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잊힌 도시, 잊힌 사람의 기록

소도시 성쇠를 목도한 전문 직업인의 궤적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
등록 2018-12-29 13:59 수정 2020-05-03 04:29

전쟁, 혁명, 정권 교체만 역사일까. 이런 사건들 틈바구니에서 시대를 목도하고 일상으로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도 소중한 역사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낸 보통의 일상들, 도시의 흥망성쇠와 함께 변해온 삶의 궤적, 그 모든 것이 기록되고 기억될 가치가 있다.

(김영건·최윤성 지음, 박현성 사진, 책읽는수요일 펴냄)는 강원도 속초에서 평생 나무배를 만들어온 양태인(83), 전용원(66) 배 목수의 삶의 흔적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일종의 구술생애사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에서 지금은 관광도시가 된 속초의 역사가 함께 읽힌다.

속초는 원래 명태와 오징어잡이로 흥했던 어업도시다. 명태철이 되면 경남 마산이나 거제도 같은 곳에서도 명태를 잡으러 올라왔고, 널어 말리는 오징어 냄새가 진동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명태 포획량이 급격히 줄고, 이제는 오징어 수확량도 줄어들면서 어업은 사양길로 들어섰다. 고기잡이가 밥벌이가 되지 못하면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직격타를 맞았다. 12곳이나 있던 속초의 조선소는 이제 2곳밖에 남지 않았고, 조선소에서 일하던 배 목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경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어요. (중략) 수협 어판장 앞에는 사람들이 득실거렸어요. 그때 무슨 얘길 했냐면,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얘기했어요. 그때는 건조장(오징어를 말리는 곳)이 없고 해서 그냥 아무 데서나 오징어를 말렸어요. 온 사방이 오징어였어요.”(양태인)

13살 때 경남 통영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일을 배운 양 목수는 1960년대 말 속초에 정착해 줄곧 칠성조선소에서 일했다. 전 목수는 북한 흥남조선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피란을 왔다가 다른 실향민들처럼 북에 빨리 올라갈 수 있는 곳인 속초에 터를 잡았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일로 평생을 살았지만 지금은 간간이 있는 선박 나무 수리나 건축 목수로 일을 한다. 먹고살기 위해 배운 일이 더 이상 돈 벌기 힘든 직업이 됐지만 자부심은 대단하다. “배 목수는 절간 지으라면 짓고 한옥 만들라면 한옥도 만드는데, 한옥 목수들은 배 만들라면 못 만들어요. 기술 때문이에요. 물이 안 새게 만드는 그런 기술 말이에요. (중략) 저는 물 들어간 자리에 창호지 같은 걸 넣어서 종이가 젖으면 돈을 안 받았어요.”(전용원)

평생 한곳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도시의 역사다. 항상 배와 물고기로 북적이던 항구, 나무배를 대체한 플라스틱배의 출연 등 흔적만 남긴 채 잊힌 도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두 목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정리한 이들도 3대째 가업을 잇는 속초 사람들이다. 동네 서점인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 칠성조선소 최윤성 대표다. 최 대표는 “두 배 목수의 이야기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옛 기억 속으로 데려다주었다”며 속초의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전한다. 등 사라지는 것을 소재로 주로 작업해온 사진작가 박현성의 사진이 기록에 깊이를 더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