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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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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뱀 이사시키기

칠흑같이 어두운 밤 돌담이 무너지고, 혀를 너불거리는 뱀이 나타났는데…
등록 2019-06-27 11:01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어두니골은 살기가 좋았습니다. 뒷동산이 가까워서 나물을 뜯어 나르기도 쉬웠습니다. 집 앞으로 한 500m쯤만 가면 맑고 시원한 강물이 흘렀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꽃이 심고 가꾼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도 곱게 무리지어 피는지 신기했습니다. 밤나무 밑으로 집 주위엔 수리딸기 멍석딸기 나무딸기 고무딸기가 철 따라 피었습니다. 겨울이면 뒷동산에서 썰매를 타고 강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좋았습니다.

뱀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단 한 가지, 뱀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산에 가나 강에 가나 늘 뱀이 나올까봐 무서웠습니다. 흐들갑스럽게 핀 나무딸기 위에 뱀이 길게 엎드려 혓바닥을 너불너불하며 딸기를 따 먹는 것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뱀에 대해 험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고동골 준석이네 할아버지는 꼴짐을 지고 오다가 독사를 만났답니다. 할아버지는 꼴짐을 진 채 지게 작대기 가달진 부분으로 독사의 목을 눌렀답니다. 비탈길이어서 꼴짐이 넘어오면서 엎어져 독사한테 물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독사도 죽어 있었답니다. 산 밑에 사는 어느 가난한 집은 여름날 방문을 열어놓았다가 어두워져 방에 들어가려다 방 안 문지방 밑에 들어온 뱀을 밟아 물렸다고도 했습니다.

우리 집은 산 밑에 있다보니 밭에 돌이 많았습니다. 밭에 돌도 치울 겸 돌을 주워 날라 집 뒤란에 쌓기 시작한 것이 집을 뺑 둘러 반달 담을 쌓게 되었습니다. 마당에는 대추를 한 가마니씩 딸 수 있는 큰 대추나무 세 그루, 키가 큰 사과나무, 앵두나무, 고야나무(자두나무)가 있었습니다. 고야나무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손수 지은 디딜방앗간도 있고 마구간과 잿간이 있었습니다. 집 앞으로는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심었습니다. 담 안으로는 짚주절이를 뒤집어쓴 토종 벌통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작은 텃밭이 있어 파나 상추, 배추 등 급할 때 멀리 가지 않고 뜯어 먹을 수 있는 비상 채소를 심었습니다. 어머니의 자부심이자 긍지요 자랑인 장독간도 있고 겨울이면 김치광도 담 안에 만들어 살았습니다.

어른들 말로는 담 속에 집을 지키는 집지킴이가 산다고 합니다. 집터가 좋아서 용이 되려고 준비 중인 큰 뱀이 사람을 해하지 않고 집을 지켜주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에에이~ 우리는 한 번도 못 봤는데요” 하면 “원래 아~들 눈에는 안 띄는 것이란다” 하십니다. 어른들 눈에도 1년에 딱 한 번만 띈다고 합니다. 원래 집 주위에 돌담을 쌓으면 쥐가 많은데 쥐가 없는 것 보면 큰 뱀이 다 잡아먹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반달 돌담 안에는 장마 때면 아주 맑고 투명한 샘물이 졸졸졸 흐릅니다. 집 뒤는 방에서 뜨럭(뜰)을 한 발쯤 되게 돌담을 쌓고 진흙으로 잘 다져놓았습니다. 큰 대추나무 밑에서부터 뜨럭 밑으로는 땅을 한 80㎝쯤 깊이 도랑을 파서 헛간 뒤로 해서 강으로 흘러가게 해놓았습니다. 담 밑 밭과는 어른이 껑충 건너뛸 만큼의 거리입니다. 온 집 주위가 다 물바다지만 집 뒤뜨럭부터 마당은 물이 나지 않는 아주 명당 터입니다. 할아버지가 집터를 잡을 적에 석 달 열흘 장마에 눈여겨보아 물이 나지 않는 터를 골라 집을 지었답니다.

담을 헐고 나니 아주 큰 굴이 나타나

어느 해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칠흑같이 어두운 밤 뒤란에서 와르르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무서운 소리가 났습니다. 날이 밝자 세상을 삼킬 것 같던 비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고 고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뒷문을 열고 보니 돌담이 무너져 작은 간장독 하나가 깨져 있었습니다. 간장이 뒤집어지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 장독간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바쁘니 담을 금방 손질할 수 없어서 장독 가까운 데만 치웠습니다. 동생은 무너진 담 위에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쉬는 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번개같이 뛰어서 담 위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안고 담 밖으로 달려갔습니다. 깜짝 놀라 보니 큰 뱀이 고야나무 밑에서 혀를 너불너불하며 동생 쪽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할머니가 “아범아 담이 헐린 참에 집지킴이를 이사를 시키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재주도 좋은 소리를 하시네요. 무슨 수로 뱀을 이사를 시켜요?” 하십니다. 할머니는 돌담을 좋아하는 놈이 담을 헐어 옮기면 자연히 담을 따라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꾼을 서너 명 불러 돌담을 헐어 큰 밤나무 밑에다 쌓았습니다. 담을 다 헐고 나니 정말로 고야나무 밑 쪽으로 아주 큰 굴이 뚫려 있었습니다. 며칠 뒤 굴은 흙으로 메꾸어버렸습니다. 돌담이 있던 자리에는 솔갑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호박 덩굴도 올리고 오이 덩굴도 올렸습니다. 돌담 위에 흙을 져다 덮었습니다. 꽤 쓸 만한 마당이 생겼습니다. 여름에는 자리를 깔고 쉴 참에 쉬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쉬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통굽살이(소꿉놀이) 하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열세 살 때의 어느 날입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 밤나무 밑 작은 마당 돌담에서 집지킴이가 나왔습니다. 커다란 머리통은 손목을 꺾어 든 것같이 생겼고, 눈은 꼭 엄지와 검지를 붙여 든 것같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두 손으로 잡을 만큼 커다란 몸통은 갈색에 흰 줄이 보이는 듯 마는 듯 가 있습니다. 놈이 꼬리를 땅에 붙이고 일어서서 혀를 너불너불하며 그 큰 눈으로 사방을 살펴봅니다.

멀리서 어른들과 함께 구경했습니다. 길이가 2m도 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려나 했는데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돌담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너무도 크고 끔찍한 뱀인데 집지킴이라 하니 별로 무섭지 않았습니다. 집지킴이는 1년에 한 번 어른들 눈에만 띄는 것인데 너도 어른이 되었나보다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어른이 되었나보다”

다수리로 이사할 때까지 교통도 불편하고 뱀도 많은 어두니골에서 잘 살고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집지킴이가 우리 집을 잘 지켜주어서 그렇다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큰오빠는 무슨 뱀이 집을 지키느냐고 그놈이 거기 살기 좋으니 살았을 뿐이라고 하면 할머니는 늘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순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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