자라는 생사초(죽은 사람을 살리는 약초)처럼 그들 역시 찬 성질을 좋아한다.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이 되니 낮이고 밤이고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큰 떡밥(복선)이라고 할 수 있는 역병의 실체도 낱낱이 밝혀진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생사초에 붙은 벌레 때문이다, 좀비에게 물려도 전염되지 않을 수도 있다. 죽기 전 물에 들어가면 벌레가 몸에서 빠져나와 좀비로 변하지 않는다. 이게 일종의 좀비 치료법이다.

6부작에 지난 시즌 떡밥을 회수한 시즌2는 미스터리한 인물 전지현이 잠깐 등장하고 좀비에게 물린 적 있는 어린 왕의 몸속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전지현은 어떤 역할이고 어린 왕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또 새로운 떡밥을 던진다. 시즌제의 특성상 한 시즌의 끝은 다음 시즌의 시작이다. 시즌3은 이 떡밥을 어떻게 회수할까. 아,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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