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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적의 눈에 비친 서양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언 바루마와 아비샤이 마갤릿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책은 1942년 7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 얘기로 시작한다. 일본이 진주만의 미군 함대를 폭격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낸 지 7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회의의 주제는 ‘어떻게 근대를 극복할 것인가?’였다. ‘근대=서양’이었다. 참석자들은 서양에 대한 공격에 환호했다.

‘서양의 적의 눈에 비친 서양’이라는 부제를 단 책, 은 “서양의 적대자들이 서양을 비인간적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옥시덴탈리즘”을 단순히 이슬람의 특이한 문제로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 이언 바루마와 아비샤이 마갤릿은 교토회의 참가자들이 “19세기 등장한 산업화, 자본주의 그리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대적인 악의 뿌리로 지목했다. ‘기계 문명’이니 ‘친미주의’니 하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들먹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책은 반서양주의의 편견을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다. 옥시덴탈리즘은 유럽에서 먼저 발생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고 결론 내린다. 교토회의 참가자들의 모델이 된 것은 유럽, 특히 독일이다.

2002년 9·11 테러로 뉴욕 맨해튼 섬 아래쪽에 우뚝 서 있는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다. 오사미 빈 라덴은 “미국이 대변하던 서양 문명의 가치는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옥시덴탈리스트의 반도시적 ‘편견’은 근대에 와서 독일의 바그너-테오도어 폰타네-프리드리히 엥겔스-사이드 쿠트브-마오쩌둥-크메르루주-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로 이어지고, 공유된다. 크메르루주에 프놈펜은 악이자 불순함의 상징이었고, 자본주의적이고 인종이 뒤섞이고 식민주의와 타협한 곳으로 복수의 대상이자 동시에 순수성과 미덕을 복원시킬 대상이었다.

“상점주와 상인의 나라인 영국과 공화국 프랑스는 ‘서구 문명’ ‘1789년의 이념’ ‘상업적 가치’를 대변하는 반면, 영웅의 나라인 독일은 더 높은 이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 독일의 저명한 사회 과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가 쓴 이란 책의 첫 부분이다. “영웅적인 죽음을 인간의 가장 고귀한 열정”으로 보는 독일 옥시덴탈리스트들의 죽음 숭배는 일본의 가미카제 조종사와 이슬람 형제회, 헤즈볼라에 영향을 줬다.

옥시덴탈리스트들은 서구 정신을 “영혼이 없는 계산기처럼, 능률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데 무의미하다”고 본다. 서구 정신에 대립되는 러시아 정신이 있고, 러시아 슬라브주의자들은 독일의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낭만주의 정치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과거는 예전의 조화, 즉 통일성을 복원하는 작업에서 하나의 모델로 작용한다. 인간의 의지가 이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상으로 나타난 옥시덴탈리즘은 니체를 비롯한 도스토예프스키에 빚지고 있다.

옥시덴탈리즘의 관점에서 서양은 물질을 숭배한다. 마니교 교리에서 물질은 악이다. 물질이라는 허구의 신을 숭배하는 서양은 악의 왕국이 되고, 선의 왕국까지 식민지로 만들어 그 독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인 급진적 이슬람이 타도하려는 주된 목표이자 종교적 옥시덴탈리즘의 핵심인 신자힐리야의 원천이자 우상 숭배의 온상은 바로 서양이다.

옥시덴탈리즘은 그 반쪽인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린다. 책은 오리엔탈리즘이 타자인 비서구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환원하는 것처럼 옥시덴탈리즘의 편협성을 꼬집는다. 옥시덴탈리즘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이슬람에 불관용으로 대처한다면 서양 또한 나쁜 사상의 오염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마니교적 또는 (새뮤얼 헌팅턴)식의 사고방식은 거부돼야 한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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