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불안과 죄책감이 늘었다. 나이는 서른아홉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쌓인 내 연차를 설명하는 숫자는 무려 12다. 그중 첫째 육아휴직 1년, 둘째 육아휴직 8개월은 일하지 않고 흐른 시간이다. 임신 중이던 20개월은 매슥거림, 졸음, 숨참 등을 견디느라 전력 질주하지 못했다. 직장인이 1년 365일 전력 질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다는 자책, 경력에 비해 전문성도 실력도 없다는 불안감이 자주 몰려왔다.
이웃과의 소통은 요원하다. 아침에 큰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산책을 하고 있으면 경비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갓난아기 엄마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여요.” 눈곱만 떼고 나오느라 아수라장이 된 집에 다시 들어가기 두려워 밖에서 서성대는 나는 정말 ‘행복한가’. “애들은 정말 빨리 크네요. 크는 게 아깝죠?”라고 말 건네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진심으로 맞장구치지 못하고 ‘빨리 큰다고요?’ 속엣말하는 나는 ‘나쁜 엄마인가’.
첫째 때는 같은 시기에 임신해 육아휴직 기간을 함께한 동료 기자가 3명 더 있었다. 서로 의지하며 불안하고 막막한 육아 터널을 함께 통과했다. 지금은 동지가 없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동료는 돌 지난 아이를 돌보는 남기자들이다. 돌 전후로 육아의 밀도와 고민은 확연히 갈린다. 그래도 남성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내 직장은 상대적으로 성평등한 조직이다. 이런 회사이지만 결혼한 또래 남기자는 대부분 자녀가 둘 이상인 데 비해, 위아래 5년 선후배 중 아이가 둘 이상인 여기자는 3명에 불과하다.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이 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임을 시사하는 수치다(선호하지 않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2017년, 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시대착오적 소수’로 기록될 것이다.
칼럼을 통해 채워보려 했던 대차대조표는 당연히 여러 항목이 마이너스다. △부부관계: 로맨스를 찾기 어려움. 동지적 우애를 형성하고 있음. △여가생활: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화 감상, TV 시청이 거의 전부임. △여행: 지구 반대편은커녕 내가 사는 지자체를 떠나기도 쉽지 않음. △몸 건강: 배 둘레에 두른 훌라후프가 타이어가 되는 중. △마음 건강: 불안감, 죄책감, 공허감 등이 주 정서임.
특히 요즘 나를 지배하는 주 정서는 복직 뒤 두려움이다. 시간과 열정을 들여야 하는 업무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총량 사이에서 하게 될 끝없는 저울질, 그에 따른 감정노동. 갑자기 두 아이 모두 아프거나 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상수가 되는 삶….
그래도 칼럼을 끝내며 플러스도 있음을 고백한다. 아기가 터트린 첫 번째 웃음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 커튼 자락, 이불 패턴에도 신대륙을 발견한 듯 눈을 반짝이는 아기의 눈빛은 설렌다. 손을 내밀면 함께 손을 뻗는 성장은 놀랍다. 보채는 아기를 안아주면 금세 스르륵 잠드는 모습에 위로받는다. 그리고 유치원 갈 때 던지는 첫째의 한마디에 웃을 수밖에 없다. “엄마, 태하 잘 보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이 예쁜 아이들을 일하면서 키우는 대가로 꼭 이 커다란 불안과 자책을 짊어져야 하는 걸까. 아이 양육을 모두 엄마 몫으로, 일하면서 아이 키우며 겪는 어려움을 모두 ‘너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사회에 책임의 98%를 돌리고 싶다. 인간을 ‘인적자원’으로 보고 ‘빈 시간’을 ‘단절의 시간’으로만 보고 ‘경쟁, 경쟁, 경쟁’을 부르짖는 사회, 그것을 내면화해버린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곧 새 정권이 들어선다. 몸과 마음을 확 개비해야 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박수진 기자의 ‘둘째엄마 대차대조표’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글을 아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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