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극장가는 ‘늑대남’이 대세다. 영화 이 관객 수 600만 명에 다가서고 있다. 게다가 일본 애니메이션 에 이어 할리우드 판타지 까지, 많은 사람들이 ‘늑대와의 로맨스’에 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늑대 같은 남자’가 음흉하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려는 자를 뜻한다는 과거의 해석에 매달린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건 순결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며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피해자로만 보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의 늑대남 판타지는 그 반대다. 여성의 욕망을 중심으로 보면, ‘늑대 같은 남자’는 ‘거세되지 않은 야수성을 지닌 남자’다. 이는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에게 품는 시원적 로망이 아니던가. 신자유주의적 억압으로 연애 현실조차 강퍅해진 결과 ‘초식남’ ‘절식남’ 같은 슬픈 족속이 등장한 지금, 남성의 야수성은 잃어버린 태고의 파라다이스 같은 가치가 되었다.
꽃미남에서 늑대남까지
여성들이 권위적이고 감수성이 떨어지는 대다수 이성애자 남성들과 소통이 되지 않은 지는 오래다. “괜찮은 남자는 모두 게이밖에 없다”는 푸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기존 남성상에 대한 안티테제로 꽃미남과 메트로섹슈얼 열풍이 불었다. 과거에는 ‘제비’니 ‘기생오라비’니 하는 힐난과 함께 순정만화 같은 여성들끼리의 하위문화 형태로 소비되던 남성상이 대중문화의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물론 이는 여성의 욕망이 대중문화 시장에서 주목받은 결과다. 그러나 소금이 그 짠맛을 잃으면 무엇에 쓰리오. 꽃미남의 결여된 남성성을 채우려는 것이 짐승돌과 위버섹슈얼이었다. 그러나 이는 단단한 근육일 뿐 진정한 카리스마가 결여돼 있었다. 이후 여자들의 이상형은 ‘차도남’에 이르렀다. 사회적 지위와 도도한 카리스마까지 갖추었으면서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남자. 하지만 이건 너무 불안하다. 언제든 그 대상이 바뀔 수 있으니까. 지고지순함과 운명 같은 끈으로, 나만 사랑하는 남자. 그게 바로 ‘늑대남’이다.
수렵생활을 하는 초기 인류에게 늑대는 경쟁자였다. 늑대는 인간들처럼 무리를 짓고, 리더의 지시에 따라 소리와 몸짓으로 의사를 주고받는 사회성을 지닌다. 일부일처제로 짝이 죽으면 평생 수절하고, 짝이나 새끼를 위해 희생하는 늑대의 습속을 인류는 닮고 싶어 했다.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면서 숲의 일부를 밀고, 개를 길들여 사냥과 목축에 활용했다. 숲을 잃은 늑대는 가끔 인간의 서식지로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었다. 늑대는 개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상징으로 인간과 적대적 긴장관계를 이루었다. 인간의 집단무의식 속에 늑대는 선망과 증오의 대상이며, 이는 ‘늑대인간’의 공포로 발현되었다. 중세의 기독교는 늑대를 악의 상징으로 추방했다. 근대문명은 숲을 밀고 늑대를 멸종시켰다. 오늘날 늑대는 공동체로부터 추방된 존재이자, 근대가 말살해버린 야수성을 상징한다.
여자들의 ‘하류 지향’ 판타지
일본 애니메이션 에서 가난한 대학생 하나는 트럭 운전을 하는 청강생 늑대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늑대인간은 공동체 안에 있지만,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자를 뜻한다. 그는 캠퍼스 안에 있지만 대학생이 아니고, 도시 안에 있지만 근본을 알 수 없는 떠돌이였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혈혈단신인 그에게 하나가 빠져든 것은 그가 풍기는 단독자로서의 페이소스 때문이었다. 세상의 기준에 기죽지 않은 당당함, 어떠한 가식이나 허세도 없이 자신의 근본 없음을 담담히 말하던 자존감. 그러나 그는 가족을 부양하려 애쓰는 도시천민으로 거리의 개처럼 죽었다. 하나는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비밀을 아는 유일한 존재로서, 둘만의 속 깊은 정을 되새기며 그가 남긴 두 아이를 인간과 늑대로 키워낸다. 공동체 밖으로 밀려난 자의 눈부신 자존감, 물론 이건 판타지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연애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판타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는 인간 소녀와 뱀파이어 남성과 늑대소년이 등장하는 하이틴물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시리즈에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계급과 인종에 대한 은유다. 낡은 용달차를 타고 다니는 벨라(의 여주인공 이름)는 학교에서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뱀파이어는 백인 부르주아를 상징한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에드워드에게 실연당한 벨라는 동네에서 원래 알던 연하의 인디언 소년 제이콥에게 위안을 얻는다. 제이콥은 늑대인간이다. 차갑고 자제력이 강한 뱀파이어와 달리, 뜨거운 피를 지닌 제이콥은 언제나 벨라 곁을 지킨다. 벨라는 처음부터 뱀파이어의 능력은 선망하고, 늑대인간의 힘은 무시했다. 마침내 에드워드와 결혼해 자신도 뱀파이어가 된 벨라는 제이콥이 자신의 딸에게 ‘각인’(운명과도 같은 절대적인 ‘꽂힘’)되자, “늑대인간 따위가 감히”라고 화를 낸다. 상류사회 진입을 꿈꾸는 백인 서민층 소녀의 소망충족적 판타지를 노골적으로 펼치는 시리즈에서 늑대인간은 나의 선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유색인종 근육남이다. 벨라의 결혼 뒤 잉여의 것이 된 삼각관계의 감정은 제이콥이 딸에게 꽂힘으로써 알아서 정리된다. 제이콥은 딸의 보디가드로 대를 이어 충성함으로써, 완벽한 어장관리녀의 판타지가 구현된다.
영화 의 주인공(송중기)은 마치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소년 같은 원시성과 야수성을 지닌 소년이다. 늑대소년은 자신을 세상에 불러내고 ‘길들여준’ 소녀에게 생애 단 한 번의 순정을 바친다. 그는 다시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지만 영원히 소녀를 기다리며 사랑한다. 송중기의 늑대소년은 미소년의 얼굴에 강철 같은 체력을 지녔으며, 나의 목소리에만 감응하는 절대적인 순정을 보인다. 그와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바로 나요,
내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라는 것. 여자들의 으뜸가는 판타지다. 여성들이 품고 있는, 상대를 사육하고픈 욕망은 때론 여성들의 각별한 반려동물 사랑이나 ‘평강공주 콤플렉스’로 나타난다. 남자들은 이를 두고 “사귀기 시작하니까 누나처럼, 마누라처럼, 엄마처럼 군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은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형식을 띤다. 할머니(이영란)는 “돈 없는 놈이면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차버려라”고 손녀에게 말하는 ‘센’ 여자다. “남자는 칭찬 많이 하면 좋아해. …많이 알면 겁쟁이가 되어 못하는 게 많아져. 살면서 딱 한 번뿐이야”라고 읊조리는 지혜라니. 할머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손녀야, 살아보니 별것 없더라. 어떤 남자가 최고인지 아니? 네가 온전히 지배할 수 있고, 사육할 수 있는 남자가 최고란다.” 누가 몰라? 늑대 같은 남자가 최고인지? 지금 너 누구 염장 질러? 브라우니,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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