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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와 홍길동과 슈퍼맨이 의사라면

등록 2008-01-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의학 드라마의 관습적인 이야기에 기존의 캐릭터 끌어들인 문화방송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설화와 만화로 말하자. 그 병원엔 동서고금 캐릭터가 살고 있다. 고전은 영원하고 원형은 힘이 세지만, 시절이 변했으니 그래도 성별은 바뀌었다. 오늘도 광희병원 응급실엔 남자 캔디와 여자 홍길동이 밤을 새우고 있다. 그들의 스승은 슈퍼맨. 신의 손을 가진 슈퍼맨은 화려한 ‘칼질’로 환자의 목숨을 구한다. 우리의 캔디는 어찌나 영특한지 전공의 1년차지만 가끔씩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불후의 명언을 날려서 슈퍼맨마저 은근히 감동시킨다. 캔디의 이름은 이은성(지성). 수녀를 “엄마”라 부르는 보육원 출신에 지방대 의대를 우수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성형외과가 각광받고 흉부외과가 외면당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메이저 중의 메이저”라는 광희병원에 들어왔다.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이 미달이었던 덕분이다. 그리하여 은성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로 오늘도 광희대 성골들의 왕따를 견디고 있다.

틀 + 로맨스

캔디의 별명이 “꼴통”이라면 길동의 별명은 “수석”이다. 수능 만점의 전국 수석은 광희대 의대를 1등으로 문 열고 들어가 1등으로 문 열고 나왔다. 이렇게 영특한 여자 홍길동의 이름은 남혜석(김민정). 캔디가 무조건 환자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막무가내 정의파라면, 길동은 실력만큼 정치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다. 수석에게도 아픔이 있으니, 혜석은 광희대 병원장 박재현(정동환)의 숨겨둔 딸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병원장이라 불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천재인 것이다. 은성과 혜석의 티격태격에 혜석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현재는 연예계 스타인 이동권(이지훈)이 더해지면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참, 슈퍼맨 얘기가 빠졌다. 환자 위에 환자 없고 환자 밑에 환자 없다는 투철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광희대병원 흉부외과 과장 최강국(조재현), 그가 바로 슈퍼맨이다.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해 광희대병원 흉부외과의 기린아였으나 선배에게 항명했다가 지방의 제2병원으로 쫓겨나 간난고초의 시절을 겪었다. 그곳에서 날마다 개와 고양이 심장을 “째면서” 심장수술을 연습하는 와신상담의 시절을 거치며 인격마저 성숙했다. 이렇게 인물의 구성부터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는 관습적이라면 관습적이다.

그래도 는 선의가 넘치는 드라마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다”, 은성이 극에서 여러 번 반복한 대사는 의 주제를 함축한다. 사람 살리는 흉부외과보다 돈 되는 성형외과로 전공의가 몰리는 시대에 대한 소박한 반론이 담긴 드라마다. 엘리트에 기죽지 않는 “삼류 꼴통”의 씩씩함을 찬미하고, 병 앞에서 재벌 회장과 청소부 할아버지를 차별하지 않는 정신을 찬양한다. 이렇게 는 순응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주제를 재현하는 방식이 그다지 새롭진 못하다. 의사들 사이의 경쟁과 음모라는 틀은 을 떠올리게 하고 의사들 사이의 질투와 로맨스는 를 연상하게 하지만, 선악구조는 에 견줘 단순하고 로맨스도 별달리 치밀하지 않다. 이렇게 적당히 관습적인 이야기, 적당히 단순한 캐릭터는 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여러모로 는 기존 의학 드라마의 성과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종합처럼 보인다. 어쩌면 20%가 넘는 시청률은 이렇게 새롭지 않아서, 새롭지 않았기 때문에 달성한 성과일지 모른다.

수술 장면 재현 강도는 갈수록 높아져

심지어 는 아버지 세대의 원한으로 얽혀 있고, 직장의 경쟁자가 연애의 라이벌이 된다는 코드까지 반복한다. 때로는 선의가 지나쳐 공자 왈 맹자 왈도 심하다. “환자로 인해 구원받고, 환자만이 내가 사는 단 하나의 이유”라는 ‘느끼한’ 대사도 서슴지 않는다. 주제의 한계도 분명하다. 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실력이라는 세상의 근본까지 의심하진 않는다. 이렇게 자칫 지루해질 위험이 있는 드라마를 구원하는 힘은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온다. 조재현의 안정된 연기는 의 중심을 잡아준다. 여기에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내는 지성의 연기가 더해진다. 군복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지성은 한층 성숙하고 노련해진 연기를 보여준다.

바야흐로 의학 드라마 전성시대다. 의 준수한 성적에 이어 가 주목을 받는다. 1월6일 첫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 는 성형외과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에 두는 최초의 드라마다. 이러한 드라마의 수술 장면 재현 강도가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는 가슴을 열어 보여주는데, 정말로 환자의 가슴을 활짝 열어 심장수술하는 장면을 재현한다. 에서 보여준 성형수술 과정도 생생했다. 2008년 이렇게 피 튀기는 드라마가 인기다. 그러니까 지금은 정의감 강하고 실력까지 겸비한 의사의 시대인 것이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돈도 잘 번다고, 의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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