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출판] 일본 지식인 ‘항복사’

등록 2005-08-2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전쟁기 ‘전향’의 원인을 일본 전통의 ‘쇄국성’에서 찾는 <전향></font>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IMAGE1%%]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전쟁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던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자들과 전쟁반대론자 지식인들이 일거에 ‘천황’의 발 앞에 엎드려 전쟁을 찬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대중문화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지식인 쓰루미 스케는 바로 이 ‘전향’이라는 코드를 통해 일본정신사를 꿰뚫어보려 한다. <전향>(최영호 옮김, 논형 펴냄)은 지은이가 1979년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한 강연을 정리해 엮은 책이다. 파란 눈의 이방인을 상대로 한 강연인 만큼, 일본사에 대한 지식이 엉성해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조근조근한 설명이 돋보인다.

전향의 대표적인 예가 1918년 도쿄대 학생들이 만든 ‘신인회’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입학시험과 이를 통해 서열화된 학교를 통해 사회를 조직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제도를 고안한다. 이 서열화 속에서 일단 도쿄대 선발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높은 관직이 보장되는 ‘선민’들이 등장하고, 이들 중 일부가 일본 사회의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신민회를 결성한다. 이 ‘미래의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사회주의로 급선회한다. 1933년 신민회 일원이었던 시노와 나베야마의 공동선언 이후, 전향이라는 단어가 그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전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전향하도록 했을까”이다. 지은이는 일본의 전통 속에 존재하는 ‘쇄국성’과 ‘열등감’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일본은 국경이 존재하지 않고, 역사상 이민족의 침입을 단 두번(몽골과 미국)밖에 받지 않은 나라다. 따라서 통일과 근대국가의 완성도 ‘그들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인 만큼 외국 선진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진문명을 끊임없이 추종하고 따라잡으려 애를 썼다.

일본 전통 속에 존재하는 이 두 요소가 전향에도 대입된다. 일부 지식인들이 일본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점에,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유기체처럼 똘똘 뭉친 이른바 ‘국체’를 바탕으로 서구 문명을 따라잡으려 기를 쓰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그 거대한 욕망에 편입돼갔던 것이다. 정부 지도자들은 일본인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전통이 돼 있던 쇄국성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쓰루미 스케는 지역을 막론하고 “국가의 강제력 행사의 결과로 개인 혹은 집단에서 발생하는 사상의 변화”인 전향이 일본에서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나 전향과 태평양전쟁의 원인을 ‘전통의 왜곡’에서 찾는 일이 철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할 역사를 오히려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또 하나의 쇄국성이 아닐까?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