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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보다 상식을 배웠어야 했어

평생 쓰지 않을 것 같은 수식은 기억나도 소통의 기술과 배려의 마음을 학교에서 배운 기억은 나질 않네
등록 2015-07-04 15:16 수정 2020-05-03 04:28

얼마 전 우연히 EBS 수능 채널을 보았다. 고등학교 수학이었다. “가로가 6이고 세로가 8인 사각형이 1초에 2씩 가로가 늘고 1씩 세로가 줄어들 때 몇 초 후에 최초의 넓이와 같아지는가?” (대충 비슷하게 지어낸 문제니 실제로 풀어보진 마시라.) 머릿속으로 대충 수식을 만들어보니 강사의 풀이와 맞아떨어졌다. 십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하고 웃음이 나면서 조금 서글퍼졌다. 그 기간 동안 2차 방정식이란 걸 써먹어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나는 교육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정규교육을 받고 나서 이런저런 인생 경험을 하다보니 적어도 학교에서 2차 방정식보다 더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든다. 이를테면 구글과 엑셀이다. 거칠게 말해 구글이 기억을, 엑셀이 연산을 각각 인간 뇌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즉 우리는 기억과 연산 그 자체뿐 아니라 어떻게 정보의 바다에서 신속하게 원하는 콘텐츠를 찾을지, 그리고 반복되는 특정 연산을 어떻게 단순하고도 유려하게 시각화할지를 배우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대신 나는 툰드라 기후의 특성을 외우거나 수십 개의 방정식 예제를 풀어야 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걸 가르치라는 뜻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이를테면 나는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오히려 스마트폰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법’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10대들이 그렇지 못한 윗세대에게 신기술을 가르쳐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즉, 소통하는 기술이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겠다. 나와 다른 경험을 쌓아왔고 나와 다른 입장에 서 있으며 당연히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무얼 공유할 수 있을까. 역시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

대안 교육이나 실험적인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잘 연애하는 법, 잘 이별하는 법, 이런 걸 직접 가르치는 건 오버센스다. 하지만 문학이든 윤리든 상응하는 과목을 활용해 궁극적으로는 정규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최소한의 상식을 공유하면서 졸업할 수 있도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불특정 다수의 감정적 배설구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별의 방식이 고작 연락 두절과 잠수인 사람은 쪼다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소중한 배움을 교실이 아니라 트위터나 코즈모폴리턴 칼럼을 통해서 처음으로 얻어야 하는가.

당연히 성교육도 해야 한다(목소리가 커진다). 피임법 정도는 유튜브로도 배울 수 있으니 공적기금은 좀더 규모가 필요한 일에 쓰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 같은 곳에 무중력 체험실과 나란히 사정 직후의 남성 뇌 체험실을 만들어서 단체견학을 시키는 것이다. 남자한테 여자의 오르가슴 메커니즘에 대해 굳이 교육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서 불을 켜고 배울 테니까.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성욕 메커니즘을 생생히 파악하게 된다면? 이것은 어쩌면 혁명이다. 연애와 결혼 생활, 즉 성 선택의 과정 전반에서 우리는 전무후무할 정도의 찬란한 질적 성취를 이룰지도 모른다. 사정 직후의 남성 뇌 체험실, 물론 그곳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글쎄, 지금 당장 내게 그곳의 설계를 맡긴다면 ‘물이 끓긴 대중목욕탕’이나 ‘막 이삿짐을 빼고 나서 텅 빈 우리 집’ 정도를 만들지 않을까 싶지만.

정바비 송라이터·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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