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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나라에선 낙태할 수 있나요

등록 2008-02-29 00:00 수정 2020-05-03 04:25

루마니아 ·미국 의 임신부 앞에서 한국 를 꺼내보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낙태는 지구적 이슈다. 미국 대선에선 언제나 낙태 문제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르는 혹은 공화당 안에서 중도와 정통 보수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낙태 허용론자인 루디 줄리아니는 경선 시작 전까지 공화당 대선 후보 중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렸지만 막상 공화당 경선이 시작되자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또한 낙태 반대는 현대의 유럽에서 가톨릭의 핵심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리고 가톨릭의 가치는 유럽 우파의 정서적 근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낙태와 관련된 ‘모자보건법 14조 개정안’이 마련돼 얼마 전 공청회를 여는 등 입법이 진행 중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미혼·미성년 임신, 양육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를 금지하는 7개국에 들어간다.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이 있는 이탈리아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낙태의 사유를 한국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이유의 낙태 불허는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고 한국의 인공임신중절률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보다 높다. 마침 관련 법안의 개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임신과 낙태를 둘러싼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다. 1980년대 루마니아와 2000년대 미국, 20대와 10대 여성, 이렇게 시대와 나이는 다르지만 비혼의 임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풍경을 곱씹어볼 기회다.

차우셰스쿠 정권 아래 성행한 불법 시술

1987년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여기서 비혼의 임신은 다급하고 처참한 현실이다. 사회주의 이름으로 벌어진 악행들 가운데서도 차우셰스쿠 정권이 저지른 일들은 ‘저질’에 속한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인구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임신중절을 금지했다. 하지만 임신과 낙태는 정권도 막지 못하는 현실이다. 당연히 루마니아에서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성행했고 1960~80년대 루마니아에서 50만 명의 여성이 불법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다가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2007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은 그렇게 암울한 시절을 돌아보는 영화다. 대학생 기숙사의 여성 룸메이트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 가비타(로라 바실리우)는 짐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미리 잡아둔 호텔로 가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영화는 가비타의 수술을 도와주는 오틸리아를 줄곧 따라간다. 오틸리아는 친구가 소개해준 불법 낙태 시술자 베베(블라드 이바노브)와 접선을 하러 간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예약한 호텔에선 예약 기록이 없다고 하고, 어렵게 ‘접선한’ 베베는 다짜고짜 협박조로 나온다. 불법 수술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과 약속한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베베는 임신을 빌미로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성을 상징한다.

당시의 루마니아에서 비혼의 임신은 여자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가비타를 임신시킨 남성은 영화에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남성 베베가 언성을 높이면 벌벌 떨어야 한다. 사회적 편견 탓에 그들에겐 아이를 낳을 자유는 없고 아이를 지워야 하는 절박함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비타가 임신 기간 4개월을 3개월로 속인 사실이 드러나자 베베는 시술을 거부한다. 베베가 그들을 윽박지를 이유가 없진 않다. 4개월 이하의 태아를 인공낙태해도 불법이지만 4개월이 넘은 태아를 중절하면 루마니아에서는 낙태가 아니라 살인으로 간주돼 5~10년형에 처해지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불법 낙태 시술을 하는 남성인 베베의 손에 달렸다. 가비타는 낯선 베베를 붙잡고 “제발 해달라”고 애원한다. 베베는 그들의 절박함을 빌미 삼아 자신의 요구조건을 하나씩 관철한다. 모멸은 가비타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비타를 대신해 불법 낙태 시술자와 접선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고 숨진 태아를 버리는 일을 도맡아야 하는 오틸리아에게 모욕은 더욱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다.

오틸리아의 남자친구는 또 다른 남성성을 상징한다. 하필이면 오틸리아는 가비타가 시술을 받던 날에 남자친구 어머니 생일파티에 가야 하는 형편이다. 오틸리아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남자친구의 집에 간다. 하지만 그는 오틸리아의 불안에 무심하다. 이중으로 지친 오틸리아지만 자신이 냉정을 잃으면 모두가 잡혀갈 상황이다. 그래서 오틸리아는 불안에 떨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잠식된 영혼은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기 마련이다. 가비타가 오틸리아에게 임신 4개월이란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던 것,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은 이후 호텔에 혼자 남았던 가비타가 오틸리아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일, 이렇게 가비타의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던 태도와 자꾸만 꼬이는 상황에 오틸리아는 지쳐간다. 그러니까 낙태를 도와주는 친구에게조차 충분히 솔직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친구는 자꾸만 나중에 알게 되는 상황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오틸리아는 바보 같은 친구의 뒤치다꺼리를 멈추지 못한다. 만약에 자신에게 같은 일이 닥쳤다면 가비타가 도왔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은 리얼하게 처참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로 인물들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모욕을 당한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불행을 담담하고 생생하게 재연한다. 배경음악, 미장센 같은 영화적 장치를 극도로 자제하고, 카메라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물들을 따라가지만 인물들의 통증은 생생하다. 배우들은 카메라를 보고 연기하는 대신에 실제처럼 서로를 보면서 말한다. 하지만 배우들의 흔들리는 눈빛, 배신감에 떠는 표정, 다그치는 말투가 공기처럼 스며든다. 어떠한 극적인 장치도 없지만, 마지막 뒤처리를 끝내는 순간까지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심지어 생명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도 잊고 ‘어쨌든 저들이 빨리 저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렇게 문주 감독은 체제의 문제를 굳이 말하지 않고도 체제의 근본을 향한다. 영화는 2월28일 개봉한다.

첫 경험에 임신한 10대의 양부모 구하기

루마니아 영화 이 심장을 후벼파는 아픔을 그렸다면 미국 영화 (Juno)는 의 표현대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깊은 웃음을 준다”. 10대의 임신을 다룬 의 정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식적으로 쿨하다’ 되겠다. 상식적이면서 쿨하다니, 그것은 형용모순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일이다. 는 불행을 과장하지 않고 편견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독특한 소녀가 뜻밖의 임신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농담까지 섞어가며 보여준다. 미국 중부의 소도시, 주노(엘런 페이지)는 평범한 노동계급 가정의 여고생이다. 냉난방 기술자 아버지, 네일아트 가게 직원인 어머니, 늦둥이 여동생과 함께 산다. 1970년대 하드코어 록음악을 좋아하고 피범벅의 슬래셔 무비를 사랑하는 주노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독특하다면 독특한 소녀다. 그래도 16살, 대사처럼 “알 것은 다 아는 나이”다. 사실 주노는 일찌감치 스페인어 시간에 수더분한 블리커(마이클 세라)를 첫 경험 상대로 점찍고 의자 위에서 일을 치렀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임신이란 사건이 닥쳤다. 하지만 여기서 임신은 시한폭탄이 아니다. 주노는 임신을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면서 말한다. “걱정 말아요. 30주 뒤면 원래 나로 돌아갈 테니까.” 그리고 자신의 결정으로 아이를 낳아서 좋은 부모에게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부모도 임신중절을 강요하지 않는다(낙태 반대에 대한 기독교 전통도 읽힌다). 부모는 당황하지만 주노의 결정을 존중하고 출산을 돕는다. 이렇게 새엄마를 포함한 주노의 가족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배려한다. 그것은 중산층 혹은 지식인 가정의 훈련된 정치적 올바름과는 다르다. 어떤 강박이 아니라 체현된 정서에서 나오는 그들의 행동은 편안하다. 물론 주노를 둘러싼 편견도 있다. 아이들은 주노의 얼굴이 아니라 배를 보고 어른들은 주노를 살아 있는 교훈으로 여기지만, 그는 주눅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맞서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적당히 무시하고 자신의 일상을 즐기며 살아간다. 차라리 주노에겐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아이의 생부인 블리커를 찾아가 얘기를 나누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소중하다. 주노는 그것을 아는 소녀다.

아이의 양부모를 구하던 주노는 여성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상적인 부부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낳을 아이의 부모를 만났다고 ‘104%’ 확신한다. 뱃속의 아이도 커가고 미래의 양부모와 주노의 친분도 커간다. 영화의 후반부, 주노에게 닥치는 시련도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상식적인 반전이다. 영화에 빠져서 잊게 되지만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우리가 사는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반전 말이다. 주노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손을 벗어난 운명의 존재를 배우지만 ‘주노답게’ 이겨낸다. 그러니까 는 아이를 낳는 소녀의 얘기지만, 시련에 처해 불굴의 의지로 얻게 되는 영웅담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안에 있던 용기를 약간 내어 임신이라는 상황에 대처하는 소녀의 성장담이다. 10대의 임신을 다루지만 불행한 청춘영화가 아니라 상쾌한 성장영화인 것이다. 존재의 이면을 사랑스런 손길로 잡아내는 는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부분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몹시도 어벙해 보이는 블리커도 세 장면만 지나면 한없이 귀엽고 심지어 섹시한 인물로 보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는 박스오피스에서도 마법을 부렸다. 2007년 12월7일 미국 7개관에서 개봉한 는 서서히 미국을 점령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2008년 2월1일 현재 1억25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250만달러의 저예산 영화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는 스트리퍼 출신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을 써서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으로 주목을 받았던 미국 인디영화의 기대주 제이슨 라이트먼이 감독을 맡았다. 는 2008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후보 등에 올랐는데 엘런 페이지는 스무 살의 나이에 갓 열여섯 소녀로 변신해 오스카 트로피를 받아도 당연할 연기력을 보였다. 는 2월21일 개봉했다.

한국에선 가족과 기독교의 시선이 잡혀

미국에 가 있다면, 한국에는 가 있었다. 제목도 비슷한 두 영화는 같은 소재를 다뤄서 화제가 되었다. 2005년 개봉했던 한국영화 도 10대 여고생 제니(박민지)의 임신으로 시작했다. 아이의 아빠는 역시 고교생인 제니의 남자친구 주노(김혜성). 둘의 사랑으로 아이가 생겼다. 한국의 제니도 미국의 주노처럼 임신에 임하여 망설임은 있어도 공포는 없었다. 제니는 주노와 상의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출산을 걱정하는 부모 앞에서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말할 만큼 당당하다. 이렇게 소재가 비슷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가 낙태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에서 출발하는 듯이 보이지만, 는 임신한 소녀가 출산을 선택한 이후에 겪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다른데, 에서 출산에 대해 편견을 보이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이웃인 데 견줘 에서 출산의 첫 번째 장애물은 가족이다. 한국적 현실의 반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낙태를 금지한 기독교 윤리가 반영되는 방식이다. 한국의 는 미국의 보다 낙태 문제를 다루는 데 기독교의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반영하는 듯이 보인다. 의 마지막 장면엔 아기가 등장하고 인물들이 “당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반복하는 기독교성가(CCM)를 합창한다. 그렇게 비혼의 커플이 출산을 선택하는 일은 종교적 선택으로, 사회적 선택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가진다. 한편으로 전교 5등 제니와 프로게이머 주노에 견줘 의 주노와 블리커는 몹시도 평범한 아이들이란 점도 다르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에 다른 시선을 곱씹어볼 만한 작품들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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