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가지가 무한하다. 우주(the universe)와 인간의 어리석음(human stupidity)이 그것이다. 단, 전자는 확실하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지구의 지배적 종에 관한 가장 탁월한 고찰 중 하나로 손색이 없다. 한편 지구 밖 생명체에 대한 최고의 언급은 단연 아서 클라크의 몫이다. “우주에 인간밖에 없을 가능성과 인간 외의 존재가 있을 가능성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내 말 그 말. 미지의 우주로 줄기차게 신호를 보내는 과학자들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그 지적 호기심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 혹은 그 이상으로 지적인 생명체가 우리 혹은 그 이상으로 종(種) 이기주의적이지 않으리란 발상의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올린 타임캡슐을 보고 선전포고로 오해한 외계인들의 공격을 다루고 있는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내일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외통수다. 지적인 외계 생명체에 한해 인간은 외통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느낌을 지난해 여름 첫 에세이집을 내고 연 북콘서트에서 받았다. “연세대는 어떻게 가요?” 포스트잇 질문지 중 하나에 누가 이렇게 써놓았다. 자, 여기에 대한 답변 방식은 두 가지다. 1) “7612 타고 신촌로터리에서 내려서…”처럼 허허실실 농으로 받아치는 방법이 있고, 2) “교과서랑 EBS 위주로…” 풍으로 ‘진지빨고’ 정공법으로 응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둘 다 심히 재수 없단 거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저 질문에 대한 재수 있는 답변을 찾아내지 못했다. 속으론 ‘요즘 시대에 연대 나온 게 뭐 대단하다고’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 역시 글로 써놓고 보니 밥맛없어 보인다.
남자 몸에도 외통수가 있다. 예전에 야구 경기를 보러 잠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야구장에 가본 사람은 그곳에 별의별 인간들이 다 온다는 사실을 알 거다. 만 단위의 사람이 모인 이상 그곳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사회가 그렇듯 거기엔 별의별 족속이 다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술에 취해서 응원단장 노릇을 하려는 아저씨가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경기장과 선수들을 등지고 관중석을 향해 춤을 추고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거기까지만 해도 분위기 잘 타는 흥 많은 아저씨였던 그는 다음 순간에 윗도리를 훌렁 벗어던졌다. 마이갓! 좋은 소식은 몸매가 괜찮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겨드랑이에 털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이아이즈! 보디빌더들이 육체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모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나잇살 먹은 사내의 민숭민숭한 겨드랑이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싫었다. 적어도 홍대입구역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스물한 정거장 동안 기대한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모 전, 그러니까 디폴트 상태의 그곳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니까 외통수다.
연인들의 오솔길 역시 곳곳에 진퇴양난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연애 외통수의 대표선수라 할 법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과거‘다. 애인의 옛사랑. 누구나 어느 정도 친해지고 특히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다보면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체면과 자존심의 금고를 지키던 사회적 자아가 곯아떨어지고 나면 이런 질문이 입 밖으로 새나가는 것도 순식간이다. “나 만나기 전엔 몇 명이나 만났어?”(희한하게도 다들 여기에 ‘두세 명’이나 ‘서너 명’이라고 답한다. 샴쌍둥이라도 만났나?)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도 쉽지 않다(아인슈타인은 옳았다!). “전에 만났던 사람은 어땠어?”란 질문은 대관절 어떤 대답을 상정하고 있는가? 물론 연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녀가 과거에 좋은 사랑을 했든 나쁜 사랑을 했든 그 (남의) 사랑 이야기는 똑같이 짜증 날 거란 점이다. 외통수는 피하라. 무조건 피하라. 그것을 즐기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 연인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팔을 들어 자신의 겨드랑이를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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