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내 일상에 ‘떡볶이의 저주’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전정윤의 작심 4주’ 3회에서 홈트레이닝(홈트) 덕에 “떡볶이에 대한 에로스가 사라졌다”며 떡볶이와 ‘30년 영혼의 단짝’ 관계를 공개 청산한 지 꼴랑 하루 뒤부터였다.
시작은 토요일이던 6월23일. 평소 서울 홍익대 주변엔 갈 일도 없는데, 그리하여 ‘홍대 땡폭 떡볶이’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 한쪽에 묻어둔 채 잘 살고 있었는데…. 그날 하필 딸과 함께 홍대 앞을 지날 일이 생겨버렸다. 오직 나의 강철 같은 의지로 땡폭 떡볶이가 있는 주차장 골목을 애써 피해 다녔다. 홍대입구 전철역 근처에 이르러 ‘땡폭의 영향권을 용케 벗어났다’고 한시름 놓는데, ‘떡!’ 전철역 앞에 분점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생긴 모양인데 지나다닐 일이 없으니 모르고 살았다. ‘떡볶이랑 척진 것도 아니고…’ 천년을 기다려온 은행나무침대처럼 의외의 공간에서 내 앞에 환생한 땡폭 떡볶이를 외면하는 건 인륜이 아닌 것 같았다. 강철 의지는 천년의 사랑 앞에 녹았고, 붕우유신으로 ‘후딱 한 접시’ 해치우고 나왔다.
환생한 땡폭 떡볶이“엄마 코땡땡 떡볶이는 여기서 얼마나 멀어요?” 땡폭 떡볶이를 깨작거리던 딸이 가게 문을 나서면서부터 ‘마포 코땡땡 즉석떡볶이 타령’을 시작했다. 딸이 회사에 놀러 왔을 때 코땡땡을 데려간 적이 있고, 홍대를 대충 “엄마 회사 근처”라고 설명한 게 화근이었다. 땡폭이 너무 매워 몇 개 못 삼킨 딸은 제 입에 적당히 매콤했던 코땡땡이 생각나는 듯했다. “‘솔직히’ 엄마는 코땡땡 안 먹어도 괜찮은데…. 그래도 네가 ‘그러어어어케’ 먹고 싶다면….” 이번엔 모녀유친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돌아갔다)에 코땡땡에 들러 즉석떡볶이를 ‘3인분씩 두 봉지’나 포장하고야 말았다. 다음날인 일요일 점심과 저녁 사이, 우리 집 사이참은 그렇게 또 떡볶이가 되었다.
떡볶이를 먹고 나면 자포자기 심정에 홈트도 ‘딱!’ 하기 싫어진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나의 주말 홈트를 망친 떡볶이한테 또다시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객관적 수치 공개’를 공언한 마당에, 홈트 유종의 미를 거두는 한 주가 되기를 고대했다. 점심시간, 편집장이 커리(카레)를 사주겠다고 해서 날름 따라나섰다. 머리 좋은 편집장이 커리집 위치 따위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는데! 귀신에 홀린 듯, 편집장이 기억하는 거기 그 자리에 내 생활권역 톱2 떡볶이집인 ‘숙대 키땡 즉석떡볶이’가 있었다. 게다가 편집장도, 함께 간 후배도 떡볶이를 먹고 싶은 눈치였다(면 나의 착각일까). 하… 군신유의, 장유유서… 키땡 떡볶이는 그날 그 점심에 또 내 운명이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이 모든 것이 복수의 화신 떡볶이가 배신에 치를 떨며 계획한 ‘빅 픽처’인 것만 같아 ‘소오름’이 돋았다.
홈트 체험기의 절반이 ‘떡볶이 이야기’로 채워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의 스승, 유튜브 홈트 콘텐츠 다노 언니는 ‘습관 성형’을 강조한다. 저서 에서는 “입맛을 바꾸고, 좀더 움직이는 요령을 체득하고, 부정적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연습을 하는 전 과정이 바로 습관 성형 다이어트”라고 말한다. 떡볶이는 내가 성형해야 할 습관 목록의 맨 위에 있다.
나는 몸에 좋을 리 없는 떡볶이를 빈도로 보나 양으로 보나 과하게 먹는다. 떡볶이를 과식한 뒤에는 좀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부정적 감정이 들 때면 다시 떡볶이로 위로받는 ‘악습관’을 꽤 오랜 시간 이어왔다. 이번주 내리 사흘 떡볶이를 먹은 뒤 사흘 내내 홈트를 작파한 것도 익숙한 습관의 반복이었을 뿐이다. 단맛을 싫어하고 식사량도 그리 많지 않은 내가 자꾸 ‘붓는’ 건 상당 부분 ‘떡볶이 먹고 널브러지기’의 영향이 크다. 다노 언니가 말하는 “상습적 폭식, 운동 기피, 낮은 자존감, 부정적 자아상 패턴”을 바꾸려면 내 경우 떡볶이로부터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게 1순위인 셈이다.
‘음식 80 대 운동 20’이라지만다노 언니 책에 인용된 통계를 보자. 한국 여성의 90%는 다이어트를 계획 중이고, 그중 95%는 시도해본 적 있고, 70%는 진행 중이고, 20%만이 단기적으로 성공하고, 5% 미만이 5년 이상 성공을 유지한다. 나는 수년간 반복적으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온 ‘단기적으로 성공하는 20%’에 속한다. 다노 언니는 “습관 성형에 필요한 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절대 개선되지 않을 것 같은 고질적이고 오래된 습관도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을 불어넣는다. 다노 언니 목소리에 한 달 내내 ‘팔랑귀’였던 나는, 앞으로도 왠지 ‘포기’는 안 할 것 같은, 적소성대하여 ‘5년 이상 성공을 유지하는 5% 미만’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들떠 있다.
홈트를 시작한 뒤 체중은 가파른 상승세를 멈추고 ‘-0.5~-1㎏’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폭발을 앞둔 화산처럼 ‘꿀렁’거리던 허벅지 셀룰라이트는 육안상 미세하게 활동을 멈춘 느낌이다. 사실 체중 감소는 ‘음식 80 대 운동 20’이라는 말이 있다. 3주간 홈트를 했지만 체중 감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체력 증진’에 초점을 맞췄다는 핑계로 식이요법을 병행하지 않은 탓이 크다.
대신 ‘환골탈태’와 ‘영혼탈곡’ 프로그램을 연거푸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뚜둑 뚜둑’ 옆지기가 골절인 줄 알고 놀라던 뼈마디 소음이 줄었고, 탈곡기에 낟알 털리듯 심신이 ‘탈탈 탈탈’ 털리는 듯하던 ‘홈트 뒤 기진맥진’ 현상도 상당히(는 주관적 척도다) 개선됐다.
등산, 수영, 달리기 같은 ‘다른 운동’에 관심이 생긴 것 역시 꽤 미래지향적인 변화다. 특히 화석이 된 질주 본능을 일깨워 달리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기사에서 몸에 밴 겸양 탓에 ‘몸치’인 척했지만(이라고 아무 말이나 써본다), 사실 나는 한때 육상선수였다. 초등학교 때 많은 여학생이 흠모했던 초절정 인기 남학생이 나를 “아, 걔, 달리기 잘하는 애?”(“야, 나, ‘그땐’ 얼굴도 예뻤거든?”이라고 속으로 울어본다)로 기억할 정도로 ‘뜀박질 셀러브리티’였다.
이영미 작가의 조언에 따라 달리기 사전정지 작업으로 예쁜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내재적 저항감을 희석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신는 러닝화는 제화업계에서도 관심거리다. 2015년 아땡땡(아땡땡땡이 아님에 유의하자!)에 이어 브땡땡이 2위를 차지했다. 수입업자가 브땡땡을 잔뜩 들여왔으나, 한국인에게 낯선 브랜드라 판매가 부진했다는 슬픈 전설이 파다하다. 그리하여 해외 직구를 해도 100달러(약 11만원)가 가뿐히 넘는 브땡땡 러닝화가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 무려 ‘2만9천원’에 풀렸으니… 나도 냉큼 질렀다.
4주만 더? f마음은 이미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발선에 서 있으니 ‘일단 뛰어!’는 되지 않을까 싶지만, 기사로 쓰는 건 다른 차원이다. ‘작심 4주’ 애독자 세 명 중 ‘불의의 한 명’이던 편집장은 “‘4주만 더’를 쓰면 다음주에 휴가 보내주겠다”고 ‘초딩한테도 안 먹히는 사탕발림’을 하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라 그런지 ‘마감 껌’ 하나를 주면서도 “‘4주만 더’ 쓰면 주겠다”고 집요하게, 혹은 치사하게 물고 늘어졌다. “편집장님, 저는 다시 ‘기사 보릿고개’가 올 때까지는 좀, 되도록 영원히, 몸개그는 자중할 생각입니다. 편집장님을 본받아 훌륭한 탐사보도 기자로 거듭나고 싶습니다(살려주세요ㅠㅠ)!!!”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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