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6일. 힘들다. 하루가 100년 같다. 누가 왜 안 말려줬나 싶다. 페이스북 어디선가 봤다. 한 엄마의 일갈. “둘째 너무 예뻐. 근데 엄마가 그지(거지)가 돼.” 너무 늦게 나에게 찾아온 문장. 주변의 부모들은 대체로 앞 문장만 말한다. “둘째는 그냥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 “내 생애 마지막 육아라고 생각하니 애가 크는 게 아까워.”
반신반의하던 중 둘째아이가 생겼다. 임신기간 중 옆자리 김아무개 팀장의 둘째가 태어났다. 나보다 체력 좋고 젊기까지 한 그가 동생의 등장에 저항하는 큰아이와 전쟁하며 하루하루 늙어갔다. 아침마다 더 새카매진 얼굴로 나타나 전하는 ‘헬육아’ 세계를 들으며 낳기도 전에 ‘포비아’가 생겼다.
한 번 해보지 않았더냐. 공포증을 달래며 되뇌던 혼잣말은 잘못된 위로였다.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 ‘할 만했던 것’으로 기억하던 신생아 육아는 해도 너무했다. (한두 달 뒤면 간격이 길어지겠지만) 아기는 (평균) 2시간30분마다 모유를 먹는다.
아기는 각자의 특징이 있다. 우리 둘째는 잘 게워내서 15분 수유하고, 30분은 안고 트림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게워내서 배냇저고리며 속싸개며 빨랫거리가 산더미가 된다. 2시간30분에서 45분이 수유와 트림시키기로 지나가면 1시간15분 남는다. 아홉 번 주어주는 이 시간 동안 똥기저귀 대여섯 개, 오줌기저귀 10여 개 갈고, 널브러진 집안 정리하고, 빨래 널고 걷고 개며 쳇바퀴를 돈다. ‘통잠’ 따위는 개나 줘버린 채 24시간이 무한 반복된다. 첫 출산 뒤 3년이 지나 30대 후반인 나는 앉았다 일어서면 뼈마디가 우드득댄다. 우리 부부는 감기몸살로 너덜대고 있다.
임신부와 산모에게 우울증이 찾아드는 이유는 ‘누리던 일상’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과 해질 녘부터 기울이던 술잔도, 혼자 총총총 다니는 가벼운 산책도, 심지어 잠과 씨름하면서 ‘내가 미쳤지’를 연발하며 기사 마감을 위해 두들기던 노트북도 내 것이 아니면 그립게 마련이다. 불안이 ‘미래 상실’이라는 위협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우울은 과거와 현재의 상실에 대한 감정의 하강 곡선이다. 내가 누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완전 의존체 ‘아기’만 남았다.
첫아이를 낳고 든 생각이 둘째를 낳고서도 여전한 걸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까. 왜 “힘들다”는 얘기보다 “예쁘다” “좋다” “보람차다”는 언설만 난무하는가.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후회하는 엄마’들을 어렵게 찾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사회가 엄마의 감정을 규제한다고 직관했다. 분노, 좌절, 후회를 말하는 것조차 불허된다. 한국에서는 그 흔한 ‘김치’ 들어가는 욕을 먹을 테다. 무엇을 기억하고 잊어야 하는지도 규제한다. 그래서 고통의 기억은 구전되지 않는다. 일단 낳고 길러봐야 안다. 그사이 재생산은 이어진다. 내가 둘째를 낳은 것조차 사회가 만든 ‘어떤 정상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생후 26일의 벌거숭이 둘째를 품에 안은 나는 아직 ‘후회한다/ 안 한다’ 결론 내지 못했다. 다만 이 칼럼을 통해 대차대조표를 그려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미소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같은 ‘후회하지 않아’ 딱지는 붙이지 않으려 한다. 오나 도나스의 생각을 빌려 말하면, ‘(둘째)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것’과 ‘태어난 아이를 부정하는 것’은 별개다. 후회를 말하는 엄마가 존재하는 것은 ‘아이 행복에 매달려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엄마상에서 벗어나 ‘육체·생각·감정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엄마상을 넓혀나가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font color="#00847C">*‘둘째엄마의 대차대조표’는 아이 둘을 키우는 박수진 기자의 육아 칼럼입니다. 이승준 기자, 양선아 기자와 함께 번갈아 육아 칼럼 필자로 참여합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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