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주방의 민주주의, 폐미닌 부스!

등록 2006-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평면 꺾기와 중문 설치로 거실과 차단된 아파트 주방은 이제 그만
조명·소파·수납공간으로 안락하고 열린 느낌 주면 온 가족 중심 공간

▣ 김주원/ (주)이몽기가 대표·소장 jwkim@imgg.co.kr

어렸을 때,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늘 엄마는 외동딸인 나를 주방으로 불러들여 수저며 반찬 그릇 등을 식탁에 가지런히 준비해줄 것을 부탁하곤 하셨다. 물론 나의 두 오빠들과 간혹 일찍 들어오셨던 아버지는 거실이나 각자의 방에서 예의 “밥들 먹자!”라는 엄마의 부름을 기다린다. 그렇게 맛난 저녁은 준비됐고, 다 차려진 상에 둘러앉아 우린 즐거이 식사를 마쳤다.

광고

다시 남자들은 일어나고, 엄마와 나는 밥그릇들이며 수저, 물컵들을 싱크대로 나르고 반찬들을 정리해 냉장고에 넣는다. 내 임무는 거기까지였다. 거실로 돌아간다. 엄마는 다시 싱크대로 돌아서서 가득 쌓인 설거지를 재빨리 해치웠고, 그런 다음 주방을 밝혔던 불은 꺼지고 엄마는 그제야 거실로 나오셔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들의 짝은 나중에 내게 고마워하겠지

광고

비교적 아들 딸 구분 않던 가풍을 가진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엄마에게 불평을 터뜨리곤 했다. “왜 오빠들에겐 이런 주방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 거죠?” “남자들은 손이 무뎌서 이런 일 잘 못해. 네가 잘하잖니? 엄만 네가 도와줘서 참 고마워하고 있단다.” 난 엄마의 은근히 두둔하는 말에 별다른 반박도 못했지만, 내심 불만이었다. 그리고 엄마를 조금 의심하기도 했다. 가끔 들을 수 있는 ‘사내녀석이 주방에 들락거리면 큰일을 못해’라는 식의 금기를 엄마 역시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철든 뒤 그렇게 십수 년을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보냈다. 이제 나는 새로 갖게 된 나만의 주방을 사랑한다. 굳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소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주방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젠 제법 철도 들고 손도 야물어진 여덟 살 난 아들녀석도 내가 있는 주방을 좋아한다. 주방을 좋아하는 건지, 아직은 엄마가 너무 좋은 나이여서 그런 건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녀석은 나와 함께 요리도 하고, 예전에 내가 그랬듯 심부름도 곧잘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 부엌이 녀석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하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디자이너다. 이 문제를 곰곰이 ‘공간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의 아파트 주방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주방의 바람직한 대안에 대해서.

광고

내가 고안한 것은 주방이 복합생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공간 세팅이다.

‘페미닌 부스’라 이름 붙인 이 공간에 투사한 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녀석은 이팔청춘이 되더라도 주방을 떠나지 않고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숙제도 하고, 하루 일을 재잘거리며 음악도 들을 테고, 요리하는 기쁨도 함께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면 그곳으로 제 짝을 데려올 테고, 그녀는 아들녀석의 민주적 가족주의라는 덕목을 키워낸 것이 다름 아닌 나의 고안, 이 자그마한 페미닌 부스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페미닌 부스의 구성요소를 꼽아보면 아래와 같다.

등 돌리기 이제 그만… 열린 작업대 어떨까

1. 여기는 특별한 곳, 공간의 경계를 형성하는 장치들: 이곳은 아주 특별한 장소이며, 그것을 표시할 수 있는 경계장치들을 마련한다. 부스 스타일의 소파(패밀리 레스토랑의 좌석을 생각하면 된다)를 놓고, 주방과의 사이에는 다목적 아일랜드형 홈바를 설치한다. 소파 상부에는 천장을 한 단 내려오게 해 이 장치들이 한정하고 있는 바닥 영역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내림천장에는 광원의 색이 다른 조명(이를테면 할로겐등)을 써서, 다시 한 번 이 공간의 영역을 빛 뭉치로 강조할 수 있다.

2.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공간, 안락함: 밥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보여줘야 한다. 소파는 안락한 스타일로 마련하되, 높이는 반대쪽에 놓여지는 가벼운 식탁 의자의 일반적 높이를 맞춘다. 멍하니 이 공간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평상시 식탁 위에 펼쳐두고 하던 작업이 식사 시간에는 잠깐 동안, 그것도 순식간에 사라져줘야겠다. 이를 위해 고안된 오픈 수납함이 달린 식탁.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펼쳐진 그대로 잠깐 밑으로 넣으면 그만이다. 감쪽같다. 차 한잔 하려 해도, 어쩐지 부엌데기 같아 거실로 찻잔을 들고 나오던 버릇이 있다. 주방에서 아일랜드형 보조작업대로 사용하던 일명 페미닌 라인은 부스 쪽에서 보면 근사한 홈바다. 여기저기 집주인의 손때를 묻힐 수 있다.

3. ㄷ자 작업대 배치와 전략적 공간 활용: 주방가구는 벽을 따라 배치되게 마련이어서 가사 작업자는 언제나 가족에게 등을 보이게 된다. 아일랜드형 작업대는 주방과 페미닌 부스를 연계하는 구실을 하는데, 이 작업대를 통해 가족과 가사 작업자는 만나게 될 것이다. 작업의 행위 중 많은 부분이 거실을 향한 방향에서 이루어지며, 눈이 마주치는 만큼 가족의 가사 참여도는 자연스레 높아지지 않을까. 벽을 향해 뒤돌아서 있던 주방 공간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 보자.

디자인 키워드 ‘숨기지 말고 드러낼 것’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연희한양아파트, L교수댁. 페미닌 부스의 최초 발상자이며 나의 대학 은사이시기도 하다. 이곳에 처음으로 적용된 페미닌 부스의 전신은 주방과 거실 사이의 공간에 부스 소파를 놓으면서 마련됐다. 널찍한 주방의 가운데에는 2개로 분리될 수 있는 식탁 테이블이 놓여졌으며, 거실과는 아무런 심리적 장애도 없이 활짝 개방돼 소통하고 있다. 싱크대에 쓰인 인조대리석 상판으로 같이 마감된 식탁 하나는 쿡탑을 설치해 일상적인 가족의 식사를 돕도록 하고, 다른 하나는 소파 앞에 놓여 페미닌 부스의 작업공간 구실을 하도록 했다. 이 둘이 만나면 10명쯤의 식사는 거뜬히 치러낼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

디자인의 키워드는 ‘숨기지 말고 드러낼 것’이다. 주방공간을 가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모색돼왔다. 평면설계 때부터 한번 꺾어서 안 보이게 처리하기, 중문 달아서 막기, 하다못해 식당공간은 보이지만 싱크대가 있는 주방은 가리기- 한때 거실과 주방 사이에 중문을 달아 가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주방이 다시 주거의 중심으로 편입돼야 할 것이다. 안주인이 바쁘다면 더욱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고, 그래서 주방일에 쉽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주방에 있는 사람과 거실에 있는 사람이 공간적 영역감을 공유할 때 더욱 쉬워진다. 다시 말해, 주방문을 활짝 열어 어디가 거실인지 주방인지 분간이 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기능적·위생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똑같은 과정을 거쳐 뒷간이 주거공간의 내부로 들어오지 않았는가. 이 경우와 다른 점이라면 뒷간의 혜택은 남녀 공히 누렸을 터이고, 주방의 혜택은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남자와 손님을 주방으로 불러들여라

주방은 여성 전용 공간에서 이제 가족의 공동 공간으로, 가사 공간에서 휴식과 여유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드러내고 자랑하는 공간, 접대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페미닌 부스가 당당히 자리한 주방은 더 이상 여자만의 공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될 내밀한 남의 집 살림살이가 아니다. 페미닌 부스는 가족 내에서는 남자를 주방으로 끌어들이며, 사회적 관계에서는 주방으로 손님을 불러들일 것이다. 그래서 ‘거실은 남자공간, 양성적 공간, 사회적 공간이오, 주방은 여자 공간, 음성적 공간, 반사회적 공간’이라는 주거 공간에 통용되던 오랜 관행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면.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