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체력과 명예, 재력까지 갖춘 61세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현장 </font>
▣ 에든버러(스코틀랜드)=글·사진 우연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장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신생 축제들도 문제지만, 지역에 자리잡은 고령화된 축제의 리모델링은 어떻게 가능할까? 즉, 현재의 관객들, 현대의 문화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꼰대’ 취급을 받는 정체된 축제들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국내 축제기획자들과 종종 고민하던 문제들을 이곳, 스코틀랜드의 고도 에든버러에 와서 새삼 떠올리는 이유는 환갑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청춘의 인기를 구가하는 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font color="#216B9C">△2005,2006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성공신화를 이룬 제작진의 신작 (국내에서는 으로 공연) 공연팀은 에든버러 축제 현장에서도 유경험자로서 가장 숙련되고 단합된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거북이 등짝처럼 홍보물을 부착한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비보이들의 행진은 단연 눈에 띄었다. 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주공연장인 어셈블리홀에서 8월4일 매진 기록을 세우는 등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은 등 현지 언론으로부터 최고 수준의 평점을 받았다. 등 비보이 공연이 잇따라 호평을 받으며 에든버러에 한국 비보이 열풍이 불고 있다.</font>
1만8626명이 2050편의 작품 공연해
올해로 61회를 맞는 ‘에든버러 프린지’는 체력도 정신도 허약해진 꼰대 취급을 받기는커녕, 여전히 지나치게 생기발랄하다. 1947년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본행사에 초청되지 못한 8개의 공연단체가 자체적으로 주변부 공연을 시작하면서 출발한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전세계에서 총 1만8626명의 공연자가 참가해, 250개의 공연장에서 총 2050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말하자면 마이너리그에서 출발해 메이저리그를 뛰어넘어버린, 숫자로 증명되는 체력 증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세계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더불어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할 국제 축제 필수과목으로 여기고 있으니, 국경을 초월한 명예도 지니게 됐다. 단지 명예뿐일까? 2006년 축제 당시 전체 공연 티켓 판매량은 153만1606장으로, 10년 전인 1996년의 티켓 판매량 73만4508장보다 108% 증가했다. 매년 에든버러에서 개최되는 모든 축제 시장의 75%를 점유하는 에든버러 프린지는 에든버러와 스코틀랜드에 연간 약 7500만파운드(1400여 억원)의 수입까지 창출하고 있으니 환갑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이 축제는 체력, 명예와 함께 재력까지 겸비한 셈이다.
그렇다면 체력과 명예, 재력까지 겸비했으니,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아쉬울 것이 없을까? 예상과는 달리, 지난 8년간 장기 집권한 폴 거진 예술감독의 뒤를 이어 올해 새로 부임한 에든버러 프린지 예술감독 존 모건은 축제 초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축제의 변화와 경각심이 필요하다며 ‘프린지의 경고’를 주장하고 있다.
<font color="#216B9C">△축제 D-3, 8월2일 오전 11시 에든버러 포인트 호텔 컨퍼런스 센터에서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한국 전통의 고사가 열렸다. 영국 현지에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국 공연단체를 소개하는 독특한 형식의 기자간담회였다. 올해 새로 부임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존 모건 예술감독과 프린지 사무국 스태프 등이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전통 고사에 함께 참여했다. 존 모건 감독이 등의 공연을 앞둔 한국 공연팀들과 함께 고사상에 술을 올리는 모습. 〈BBC 스코틀랜드 방송〉 등 현지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font>
그의 걱정은 국제적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에든버러 코미디 페스티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세월 동안 공룡처럼 양적·경제적으로 팽창한 이 축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가 작품의 27% 이상을 코미디 장르가 점령하고 있다. 대관만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참여가 가능한 프린지 공연의 속성상 특별한 무대장치나 프로덕션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더라도 입담과 몸 개그만으로도 프린지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코미디 장르가 득세할 수 있었고, 웃기를 작정하고 몰려든 전세계의 축제 관객들도 코미디 장르를 쉽게 선호했다. 마치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들이 밀려나고 개그 프로그램들이 성행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코미디 장르에 비해 창작과 감상에의 피로감이 높고, 작품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무용, 연극 같은 기초예술 분야가 코미디 장르와의 경쟁관계 속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소외되고, 심지어 프린지 페스티벌 참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존 모건은 스코틀랜드예술위원회와 잉글랜드예술위원회가 에든버러의 호텔이나 공연장에 돌아가는 축제의 부가적 이윤에만 관심을 표명할 것이 아니라, 프린지에서 공연되는 연극과 무용 작품을 독려하기 위한, 예술가를 위한 공공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기 첫해의 단추를 풀고 있다. 현장 프로듀서 출신 신임 예술감독의 단독 출연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상업화 경향이나 실험적 프린지 정신의 실추와 같은 문제들이 쉽게 일소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린지 정신의 허약함을 채워야 한다는 자기반성적 문제 제기나 축제 콘텐츠의 새로운 질적 강화를 외치며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도 축제를 통해 점프!
1999년 , 2005·2006년 와 극단 ‘여행자’의 에든버러 프린지 입성을 통한 성공적인 해외 진출 성과로 한국 공연예술 단체들의 이 축제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증대했다.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단체는 12개로 2006년 6개였던 것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에든버러 프린지가 해외 진출의 발판이자 거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축제’이자, 공연 작품을 사러오는 세계 각국의 프로모터들을 만날 수 있는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만남’과 ‘교류’라는 따뜻한 단어도 존재하지만, ‘전략’ ‘협상’ ‘경쟁’이라는 영악한 단어 또한 매몰차게 공존한다.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했던 경험자들이 입을 모아 ‘한 달 동안의 끔찍한 전쟁’ ‘치밀한 준비 없이는 떠날 수 없는 축제’라고 살벌한 표현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초청 조건에 따라 떠나는 다른 페스티벌과는 달리, 축제 참여부터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에든버러 프린지는 A부터 Z까지 참가 단체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font color="#216B9C">△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역대 국내 공연단체 중에서 최초로 문화마을 들소리가 야외공연을 시도했다. 공연장인 올드 컬리지 극장은 한국 전통 타악 리듬에 취한 관객들로 연일 가득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함께 로열마일 거리까지 강강술래 등을 하며 관객의 참여를 끌어냈다.</font>
올해에는 문화관광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에든버러 진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에든버러 축제현장에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현지종합지원센터(Korea@Fringe office)가 운영되고 있다. 아직까지 국제교류 노하우가 부족한 한국 공연예술 단체들의 홍보, 마케팅, 프로모션, 행정에 이르는 다각적인 지원과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현재 에든버러에 진출한 단체들의 들락거림으로 지원센터의 일상은 분주하다. 거리홍보에 적합한 장소를 알려달라는 요청에서부터 현지 에이전트와의 난이도 높은 법률적 문제 상담에 이르기까지 컨설팅 요구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 지원센터 운영을 통해 파악한 상당수 한국 공연예술 단체의 해외 진출 준비 수준은 여전히 미약하다. 우리 공연예술 단체들의 해외 진출을 향한 욕망과 국제 공연예술 시장이 요구하는 필수적인 교류 노하우 사이에는 아직까지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든버러에 왜 왔는가?’라는 질문에 “한번 경험하고 싶어서” 또는 “에든버러 프린지 참가라는 프로필이 늘어나니까”라는 사치스러운 대답을 하기에는 이 축제에 지불해야 하는 참가 수업료가 너무 비싸다.
환상은 버리고 자유로운 축제 속으로
그럼에도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한 한국 공연예술 단체들 중 탄탄한 해외 진출 사전준비 체계를 갖춘 단체들의 초반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다.
<font color="#216B9C">△올해 페스티벌에는 250여 개의 공연장에서 2050개의 작품이 막을 올린다. 공연장은 원래 극장이었던 장소는 드물고 교회, 학교, 바(술집)를 개조한 곳이 많다. 공연장소(VENUE)에는 개관한 순서대로 번호가 붙는다. 숫자가 낮을수록 오래된 극장임을 뜻한다.</font>
‘점프 제작진의 새로운 쇼’라는 타이틀로 에든버러 프린지의 성공 노하우를 활용하며 참가하고 있는 (주)예감의 은 에든버러 프린지의 주 공연장인 어셈블리홀의 주말 매진 기록을 세우며 순항 중이다. (주)솔강의 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의 공연과 에든버러 필름 페스티벌에서의 비보이 영화 상영을 연계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현지 언론과 관객들 사이에서 한국 비보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예술성과 실험성을 고집하는 오로라노바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은 등 현지 언론과 평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8월11일 ‘더 헤럴드 에인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헤럴드 어워드는 축제 기간 중 매주 의 평론가들이 모여 가장 뛰어난 작품, 배우, 프로듀서를 선정해 시상하는 상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역대 국내 단체 중 첫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성공이 예감되는 이 단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에든버러 프린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축제의 장이지만, 그래서 누구나 주목받을 수 없는 시장의 제약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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