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외쳐도 변하지 않는 세상, ‘폭염’ ‘대체복무제’ ‘청년주거정책’ ‘원전 정책’
등록 2018-12-22 14:17 수정 2020-05-03 04:29
<font color="#008ABD"><font size="4">그리고 삶은 계속된다</font>
이 만난 사람들

에는 음계는 다르지만 조는 같은 어떤 목소리가 있다. 이미 과대 대표된 정·재계 인사, 기득권층, 주류의 목소리보다는 아픈 사람들과 소수자의 그것을 전하는 것이 2018년에도 일관된 보도 태도였다.</font>

세상은 더디게 변한다. 올해 은 폭염, 양심적 병역 거부, 청년임대주택, 원전 주변 지역경제 등 50가지 다양한 문제를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일부는 사회적 의제로 떠올라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일부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천천히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가운데 폭염 사망자들에 대한 이른바 ‘사회적 부검’을 시도했던 제1224호 표지이야기 ‘누가 폭염으로 숨지는가’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선정한 8월 ‘이달의 좋은 보도’로 선정됐다. 하지만 폭염에 취약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후속 조처는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14년 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 판단도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이 판결로 양심을 옭아맨 법은 사라졌다. 하지만 형평성이라는 명목 아래 징벌적 성격을 띤 대체복무제가 논의되고 있다. 제1219호 표지이야기 ‘양심의 자유를 지켜낸 사람들’의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것이다. 세대적 약자를 위한 청년 주거 정책은 세대적 강자 앞에서 좌초되거나 뒤틀렸다. 대학생연합기숙사(행복기숙사)가 들어서기로 했던 서울 성북구에서는 “집값 떨어진다”는 엄마 아빠의 반대(제1211호 표지 이야기 ‘엄마 아빠 청년임대가 왜 싫어?’)가 되풀이된다.

‘값싼 전력 생산’이라는 명분으로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온 원전 정책은 새 정부 들어 방향이 바뀌었지만 그 속도는 느리다. 원전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한 마을은 원전 가동, 수명 재연장, 신설 등의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렸다. 온전한 변화는 문제가 뿌리내리는 데 걸린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제자리걸음인 폭염 조처</font></font>
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기록한 8월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주택가에서 이삿짐을 나르던 한 노동자가 지열까지 보태져 51도를 넘긴 온도계를 들어 보였다. 류우종 기자

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기록한 8월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주택가에서 이삿짐을 나르던 한 노동자가 지열까지 보태져 51도를 넘긴 온도계를 들어 보였다. 류우종 기자

제1224호 ‘누가 폭염으로 숨지는가’<font color="#C21A1A">▶바로가기</font>

“본 변사자는 급성심근경색증과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해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함.” 지난 7월30일 낮 1시30분께 광주 서구의 25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쓰러져 숨진 최상헌(66·가명)씨의 부검 감정서에 적힌 내용이다. 최씨의 아들 승훈(33·가명)씨가 제1224호 표지이야기 ‘누가 폭염으로 숨지는가’ 보도 뒤 8월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받은 5쪽짜리 부검 감정서다.

부검 감정서 마지막 장에 “본 변사자와 같이 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해 내인성 급사를 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어떤 자극이 가해졌을 때 잘 일어나고, (중략) 고온의 환경이나 육체적 노동 역시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 기존의 질환이 있는 경우 이를 급격히 악화시키거나 이차적 변화를 초래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이라고만 덧붙여 있을 뿐이다.

승훈씨는 과 한 통화에서 “아버지가 체감온도 40도에 이르는 여름날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도 ‘폭염 때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애초 사망 전후 직장 체온을 재야 한다는 매뉴얼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폭염 사이에 인과관계를 밝힐 기회마저 놓친 거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뒤) 2차 피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내인사)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아버지와 같은 제2의 폭염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자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보건의료기본법 개정 이후 폭염으로 인한 기존 질환 악화와 간접적인 영향 등을 연구하기 위한 기후보건영향평가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인력은 고작 한 명이다. 지난 9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으로 폭염과 한파가 자연재난에 포함된 뒤 예방 조처가 시급한데도 인력이나 예산 지원은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올여름에만 48명이 폭염으로 숨지고서야 뒤늦게 질병관리본부는 폭염에 취약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파악하기 위한 ‘폭염에 의한 건강피해 심층 조사 연구’에 들어갔다. 이마저 용역을 맡길 연구자가 없어 한 차례 입찰이 유찰된 뒤 지난 11월에야 시동을 걸었다. 이번 조사는 폭염 사망자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분석하는 첫 조사다. 2012년 폭염 사망자가 14명에 이르자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는 냉방기기 보유 등 사망 당시 상황을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번 조사는 지역, 연령, 직업 등이 비슷한데도 피해가 작았던 대조군과 비교해 더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징벌적 대체복무제 우려 현실화</font></font>

​제1219호 ‘양심의 자유를 지켜낸 사람들’<font color="#C21A1A">▶바로가기</font>

낡은 법을 폐기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듯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드는 데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6월28일 헌법재판소(헌재)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던 병역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변화의 바람은 분명 불었다. 이어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11월1일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군 입영 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4년 만에 유죄가 무죄로 바뀌었다. 병무청은 헌재 결정 뒤 대체복무제 도입 때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입영을 연기했다.

하지만 기뻐할 새 없이 제1219호 표지이야기 ‘양심의 자유를 지켜낸 사람들’이 우려했던 ‘징벌적인 대체복무제’안은 현실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현재 현역(육군) 복무 기간의 두 배인 ‘36개월 합숙 근무 제도’를 대체복무제로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역 복무의 1.5배가량의 기간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해온 것과도 배치된다. 복무 장소를 교정시설로 단일화하는 조처도 대체복무제를 ‘징벌’로 규정하겠다는 의미여서 헌재 결정 취지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병역을 거부해 실형을 선고받고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백종건(34) 변호사는 헌재와 대법원의 판단에도 지난 10월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변호사 재등록을 거부당했다. 그는 다섯 살에 아버지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는 걸 지켜봤다. 백 변호사는 과 한 통화에서 “헌재의 결정으로 병역기피자들과 동일하게 취급받던 병역거부자들이 죄의 옷을 벗었다”고 했다. 그는 대체복무제에 대해서도 “군 복무와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공익에 기여하는 대체복무제가 돼야 한다. 징벌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청년임대주택 중 청년 위한 건 25%뿐</font></font>
5월1일 우인철 당시 우리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영등포역 7번 출구 앞에서 청년임대주택을 지키기 위한 천막농성을 벌였다. 류우종 기자

5월1일 우인철 당시 우리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영등포역 7번 출구 앞에서 청년임대주택을 지키기 위한 천막농성을 벌였다. 류우종 기자

제1211호 ‘엄마 아빠 청년임대가 왜 싫어?’<font color="#C21A1A">▶바로가기</font>

부모와 자녀는 주거 문제에서 ‘세대적 약자와 강자’라는 구도로 재회했다. 제1211호 표지이야기 ‘엄마 아빠 청년임대가 왜 싫어’에서 만난 우인철 청년정당 ‘우리미래’ 공동 대변인은 4월21일부터 서울 영등포구청역 앞에서 15일간 ‘청년임대주택을 지키기 위한 24시간 철야 텐트 농성’을 했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가 영등포구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청년임대주택을 공급하려 하자 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철야농성 뒤 그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영등포구에 들어서기로 했던 청년임대주택은 내년 3월 착공된다. 우 대변인은 과 한 통화에서 “청년임대주택(역세권 2030) 사업에 포함된 전체 주택 8만 호 가운데 실제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이라 할 만큼 임대료가 싼 곳은 25%에 불과하다. 지난 8월 서울시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공공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은 청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1월 서울 성북구에 들어서기로 했던 대학생연합기숙사(행복기숙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도 우 대변인은 성북구 주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집값 내려가면 가만히 안 둔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6월13일 치른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1만1599표(0.23%·7위)를 얻는 데 그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되풀이되는 원전 의존 지역경제의 딜레마</font></font>

제1239호 ‘원전만 살고 지역은 죽었다’<font color="#C21A1A">▶바로가기</font>

원전 주변 지역이 겪는 딜레마는 마을에서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12월13일 국회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서명운동본부’(서명운동본부)가 출범했다. 강석호·김석기·윤상직·최연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 전찬걸 울진군수, 울진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정치권과 원자력 학계, 한수원 노조, 친원전 단체들이 모두 참여했다.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과 경북 경주 월성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이 원전 안전성을 의심하면서도 막대한 지원금이 끊길까봐 우려하는 딜레마(제1239호 표지이야기 ‘원전만 살고 지역은 죽었다’)는 경북 울진군 한울원전에서도 되풀이된다. 울진군은 한울원자력본부가 내는 지방세 의존율이 60%가 넘다보니 신규 원전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월5일 울진군의회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민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은 12월19일 “원전 찬반을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했다. 혐오시설 지역으로 낙인도 찍혔다. 친환경 농어업의 기반도 무너졌다. 생태관광도시로 나아가는 데도 발목이 잡혔다. 울진군의 삶과 미래를 생각하면 더 이상의 핵발전소는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제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지속가능한 전력 생산, 지역경제 회복 등을 논의해야 할 원전 문제가 ‘친원전 대 탈원전’이라는 구도 아래 정치적으로 쟁점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명운동본부에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던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등도 합류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변지민 기자 dr@hani.co.kr

<font color="#A6CA37">제1195호 ‘월급통장에 상품권이 찍혔다’ 뒷이야기</font>


방송계 ‘전태일’, 비빌 언덕은 생겼다


“기자님, 상품권 지금 보여드릴까요? 아직도 있는데….”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들며 그는 담담한 눈동자로 말했다. “그래도 이건 뭐 주긴 한 거잖아요.”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이걸 무조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질’이란 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생의 슬픔이 그의 눈동자에서 시작해 지갑을 타고 입으로 쏟아져내렸다.
20년차 베테랑 촬영감독이던 A씨는 2015년부터 2016년 7월까지 SBS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스태프로 일하며 임금 900만원을 제때 받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4개월여 만에 그를 만난 PD는 “상품권으로 받을 거면 지금 주겠다. 아니면 내년에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선택권이 없는 선택이었다. 10만원권 상품권 90장을 받아 사무실을 나오던 순간 A씨는 신실한 노동이 왜 치욕이 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font color="#C21A1A">제1195호 표지이야기</font> ‘월급통장에 상품권이 찍혔다’ 보도는 방송계 바깥의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고 방송계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노동 문제를 세상에 드러냈다.
노동 기준은 명확하다. 대법원은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를 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당하는지 등의 기준으로 노동자와 사용자를 판단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모든 방송 스태프는 방송사로부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형편없었고 지금도 이 기준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취재는 ‘방송계 갑질 119’ 채팅방의 개설과 함께 시작됐다. 채팅방에는 방송계 노동 현실을 고하는 아우성이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졌다. 그 사례들은 전태일이 역사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전히도 ‘전태일들’의 노동으로 ‘격차’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A씨가 20시간 노동을 감내하며 디졸브(장시간 노동을 하느라 잠들지 못한 채 아침이 와버리는 상태)를 맞을 때, 그 방송에 출연했던 동갑내기 개그맨은 4천만원을 받았다. 단순히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온당과 부당의 차이였다.
방송계 비정규직 임금이 상품권으로 대체된 의 고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상파 3사는 모두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SBS는 부당노동 행위 ‘신고센터’까지 개설했다. 이후에도 은 방송사와 종속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공채 출신 개그맨들에 대한 노동 착취, CJ E&M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들에서 벌어진 이른바 ‘출연료 꺾기’ 등 방송가 노동 전반에 대한 고발을 이어갔다. 모두 크고 작은 대책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계 갑질 119’ 채팅방에서 출발한 아우성들이 지난 7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창립으로 결실을 봤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비빌 언덕, 완전히 추락하진 않을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