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정윤의 작심 4주’ 첫 회를 시작한 뒤 거실에 들어서면 싸한 느낌을 받곤 했다. 거실 구석에 처박아둔 요가 매트가 ‘지가 편집장이라도 되는 양’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기사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운동하기 싫은’ 귀차니즘이 내면에서 대충돌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요가 매트를 편집장화하는 궁극의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한 게 아닌가 우려됐다.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13일, 집에 가서 밀린 홈트레이닝(홈트)을 해야 ‘작심 4주’ 기사를 쓸 수 있겠다며 일찌감치 가방을 싸고 있었다. 요가 매트가 아니라 진짜 편집장이 말을 걸었다. 편집장은 “음… 정윤씨, 그래도 홈트 기사인데…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독자들한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남의 속도 모르고) 정론지를 추구하는 편집장은 첫 기사에서 ‘객관적 수치’를 언급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저는 체중이 ‘그러어어어케’ 많이 나가는 건 아니어서, 제가 살 뺀다고 기사 쓰면 독자들이 욕해요. 이 기사는 체력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라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요가 매트인가, 편집장인가</font></font>사실 체중을 줄이든 체질량을 늘리든, 100㎏짜리 역기를 들든 하프 마라톤을 뛰든, 작심 4주 성과를 보여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터다. 문제는 야심 차게 시작한 홈트가 둘쨋날부터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지난주 ‘작심 4주 중 첫 주의 첫날’ 딱 한 번 홈트를 한 뒤 ‘예고성’으로 기사를 썼다. 첫 기사에서 “시작하기가 너무 어려워 그렇지 일단 시작하면 저돌적인 나”로 자기를 소개했던 ‘나’는 당장 허언증 환자가 될 판이다. 체력과 함께 의지도 감퇴했는지, 저돌적인 (줄로 알았던) 나는 기사 첫 회를 막은 다음날부터 ‘요가 매트를 펴느냐 마느냐’ 갈림길에서 자꾸 앞뒤를 재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 기사를 마감하고 간단한 뒤풀이를 마친 뒤 퇴근해보니 시계침이 토요일 아침을 향해 맹렬히 뱅뱅이를 돌고 있었다. 택시비 카드결제 문자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새벽 2시54분. ‘이 시간에 잠 안 자고 쿵쾅거리면 아래층에 민폐지…’ 피곤함은 교양과 죽이 잘 맞는 짝이었다. 토요일엔 해 뜨기가 무섭게 남편·아이와 약속해놓은 주말 일정이 빼곡했다. 가수면 상태에서 몸을 질질 끌고 다니다 저녁 무렵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살자고 하는 운동인데, 살려면 잠부터 자야지’ 귀차니즘은 자기합리화에 탁월했다. 월요일엔 엠티, 1박은 사정상 사양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자정이 한참 지난 뒤였다.
바쁜 일상과 피곤과 귀찮음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홈트가 산으로 가고 있던 지방선거일, 퇴근 뒤 요가 매트와 기 싸움을 하던 나는 결국 매트를 걷어치우고 산을 올랐다. 수학 시험 전날 평소 관심 없던 영어 공부를 ‘너무 미치게 열렬히 하고 싶은’ 딱 그 심정이었다. 하산객들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에어건 앞에서부터 숨이 차올랐다. 하산객들과 달리 나는 막 등산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는 게 반전이다.
산 중턱 팔각정(고구려정)에서는 상의가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며 10분가량 쉬었다. 이쯤에서 내가 오른 산이 아차산이라는 걸 고백해야겠다. ‘중턱’이래봐야 해발 100m밖에 안 된다. “오늘은 등산이 아니라 산책”이며 “이제는 우리가 집에 가야 할 시간”임을 강조하는 나와 달리 딸은 팔딱팔딱 저만치 앞서서 엄마를 재촉했다. 결국 ‘아차산의 핫플레이스’ 해맞이광장을 밟았지만, 이곳에서 찍힌 사진 속 딸은 자업자득 내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천왕봉도 아니고 해맞이광장에서 내 왼발에 기어이 또 ‘쥐’가 오른 탓이다. 2002년 겨울, 수습기자 산행에서 해발 1916m 지리산을 날아다녔던 날다람쥐는 입사 16년 만에 해발 287m 아차산 자락에서도 쥐에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진짜 산에서 찾은 성취감</font></font>요즘은 ‘등산 내비게이션 앱’에 등산 코스, 최고 고도, 산행 시간, 심지어 칼로리 소모량까지 표시된다. 이날 나는 총 1시간42분 동안 산에 머물며 1시간30분간 걸었다. 평균 속도 2.7㎞/h로 최고 고도 283m를 찍었고, 541㎉를 소모했다. 신통방통하게도, 칠순 노인도 산 정상에서 생활체육을 하는 야트막한 산꼭대기를 밟아놓고도 묘한 성취감이 생겼다. ‘홈트는 이미 망했다’는 좌절이 어느새 ‘오늘부터 다시 하면 되지 뭐’ 하는 여유로 바뀌었다. 2회 체험기의 주제는 그렇게 ‘홈트,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하는 법’으로 정해졌다.
40대 들어 처음 시작하는 홈트, 20~30대 때처럼 일주일 만에 2㎏을 감량하는 ‘대성공’은 없었다. 기력이 달려 운동량과 식사량을 비례해서 늘린 탓에 체중은 그대로였지만, 첫 일주일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1년 반 가까이 ‘몸을 움직이는 모든 행위’에 거부감 가득했던 내가 마음의 두꺼운 장막을 찢고 나왔다는 데서 의미를 찾고 있다.
요가 매트를 깔기 전까지는 너무 하기 싫고, 정말 못할 것 같은 마음이 앞섰다. 막상 “딴딴퉁퉁 종아리 알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레전드 종아리 돌려깎기, 벽이 있는 곳에서 시작할게요~.” 상냥한 다노 언니의 목소리를 좇다보면 어느새 ‘레전드 종아리 돌려깎기’를 끝내고 ‘레전드 허벅지 돌려깎기’를 찾아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첫 기사에서 다짐했던 ‘다노 티비’ 홈트를 총 사흘간 따라 했다. 일요일 저녁, 수요일 저녁 그리고 목요일 아침과 저녁. ‘겨우 3일’ 낙담하기 쉽지만, ‘0일’이었던 지난 1년 반과 비교하면 천지개벽이다. 임혜인 다노핏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이 짜준 일주일치 프로그램도 하루에 이틀치씩 몰아서 모두 소화했다. 첫 주라 짧고 쉬운 ‘몸풀기’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된 덕인데, 2주차부터는 어림없을 듯하다.
지금은 선망의 대상인 ‘다노 언니’ 이지수 주식회사 다노 공동대표 역시 대학 시절 20㎏를 감량한 경험이 있다. 중간중간 다이어트 결심이 풀어지고 해이해지는 경험을 했지만 “흐트러지더라도 완전히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는” 비결이 있다고 했다. 다노 언니는 “혼자서 홈트를 하며 동기부여를 하고 싶다면, 운동일기나 식단일기를 쓰면서 작은 변화에 집중해보라”고 조언했다. 커피전문점에 가면 으레 찾던 고칼로리 음료가 차로 바뀌고, 체중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기록으로 비교해보면서 ‘자기 객관화’를 통해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래도 천지개벽이다 </font></font>물론 의지로도 안 되고 기록은 더욱 못하겠고 혼자서는 도무지 운동을 이어갈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지갑을 여는 방법이 있다. 다노 언니는 “‘마이다노’처럼 요즘은 온라인 퍼스널 트레이닝이 많이 나와 있고, 유료 앱을 통해 집에서도 개인 트레이너의 운동·식단 코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홈트 첫 주 위태위태했던 나는, ‘그래도 선방했다’는 전례 없는 자존감으로 일단 둘쨋주도 ‘돈보다 의지’에 기대어보기로 결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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