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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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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라, 팔리리라

등록 2006-07-06 00:00 수정 2020-05-02 04:24

월드컵을 맞아 더 노골적이고 전략적으로 ‘노출’이 이용되는 시대… 먼로에서 베컴까지, 시대의 욕망과 알몸의 주체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 나지언 피처 에디터

‘노출 월드컵’이라고 한다. 월드컵 마케팅부터 월드컵을 즐기는 태도까지 노출이라는 꼬리표는 옷에서 아직 떼어내지 않은 상표처럼 줄곧 우리를 어색하게 따라다녔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팔아야 하는 모든 것에는 ‘노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벗어야 잘 팔리고, 벗어서 화제가 된다. 노출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팔고자 했을까.

아, 이왕이면 짧은 다홍치마…

월드컵이라고 해서 땀으로 뒤범벅된 셔츠를 훌렁 훌렁 벗어 던지는 축구 선수들이 화제를 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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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카카가 벌써 결혼해 아름다운 아내를 두어서인지 그들에게 향할 주목은 남발된 옐로 카드로 인한 경기 집중도의 저하와 함께 여기저기 분산되어 흩어졌다. 화제는 TV 브라운관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그리고 모바일에서 나왔다. 길거리에 응원을 하러 나온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 방식이란 최소한 천을 덜 사용하는 것이다. 평소에 학교 갈 때나 직장에 갈 때는 엄두도 못 내던 과감한 옷들을 그녀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나’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노출은 내 이야기를 끄적거리는 블로그에 ‘새 글 업데이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녀들이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노출’이라는 방식을 자연스레 이용하기 시작했다면, 좀더 상업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인 가수들이나 예비 스타들이 월드컵 응원 모바일 영상을 위해 작은 천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제 오늘 일이냐고 묻는다면 어제 오늘 일 맞다고 하겠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노골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노출’이 이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앞다퉈 진단을 내리는 언론과 네티즌들의 말씀은 두 가지였다. 노출을 이용한 께름칙한 이슈화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 그리고 노출도 하나의 개성 표현이니 내버려두자는 무관심한 호응이다. 월드컵으로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노출’은 자본주의 사회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그건 특히 무엇인가를 팔아야 하는 시장에서 단연 이목을 집중시킨다. 옷을 고르고 있는 여자에게 “볼 게 있어야 야하지”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한 음료수 광고처럼 ‘노출’은 팔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특히, 대중의 시선을 월급처럼 먹고 사는 유명 인사들은 팔아야 할 게 단지 음료수만은 아니었다.
일찍이 ‘섹스 심벌’의 대명사이자 보통명사이자 동의어인 마릴린 먼로는 지하철 환기통에서 올라오는 바람 때문에 치마가 뒤집힐 뻔한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그녀 덕분에 고층빌딩 사이 좁은 길에서 일어나는 난기류로 여성의 스커트가 갑자기 뒤집히는 경우를 ‘먼로 효과’라고 부른다는데, 먼로 효과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 처럼 7년에 한 번씩도 보기 힘든 노출의 순간이다. 대신 할리우드 배우들은 우연한 바람이 이제나 저제나 불어올까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의 노출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판 6월호 표지에 나온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마릴린 먼로의 유명한 포즈를 그대로 모방한 사진으로 화제를 모았다. 금발에 빨간 립스틱, 그리고 하얀 베개가 걸친 것의 전부가 된 사연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새 음반 홍보 때문이다. 노출증 환자라는 등 워낙 말이 많았던 아길레라는 이참에 그녀를 둘러싼 모든 수다를 더 거대한 이슈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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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공사는 바로 당당한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었다. 이미 제시카 알바가 개봉을 앞두고 마릴린 먼로와 비슷한 콘셉트로 팬티 한 장 걸친 채 침대에서 뒹군 전적이 있긴 하지만, 아길레라의 노출은 더 선정적이고 더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네티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신이 새 영화나 새 음반의 홍보를 앞두고 있다면, 잡지 커버에 나와 무조건 벗어라”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다리털로 자신을 증명한 여배우

노출을 둘러싼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노출 역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면서 다시 반복 재생된다. 우아하고 섹시하게 자신의 살들을 가감 없이 노출했던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아길레라를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끊임없이 차용하고 있듯이 말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마릴린 먼로의 노출 사진을 자주 베끼는 건 그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나를 사람이라기보다 일종의 거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란한 생각을 보았다. 그러고는 나더러 음란하다고 하고 자신은 하얀 가면을 써버린다.”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에서 스타들이 진정으로 차용하려고 하는 것은, ‘난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다. 난 당당하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그 노출 안에는 그들을 둘러싼 대중의 이중적 시선을 조롱하려는 불온함까지 내포하고 있다, 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 안에는 훔쳐보려는 대중의 욕망과 시선을 이용하려는 스타의 속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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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음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온갖 가식과 겉치레를 한 꺼풀 벗겨내려고 했던 스타가 있었다. 지난 2월 잡지 커버에 아주 간단하게(?) 입고 등장한 린제이 로한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주근깨를 당당히 드러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드러낸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었다. 표지 문구는 이랬다.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알지만 인정할 순 없었어요.” 린제이 로한은 인터뷰에서 약물에 손을 댄 적이 있으며 섭식 장애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섹시 스타 이미지를 위해 단순히 옷을 벗은 게 아니었다. 해변에서 카메라에 등을 보인 채 주근깨로 뒤덮인 온몸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니 오히려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는 발언과 함께 솔직하고 당당한 10대 스타의 건강한 모습을 대변했다. 전략적인 기획이라 말할 수도 있다. 사실 그녀는 가슴을 팔로 가린 채 에 등장한 패리스 힐튼 사진을 보고 자신도 벗고 찍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것은 치기와 욕심과 열망의 결과이기도 했다. 어차피 노출이란 자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겠다는, 그럼으로써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와 욕망과 계산의 총합이다. 인터뷰 이후, 린제이 로한은 태도를 바꿔 자신은 약물 중독이니 섭식 장애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옷을 다시 입은 그녀는 사람들이 떠들어댈 말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말보다 강한 것은, 그녀의 몸이었다. 인터뷰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의 몸은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누군지.
한편 다리털로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한 여배우도 있었다. 디자이너 톰 포드의 기획 아래 알몸으로 잡지 표지를 장식한 스칼렛 요한슨은 다리털을 밀지 않은 채로 촬영장에 나타났다. 함께 누드를 찍은 키라 나이틀리는 그 모습이 오히려 부러웠던지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리털 따위가 무슨 대수냐라고 생각한 스칼렛 요한슨은 40억원을 챙길 수 있는 섹시한 콘셉트의 광고 사진은 거절하고, 아무것도 입지 않고 드러누워 있는 잡지 표지 사진은 흔쾌히 수락한 배우다. 영리한 그녀는 대중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출에 대해 대중은 꽤 폭력적인 시선을 가진다. 그것은 입은 자의 폭력이다. 벗은 자에 대한 시시콜콜한 품평부터 ‘못생긴 자들은 벗지도 말라’는 미추에 대한 단언까지 입은 자들은 언제나 우위의 고지에 있다. 스칼렛 요한슨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표지는 찍고 속옷을 입고 표지를 촬영하자는 남성지 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그런 대중의 시선을 우려한 자신만의 계산 때문이다.

백혈병 퇴치 자선기금과 누드 달력

노출은 판타지다. 벗었다고 모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아니다. 여고 앞 터줏대감 바바리맨처럼 ‘벗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즐거운 판타지가 아니라 잔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진실이 되려는 순간, 벗은 몸은 주목받는다. 일명 ‘캘린더 걸스’는 벗은 이후로 언론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사, 찰스 왕세자 부부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들의 이야기는, 백혈병 퇴치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의 아줌마들이 모여 누드 달력을 만들었던 사건이다. 그들이 터트린 노출 사건으로 인해 영국의 요크대학에는 백혈병 연구소가 설립됐다. 노출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아는 아줌마들이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잡지 표지에 벌거벗은 채로 등장한 ‘세기의 노출’ 역시 그들이 표방하는 평화 운동에 대한 화제몰이로 적절했다. 그들은 모두 노출의 이슈화를 통해 진실을 드러내길 희망했다.
노출은 예술이고 욕망이고 도덕이고 해프닝이고 판타지고 시대다. 안젤리나 졸리가 잡지 에서 엉덩이의 문신을 드러낸 채 등장했을 때 그것은 예술임과 동시에 여배우와 여자로서 안젤리나 졸리의 욕망이다. 편집장이 졸리의 엉덩이를 가리려고 했으나 디자이너이자 그 페이지의 총 디렉터를 맡은 톰 포드의 만류로 그대로 싣게 됐을 때 그것은 시대의 욕망이 됐다. 축구 선수들이 반칙과 옐로 카드와 몸싸움으로 팽팽했던 90분을 달린 후 셔츠를 교환하는 노출의 순간은 몸을 쓰는 자들의 규칙이자 도덕이다. 데이비드 베컴과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훌훌 웃통을 벗어 던지고 잡지에 등장한 것은, 시대의 욕망과 노출의 주체가 달라졌다는 표식이다. 자넷 잭슨과 소피 마르소가 무대 위와 레드 카펫 위에서 실수로 가슴을 노출했을 때 그것은 해프닝이자 이슈였지만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이 나스타샤 킨스키의 가슴을 노출한 사진을 찍었을 때 그것은 전복이자 혁명이자 예술이 됐다. 광고의 빈번해진 노출은 판매 전략인 동시에 시대의 반영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한 가지 진실은, 시커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노출은 베스트셀러가 되긴 힘들다는 것이다. 자, 벗어라. 모든 걸 벗고 났을 때 드러나는 게 진짜 그들이 팔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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