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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향한 진격을 멈추라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의 실상을 파헤친, 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
등록 2015-04-11 19:18 수정 2020-05-03 04:27
중앙대 전직 부총장, 대학원장, 단과대학장 등이 지난 3월1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2016년학년도 학과제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학사구조 선진화 개편안’에 대한 비판 입장을 담은 설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중앙대 전직 부총장, 대학원장, 단과대학장 등이 지난 3월1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2016년학년도 학과제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학사구조 선진화 개편안’에 대한 비판 입장을 담은 설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학과 구조조정 바람에 대학가가 뒤숭숭하다. 중앙대는 지난 2월26일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2016학년도 ‘학사구조 선진화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학내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수정안을 내놓았다. 신입생들이 단과대 소속으로 기초와 교양과목을 수강한 뒤 2학년 2학기 때 전공을 결정한다는 게 주 내용이었으나 정원 미달인 전공을 비슷한 학문 단위로 묶어 ‘융·복합기반전공’으로 운영하기로 수정한 것이다. 교수와 학생들은 학교 쪽이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산업융합대학에 편입시켜 학과 정원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며 반발했다.

중앙대의 내부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수차례 학과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반복돼왔다. 2013년에는 비인기 학과인 비교민속학, 아동복지전공 등 4개 학과를 폐지하고 경영학부는 100명 가까이 정원을 늘려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비단 중앙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학들은 취업이 안 되는 인문학 전공은 통폐합하거나 폐지하고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는 기업형 인재

에서 자기계발 논리에 잠식당한 20대의 황폐한 내면과 이들을 ‘괴물’로 만든 사회적 메커니즘을 보여준 사회학자 오찬호씨가 이번엔 (문학동네 펴냄)를 펴내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진격대’라는 가상의 대학을 설정했지만 대학생들이 쓴 에세이 1226장과 인터뷰,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했다. 가상이 아닌 현재 대학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가 보고 들은 대학의 모습은 ‘웃프다’. 대학 새내기라면 누구나 반드시 들어야 하는 강의 ‘신입생 길잡이’. 취업정보센터 직원이 강사로 나서 ‘채용 트렌드의 이해’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취업률 현황을 보여주고, 뒤이어 대기업 입사 선배가 알려주는 학습법, 면접시 이미지 메이킹 등의 수업이 이뤄진다. ‘리더십’ 강의에서는 양복에 어울리는 나비넥타이 고르는 법을 알려주고, ‘글쓰기와 말하기’ 수업에서는 에세이가 아니라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운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것만 가르쳐야 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만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현실이 단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바로 경영학 열풍이다.

저자는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이 양산하는 인재를 기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호모 맥도날드’라고 명명한다. “패티 위에 치즈, 치즈 위에 피클을 올리듯, 1학년을 마치면 토익에 승부를 걸고, 2학년을 마치면 어학연수를 다녀온다.” 호모 맥도날드의 다른 말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는 기업형 인재’라고.

‘무감’을 만들어내고 ‘영어’를 숭배하고

“대학은 교육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린 경주이지만 마지막 주자는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향해 보란 듯이 진격한다. ‘무감’을 만들어내고, ‘영어’를 숭배하고,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고, ‘비판’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학에는 고통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술만 가득하다.”

저자는 책을 처음 기획할 때 제목을 ‘대학이 죽었다’는 뜻의 ‘대학살’이라고 정했다. 그런데 대학이 죽은 게 아니라 자본을 향해 활발히 진격하고 있었다고. 이 책은 그 진격의 방향에 관한 문제제기다. 동시에 ‘어쩔 수 없다’며 진격하는 대학에 그 진격을 당장 멈춰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던져준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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