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가 있다. 송대관의 가사처럼,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까딱이며 “어차피 쿵짝”. 제목은 몰라도 익숙한 그 노래, 자꾸만 따라하게 되는. 이 노래 저 노래 엇비슷한 듯한 리듬과 멜로디, 신파성 짙은 가사. 거참, 내 취향은 아닌데… 부정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는 1시간이 넘는 방송 내내 트로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트로트를 사랑한다는 남녀노소 출연자들로 넘실댄다. 동시에 노래에 버금가는 개인의 사연을 쏟아낸다.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던 프로그램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채널을 돌리다 붙들린 이들이라면 쉽사리 다른 채널로 다시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와 곡조에 여전히 마음을 붙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로트를 즐기지 않는 세대가 중년이 된 오늘, 트로트는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는지 모른다. 오디션 프로그램 〈트로트 엑스〉는 ‘저급한 장르’로 인식돼온 트로트에 새 숨을 불어넣는다. 왼쪽부터 참가자 숙행·김재혁·조정민.Mnet 제공
하지만 이 친숙한 장르는 한국 대중가요 시장에서 주류 무대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출연자들의 멘트는 현재 트로트가 가진 위상 혹은 고정관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를 부른 프랑스인 도전자 로빈이 내린 트로트에 대한 정의가 그렇다. “약간 유치해서 부르기 싫은데, 근데 자꾸 부르고 싶어요. 조금 이상해요. 듣는 것도 잘 들리고, 자꾸 부르게 돼요.” 무대의 심사위원이자 향후 출연자들과 팀을 꾸려 기획자 역할을 하게 될 ‘TD’(트로트 프로듀서)로 나선 태진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트로트를 저속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며 트로트가 처한 현실을 인정했다.
저속하고 고루한 B급이라고?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가요를 소비하는 층과 음악적 장르가 재편되면서 트로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대로 건너갔다고 설명했다. “트로트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몇몇 노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트로트는 고속도로 카세트테이프 시장 위주로 유통된다. 한동안 섹시 콘셉트를 내세우거나 걸그룹을 표방한 무명의 중년 여성 그룹이 이 시장을 점유했다. 디지털 음원 판매 순위로는 잡히지 않으므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차씨는 더불어 “지금이 전환기라고 보는데, 곧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 중년들이 나올 것이다. 트로트를 즐겨 듣거나 부르지 않는,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이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트로트의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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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김국환의 는 신승훈의 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다. 트로트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 다른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맞물려 음악시장이 완전히 새로 편성되면서 트로트는 세련되지 못하거나 고루한, 혹은 B급 정서의 장르로 인식되곤 했다. 이렇게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이들과 점차 거리를 멀리하게 된 트로트를 다시 무대로 호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를 제작한 Mnet 김기웅 국장의 말을 들어봤다. “리서치를 해보니 의외로 큰 업계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활동하는 분도 많고, 트로트 양성화를 원하는 분도 많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트로트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노래방에서만 부르는 노래가 아닌, 메이저 유통망에서 활성화할 수 없을까. 1950~60년대에 발표된 오래된 노래부터, 유통되지 않아 묻혀 있는 노래를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목표다.”
록으로 R&B로… 트로트의 변화구TV평론가 이승한씨는 트로트의 폭넓은 장르 규정이 대중의 감정을 붙든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회 방송에서 김추자의 가 30년 무명 세월을 보낸 가수 나미애씨의 한 맺힌 목소리에 얹혔다. 무대 맞은편에 앉은 심사위원 몇몇이 ‘직구’를 던지는 출연자가 있는가 하면, 최희준의 을 록에 가깝게, 나훈아의 를 리듬앤드블루스(R&B) 버전으로 바꿔 부르는 이도 있다. 반대로, 댄스음악인 씨스타의 가 트로트식으로 편곡돼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출연자가 자기만의 해석을 들고 나올 수 있는 장르다. 예컨대 는 록사운드에 가깝고, 남진의 노래는 스탠더드 팝에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트로트는 모든 것을 트로트로 묶는다. 사람들이 장르를 쪼개 음악을 향유하기 전에 감동을 느꼈던 장르라는 친숙함이 있다.”
트로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부활을 꿈꾸는 트로트는 다시 주류 무대를 차지할 수 있을까. 차우진씨는 “만약 가 잘되더라도 기존 트로트가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새로운 종류의 트로트는 나올 수 있다”. 오디션과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면에서 오래 공을 쌓아온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은 트로트처럼 쿵짝, 이해하기 쉬운 리듬으로 시청자를 붙든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의 흥행에 기대 이런 예측은 가능할지도. TD 가운데 한 명인 유세윤이 말하듯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이면 트로트곡이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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