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밥 주지 마.” 포효하며 드러누운 큰아이. 큰아이와 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한 번데기의 시간을 보내는 걸까. 박수진 기자
“밖에 나가려고 하니 자꾸 눈물이 나.”
큰아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막 낙엽이 떨어지던 때였다.
드디어 시작됐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기 시작했다. 큰아이도 힘들 것이다. 취재 일정이 아침 일찍 잡히는 때를 제외하면 조금 늦은 출근을 할 수 있는 덕에 큰아이는 나와 함께 9시~9시30분쯤 어린이집에 등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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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생이 생긴 뒤부터는 아빠가 출근하는 시간인 8시, 우리 집 기준으로 새벽 댓바람에 집을 나서야 한다. 느긋하게 아침 먹는 여유도, 요즘 최고의 낙으로 떠오른 바다 탐험 만화 ‘××넛’ 한 편 시청도 불가능해졌다. 그림책 주인공의 질문 ‘엄마, 동생한테 그냥 오지 말라고 하면 안 돼요?’를 이제 온몸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두어 번 울고불고 떼쓰더니 전략이 바뀌었는지, 마음이 바뀌었는지 4살이 아니라 14살의 눈빛으로 무장하고 나를 쳐다보며 애절하게 반복했다. “엄마, 밖에 나가려고 하니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같아.”
나는 그 눈빛에 홀랑 넘어가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이 됐다. “그래, 그럼 하루 쉬자.”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길 학수고대해왔다. 온 동네에 ‘×월×일에 동생이 태어난다’고 광고해서 놀이터에서 만나는 친구 엄마들, 어린이집 선생님들 모두 둘째의 출산 예정일을 (본의 아니게) 기다렸다. 동생이 태어나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동생이 보고 싶어서” 놀이터도 건너뛰고 집으로 왔다. “누나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같은 닭살 멘트도 날렸다. ‘허니문’은 2주도 채 가지 않았고 첫째는 자기도 동생처럼 어린이집이 아닌 집에 있고 싶은 눈치였다.
어른 하나에 44일 영아와 43개월 유아의 한나절은 44일 영아가 잘 자준 덕에 생각보다 무사했다. 다만, 첫째의 이상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마치 감시자처럼 나와 아기를 통제했다. 급기야 둘째 밥 먹는 시간까지도. 때가 돼서 수유하려고 하자 “밥 주지 마”를 연발하며 벌렁 드러누워 울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주라고 하면 줘.” 절규했다. 44일 아기도 이에 질세라 ‘밥 먹겠다’고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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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증상도 나타났다. 요구사항을 말하던 첫째가 기침을 콜록콜록하더니 ‘우웩’ 하며 약간의 음식물을 게워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나도 토했어.” 잘 토하는 동생이 부러웠던 것인가. 토할 때마다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이 부러웠을지도. 그렇다고 구토까지 ‘의지’로 해낼 줄이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집 저집 첫째들의 다양한 증상이 생각났다. 어느 집 첫째는 수유 시간마다 옷에 오줌을 싸서 엄마를 혼비백산케 하고, 어느 집 첫째는 원인 모를 통증 호소에 응급실을 밥 먹듯 가고….
아이가 보는 곤충책에는 성충이 되기까지 캄캄한 땅속에서 애벌레와 번데기의 모습으로 1년여를 보내는 곤충들의 한살이가 등장한다. 육아하느라 이 기막힌 시절에 촛불 한번 못 들고 집에 꽉 매여 있는 나도, 새 가족을 받아들이는 일에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며 몸과 마음을 갈아엎고 있는 큰아이도, 모두 번데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엔 둘째를 맡기고 첫째와 광화문에 나갈 생각이다. 번데기끼리 ‘즐거운 동맹’을 맺는 시간이 되었으면.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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