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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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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필요한 당신, 광고를 보라

등록 2007-01-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예전보다 간결한 구성에 메시지를 실은 리얼리티 기업 광고들…SKT ‘사람을 향합니다’ 현대그룹 ‘등대’편 등 광고주도 과감해져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아무래도 감동이 필요한 모양이다. 시절이 어려워서인지, 계절이 연말연시라서인지 재미를 주는 광고보다는 감동을 주는 광고가 울림을 얻는다. 더구나 요즘 들어 방송 광고(TV CF)가 예전보다 간결해지면서 진화하는 가운데, 몇 편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간결한 구성으로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기업 이미지 광고들이 등장했다. SK텔레콤의 캠페인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의 ‘영웅’ 편은 국내 최대 광고 포털인 ‘TV CF’(tvcf.co.kr)에서 지난해 11월의 ‘인기 CF’로 뽑혔다. ‘영웅’ 편은 흑백 사진 속 갓난아이를 안은 어머니에게 ‘원더우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어서 여동생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꼬마의 사진 위로 ‘아톰’, 부인을 업은 노인의 사진 위로 ‘육백만불의 사나이’라는 자막이 얹힌다. 그리고 쓰러지려는 지하철을 힘 모아 밀어올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마침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영웅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SK텔레콤 로고와 함께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카피로 마무리. 이렇게 ‘영웅’ 편은 말하지 않고도 할 말을 한다.

‘영웅’ 편의 후속인 ‘상’(賞) 편도 같은 사이트에서 1월의 인기 CF 3위에 올라 있다(2007년 1월4일 기준). ‘상’ 편도 ‘영웅’ 편과 사진과 카피가 다를 뿐 구성과 메시지는 비슷하다. 역시나 흑백 사진 위로 자막이 얹히는 구성이다. 거리를 쓰는 청소부 아저씨 위로 ‘대한민국 남우조연상’,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위로 ‘대한민국 베스트드레서’, 주름 파인 노년 부부의 얼굴 위로 ‘대한민국 공로상’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께 이 상을 드립니다”라는 카피로 마무리된다.

홍승진 SK텔레콤 홍보실 매니저는 “연말의 각종 시상식 분위기를 살리는 후속편으로 계절감을 살렸다”며 “내년에도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는 2006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TV CF’에는 3주 연속 1위를 받거나 종합 5주 동안 1위에 오른 광고만을 모아놓은 ‘명예의 전당’이 있다.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한 평가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명예의 전당’에는 2006년 5편이 등재됐다. 그 가운데 2편이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였다. 기업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광고로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홍승진 매니저는 “사실 이전의 기업광고였던 ‘투모로우 팩토리’에는 기업의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돼 있었다”며 “기업 입장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광고를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광고가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평가했다.

‘광고주 마인드’ 따라 변화한 광고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 중 ‘여보세요’ 편은 한국산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광고 전략을 보여준다. ‘여보세요’ 편은 백인 할아버지의 “헬로”로 시작해서 차도르를 쓴 여인의 “알로”를 거쳐서 한국인의 “여보세요”로 끝난다. 글로벌 기업, SK텔레콤의 이미지를 전화 인사말로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다. 포스코가 네팔 마을의 어린이들을 비추고, 삼성그룹이 베트남에 초등학교를 지어준다는 광고와 동일한 맥락이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는 SK텔레콤만의 기업광고와 문화방송과 공동으로 벌이는 공익광고 캠페인 두 가지로 진행됐다. 두 광고는 2005년 연말부터 각각 5~6편씩 전파를 탔다. 홍승진 매니저는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메시지가 심플한 좋은 광고를 선택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며 “사실 ‘사람을 향합니다’ 광고도 일종의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광고가 변하는 배경에는 ‘광고주 마인드’의 변화가 있다. 예전에도 간결한 광고 시안은 있었지만, 선택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이 문화방송과 공동으로 벌이는 캠페인은 공익광고로 분류돼 35초 분량으로 제작됐다. 지상파 상업광고가 숙명처럼 짊어진 15초의 제약이 풀리면서 크리에이티브의 깊이도 생겼다. 광고계에서는 한국 방송광고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약으로 15초의 한계를 꼽는다. 15초로는 도저히 내러티브도, 흥미로운 반전도 어렵다는 것이다.

새해의 인기 광고로 떠오른 비씨카드 기업광고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먼저 양희은이 익숙한 목소리로 “네 꿈을 펼쳐라”고 노래하는 가운데, 여자 프로복서 이인영씨 모습이 나온다. 이어서 ‘프로복서 데뷰 33세’라는 자막이 뜬다. 카피라이터 최윤희씨가 일하는 모습이 나오고 ‘카피라이터 신입사원 38세’, 탤런트 이계인씨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첫 번째 팬미팅 55세’라는 자막이 뜬다. 내레이션 “네 꿈을 펼쳐라”로 마무리된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이룬 늦깎이들이다. 비록 유명인을 썼지만, 이른바 ‘빅 모델’은 아니다. 현재 비씨카드 모델인 이다혜씨도 이 광고에서는 배제됐다. 박상진 비씨카드 홍보실 차장은 “연말연시 광고를 만들면서 기존 모델을 쓸지를 고민했다”며 “메시지를 위해서 모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비씨카드 광고에서 주목할 만한 코드는 ‘나이’다. 아직도 인종적·계급적 구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에게 나이는 집단을 구분하는 가장 친숙한 프리즘이다. 그래서 비씨카드 광고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전시하고, SK텔레콤 광고는 나이로 사람(모델)을 구분한다. 아기, 소년, 엄마, 노부부, 이렇게 나이로 구분된 세대가 한국인을 재현하는 정석이다. 그래야 감정이입이 쉬워진다. 이렇게 한국의 광고는 나이로 구분된 계층을 아울러 국민의 이미지를 만들고, ‘우리는 영웅들’이라는 감동을 연출한다.

15초간 등대만 비추는 광고까지…

최근에 감동으로 소구하는 기업 이미지 광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현실감 나는 (동영상이 아니라) 흑백 사진을 사용한다. 사진 속 인물은 되도록 일반인 (같은) 모델을 쓴다. 공감대를 확장하는 전략이다. 정지된 사진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정지된 사진에 붙는 음악은 감동을 유발한다. 배경음악으로는 ‘국민가요’ 혹은 ‘국민팝송’을 깔아준다. 때때로 일반인의 목소리로 유명한 노래를 부른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에는 다양한 목소리로 변주된 비틀스의 (Let It Be)가 일관된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결국은 사진과 음악이 노리는 효과는 ‘리얼리티’다. 이렇게 장기적 경기 침체의 분위기에서 정서를 자극하는 ‘리얼리티 기업광고’가 늘고 있다. 물론 SK텔레콤, 비씨카드의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느긋한’ 광고에는 업계 1위 브랜드라는 여유로운 입장이 반영됐다.

이제는 리얼리티를 살리는 광고를 넘어서 리얼리티를 그대로 가져오는 광고도 있다. 2006년 연말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동양생명의 ‘윤선아, 변희철 부부’ 편은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광고로 옮겼다. 안기만 해도 “계란 껍질처럼 뼈가 부서지는 병”인 골성형 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윤선아씨와 비장애인인 변희철씨의 연애담이 그대로 광고에 담겼다. 마치 이들의 이야기는 일본 영화 의 주인공들을, 영국 영화 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사연도 역시 흑백 사진으로 재현된다. KTF의 ‘0.3초의 진실’ 편은 지하철에 뛰어들어 용감하게 아이를 구한 고교생의 실화를 광고로 옮겼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잡힌 고교생이 지하철이 다가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는 장면이 그대로 보여지고, 간단한 카피만 붙는 내용이다. 이 광고는 ‘KTF적인 생각’ 시리즈 중 유일하게 ‘TV CF’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지난해 황정민의 겸손한 영화제 수상 소감을 광고로 옮긴 우리투자증권의 광고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리얼리티 기업광고는 새삼스러운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현대그룹 광고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파도 치는 바다 너머로 등대가 보인다. 무려 ‘15초 가까이’ 아무런 카피도, 자막도 없이 등대만 반짝인다. 마침내 마지막 순간, ‘내일을 믿습니다’라는 자막에 이어 ‘현대’의 로고가 뜬다. 파도 소리 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제된 광고다. 현대그룹 광고를 제작한 광고회사 ISMG의 강준구 차장(광고기획)은 “현대그룹에 대한 말들이 많은 상황에서 어떤 얘기를 해도 시빗거리만 제공하지 않느냐”며 “그래서 광고의 콘셉트가 ‘무언’이었다”고 설명했다. 오직 등대를 통해서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등대’ 편에 이어서 ‘대나무숲’ 편이 전파를 타고 있지만, 역시나 화면에는 하늘로 뻗은 대나무만 보이고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강 차장은 “원래 광고주에게 가져간 시안 8개 중 1개였다”며 “사실 우리조차도 광고주가 이 안을 선택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광고에 네티즌들은 “광고를 만든 사람도 대단하지만 광고를 선택한 광고주는 더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고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광고를 선택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광고도 전파를 타지 못하면 죽은 광고일 뿐이다. 이렇게 광고의 수준은 광고주가 결정한다. 광고가 세련되어지는 진리는 이토록 심플하다. 참, 가상현실이 대세를 장악한 시대에 리얼리티 광고에 공감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래도 여전히 현실의 고통은 끈질긴 탓일까.



촌스런 공익광고는 잊어주길 바래

설립 25돌 맞아 크리에이티브 강화한 공익광고협의회




어느 날 광고를 보면서 ‘사회가 변하긴 변했군’이라고 생각했다. 문화관광부,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한국방송과 공동으로 만든 공익광고 ‘스포츠 7330’을 보면서 그랬다. 여전히 촌티가 흐르는 고전적인 공익광고였지만,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7330)을 하라는 광고를 보면서, 이제는 운동하라고 광고도 하는군, 조금은 감개무량했다. 또 다른 어느 날, 정신병력(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정신보건 캠페인’,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공익광고를 보면서 ‘변했군’ 하고 느꼈다. 두 광고가 충분히 인권친화적인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공익광고는 이렇게 다양해졌다.
한국 공익광고 역사를 상징하는 공익광고협의회가 올해로 설립 25돌을 맞았다. 20년 넘게 좀체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공익광고가 지난 몇 해 동안 계속 진화하고 있다. 광고의 다양성뿐 아니라 광고의 질도 높아졌다. 지난해 하반기에 전파를 탔던 ‘공공 에티켓’ 광고는 공익광고의 진화를 상징한다. 초등학교를 다닌 국민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참 잘했어요’ 도장에 들어간 그림을 변용해 공공 에티켓 준수를 강조한 광고는 간결한 비주얼로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흔히 지하철에서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 ‘쩍벌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지적도 담아서 메시지의 현재성도 살려냈다. 또 2005년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보건복지부의 금연 캠페인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진화의 비결은 제작 환경의 변화에서 나왔다. 정찬수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팀 차장은 “외부의 간섭이나 요청이 배제되는 상황에서 공익광고협의회가 독립적으로 주제나 크리에이티브를 선정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고 전했다. 그는 또 “광고 실무 경험이 풍부한 협의회 위원들이 크리에이티브를 선택하고 광고안을 심의하기 때문에 수준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게다가 공익광고는 시간의 제약이 비교적 덜해서 창작 역량을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된다. 정 차장은 “공개 경쟁에 참여하는 대행사와 프로덕션이 늘면서 크리에이티브 수준도 올라갔다”고 전했다. 이렇게 만드는 사람의 변화는 보는 광고의 변화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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